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기술의 발전은 인간 삶의 문턱을 낮췄다. 누구나 사진을 찍고, 누구나 글을 쓰고,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시대다. 이른바 ‘기술의 평균화’가 실현된 시대. 그러나 그 평준화의 이면에는 역설적인 그림자가 있다. 바로 독창성의 실종이다. 기술이 평준화되면 될수록, 제품과 콘텐츠는 서로 닮아간다. 기능은 좋아지지만, 차이는 사라진다. 이쯤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내가 듣고, 보고, 소비하는 것은 무엇으로 구별되는가?” 예술도 마찬가지다. 특히 성악 분야는 전통적으로 높은 진입장벽을 가진 예술 장르였지만, 최근 기술의 확산과 보편화로 그 장벽이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온라인 성악 강좌, AI 반주 시스템, 오디션 플랫폼 등은 누구든 ‘부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 동호인 성악의 참여층은 폭넓게 확장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참여자는 늘었지만, 차별화된 감동과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무대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비슷한 노래, 비슷한 무대’의 범람 속에서 진정한 감동은 점차 퇴색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이 바로 ‘기술 다음의 이야기’다. 개인의 목소리, 문화의 깊이,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한때 예술은 뜨거운 입김처럼 솟구쳤다. 영감은 그 순간의 정적 속에서 낚아채는 살아있는 불덩이였고, 예술가는 자신의 심장에서 즉시 치솟는 노래를 즉석에서 연주하고, 읊고, 노래했다.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음악 창작의 분업화는 이 ‘즉흥’이라는 고귀한 능력을 점차 주변부로 밀어냈다. 작곡가가 모든 것을 악보에 적고, 연주자는 그것을 ‘실행’하는 전문 기능인이 된 오늘날, 과연 우리는 ‘영감의 순간’과 얼마나 가까이 서 있는가? 오늘날 클래식 음악의 연주자들은 대개 작곡가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며, 오차 없는 완벽함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 완벽함 속에는 때때로 결핍이 있다. 그것은 바로 즉흥성, 곧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직관의 비약이다. 모차르트는 즉흥 연주의 달인이었고, 리스트는 즉흥을 통해 관객과 직결된 소통을 만들어냈다.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 연주자 자신도 예측할 수 없는 진행. 그것이야말로 영감의 실체가 아니었던가. “즉흥이란 곧 신의 속삭임을 듣는 것이다.” 프란츠 리스트 이는 단지 과거의 미덕이 아니라, 오늘날 더욱 필요한 창조적 언어다. AI가 악보를 만들고 연주까지 구현할 수 있는 시대에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대중은 결코 진리를 낳지 않는다. 오직 개인만이 그것을 품는다. — 쇠렌 키르케고르 ‘절에 가서 새우젓을 먹는’ 능력 ‘눈치(nunchi)’는 직역하면 ‘눈으로 재는 치수’입니다. 말없이도 표정과 분위기를 읽어 사람들의 마음속 거리까지 재보는 섬세한 감각이죠. 덕분에 우리는 갈등을 줄이고, 협업을 매끄럽게 이어 갈 수 있습니다. 고맥락 문화가 키운 사회적 레이더 조선 유교 전통, 산업화기의 ‘빨리빨리’, ‘정(情)’ 문화는 관계의 온도를 지키는 일을 개인의 의견보다 앞세웠습니다. 그래서 말보다 눈빛이 먼저 흐르고, 단 한마디 없이도 “다 알아들었지?”가 가능해졌죠. 눈치의 빛과 그늘 밝은 면 / 그늘 빠른 공감과 조율 결정이 미뤄지고 속도가 늦어짐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암묵지 새로운 아이디어가 싹트기도 전에 꺾임 조직 분위기 읽는 능력 “내가 누구지?”라는 자기 상실감 회의 자리에서 다섯 번쯤 “이 말을 해도 될까?” 머뭇거리다 아이디어가 공중으로 흩어지는 경험, 한 번쯤 해보셨을 겁니다. 그 순간 창조적 ‘불온함’은 사라지고 모두가 안전한 평균값으로 모여듭니다. 오늘날의 ‘디지털 눈치’ 줌 화면에 켜진 마이크 표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나는 햇살이 내리는 창문에 두터운 커튼을 내렸습니다. 밖이 소란하고 발자국 뛰는 소리가 심장을 울릴 듯 괴팍하게 뛰었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움직이는 것들을 더는 바라 볼 수 없어 커텐을 내렸습니다. 대신, 닫았던 마음을 조금열어 창을 열고, 작은 울타리 한 켠에 꽃을 심었습니다. 밖은 더 이상 소란이 들리지 않게 겹겹이 커텐이 내려졌고, 마음 밭은 햇살이 들진 않았지만 따뜻한 온기로 꽃이 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새가 되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다 막히면 물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다 잠이 들면, 다시 깨어나 노래할 것입니다. 밤에는 하늘의 별과 달이 나를 위해 자장가를 불러 줄 것이고, 아침이 되면 햇살은 보이지 않아도 태양이 떴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끼게 되겠지요. 창문은 닫혔어도 사시사철 계절은 또 문을 두드릴 것입니다. 이 암흑의 시간에 나는 더 이상 밖을 보지 않고 내면의 성을 가꿉니다. 언젠가 닭우는 소리와 함께 새벽을 기다린 사람들을 떠 올리며 기다립니다. 웅성 웅성 밖에서 웃음 소리 들리면 그 때 커튼을 걷어 올리고 창을 열어야겠지요. AI 리뷰 <작품 개요> 핵심 정서: 외부 소란으로부터 자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세계음악사에의 편입을 위한 K클래식의 열정에 열광하는 모습을 ai가 그렸다 우리는 착각하며 살아간다. 아니, 착각 없이 살아가는 인간은 없다. 그것은 단순한 기억의 오류, 정보의 누락, 상황의 왜곡으로부터 시작되어, 때로는 개인의 삶 전체를 뒤흔들고, 사회적 재앙으로까지 번진다. 판단의 오류는 이성과 정보, 통계와 법률, 제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사람은 매일같이 착각하고, 사회는 반복적으로 착오를 범하며, 역사는 수차례 착시 속에 길을 잃는다. 우리는 길이 있음에도 길을 잘못 들고, 지도가 있음에도 방향을 잃는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복잡성이다. 역사적 오해의 부메랑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은 착오가 신념으로 고착된 대표적인 예다. 무지와 공포가 합쳐진 군중의 광기 속에서, 수만 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었다. 종교 개혁 직전, 교황청이 면죄부를 팔아 천국행을 거래한 것도 또 다른 집단적 착시의 산물이었다. 권위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과 맹신이 빚어낸 역사적 오판은 시대를 병들게 했다. 이러한 대혼란의 시기에, 현자들은 ‘진짜 진실’을 꿰뚫어 보았다. 착각의 덫을 피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현대화와 상업화, 그 가속의 물결 앞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묻는다. ‘과연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갯벌을 메워 농지를 만들고, 그 위에 고층 아파트를 세우는 것을 '진보'로 여겼던 시대가 있었다. 개발은 곧 효율이었고, 효율은 곧 삶의 질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 갯벌은 생태의 보고를 넘어, 세계적 관광자원이자 지역의 정체성으로 거듭나고 있다. 원형을 보존한 자연이 오히려 더 큰 미래의 부가가치를 낳는다는 인식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문화의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순히 ‘옛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방식, 고유한 이야기, 존재의 출발점이다. 마치 가파른 언덕 위에서 공동체를 향해 돌진해오는 적을 막아서는 아파치 추장처럼, 우리는 지금 문화의 원형을 지켜야 할 최전선에 서 있다. “원형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뿌리다.” 최근 토니상 6개 부문을 휩쓴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국 창작 콘텐츠가 세계의 심장을 울릴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작품은 이야기의 본질을 간결하게 간직한 채, 세련된 무대화로 승화되었다. 즉, 원형의 뿌리를 지키되, 현대적 언어로 재탄생시킨 사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세상의 한 방은 경계 밖에서 나온다.’ 이 문장 하나로도 충분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소외를 두려워한다. 누구나 주류, 기득권에 편입돼 안정을 누리고 싶어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말했을 때 그는 이미, 소속과 유대가 주는 혜택까지도 겨냥하고 있었다. 중심에 서면 권력, 자원, 명예가 뒤따르고, 경계 밖으로 밀려나면 결핍과 불안이 덮쳐 온다. 그러나 ‘경계 밖에는 경계가 없다.’ 이 어록은 소외의 빈 공간을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으로 전환한다. 경계 밖의 자유, 창작자의 영토 경계 밖 1번지 사람들은 노숙자들 사회적 약자가 있지만 대체로 작가, 예술가다. 그들은 고립과 침묵 속에서 타인의 시선을 ‘음소거’(mute)한 뒤, 세계를 새 언어로 재편한다. ‘기억 파노라마’를 뚫고 나오는 그 순간, 기존 질서가 떠받친 안전지대는 와르르 무너지고, 대신 혁신의 지층이 드러난다.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로 귀족 사회의 허위를 부쉈듯,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돈 키호테』 한 권으로 라 만차 평원의 ‘미친 기사’를 보편적 인간 희극으로 승화시켰다.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 역시 코펜하겐 한복판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K-Classic 마스터피스 페스티벌의 비전과 완성 나는 언론인이 아니다. 글을 쓰고, 무대를 보며, 수많은 예술가를 만났지만, 그 흔적은 크게 남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그 '남지 않음' 속에서 나는 길을 찾았다. 남는 것은 결국 '작품'뿐이라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어려운 진실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수십 년간 비평을 통해 많은 공연과 창작자들을 지켜보았다. 감동은 있었지만, 그 감동은 허공에서 사라졌다. 이유는 명확했다. 작품이 팔리지 않기 때문에 지속성이 없다. 예술은 존엄하지만, 시장은 현실이다. 아무리 탁월한 예술가가 있어도, 작품이 소비되지 않는 땅에서 창작은 생존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2012 13년 전에 'K-Classic'이란 이름을 만들었다. 상품이 되기 위해선 브랜드가 필요했고, 그 브랜드에 우리의 예술을 실어야 했다. 그것이 '마스터피스 페스티벌'이라는 상징성의 무대다. 그래서 마스터피스는 하나의 결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라, 상품화를 위한 시작일 뿐이다. 왠만한 유명세나 실력만으론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을 수 없다. 개별 예술가의 이름이 한계가 있고, 작품 하나하나의 유통력은 극히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3, 400년 정도는 취급도 하지 않아. 천년도 2천년도 고요히 자태를 드러낸 백자,청자.남는 것과 사라지는 것의 경계가 이토록 분명할 수 있을까 ? 깨어졌어도 남아 있는 것들, 온전한 것들 사이에서 어쩜 그렇게 당당하냐? 100년 , 200년은 명함도 못붙이는구나. 한 부호가 수억, 수백억, 수천억을 들여 모은 것들을 여기에 이름 석자 남기고 떠났네, 이 보물들을 발견하고 밤잠을 못 이루었을 그 소유의 기쁨과 사랑은 또 얼마나 뜨거웠을까? 그 욕망과 열정과 희열을 유리 상자 안에 다 던져놓고 갔네. 천년이었다 해도, 바람과 강물과 바다는 다루지 않아 . 오직 이름 없는 장인이 밥을 먹기 위해 달빛 영감과 새벽별 총기로 빚어내, 그 순간 스스로 와! 와! 감탄했을 소리가 담겨져 있을 뿐이야. 몽땅 태워지고 더 이상 태울수 없는 보석보다 단단한 눈물의 결정체만 남았거든. 수만년 공룡 발자국을 보았을 때 디딘 바위가 살짝 흔들렸어. 그때 내가 살아 있다는게 무서웠고 사라진다는게 두려웠어. 오늘도 박물관 앞에 서니 크레인에 들려진 휴지 조각처럼 내가 가벼웠어. 쓸려가지 않으려고 비오는 날 아스팔트에 치근대는 가랑잎 같았어.
K-Classic News 탁계석 | 예술비평가회장 세계 곳곳의 음악 축제들 가운데는 대도시나 거대한 공연장이 아닌, 외딴 산간이나 벽촌에서 시작된 것들이 의외로 많다. 그리고 그중 몇몇은 이미 세계적인 명성과 품격을 갖춘 음악제로 성장해 왔다. 그 상징적인 사례가 바로 핀란드의 '쿠오모 페스티벌(Kuhmo Chamber Music Festival)이다. 쿠오모는 핀란드 북부의 깊은 숲 속에 위치한 소도시다. 이곳에서 망명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부부가 스스로를 위해 연주를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처음엔 아무도 듣지 않던 음악이었지만, 근처의 벌목공과 지역 주민 몇 명이 하나둘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결국 그 ‘숲속의 연주’는 해마다 수많은 관객과 세계적 음악가들이 찾는 축제로 자리잡았다. 이처럼 음악은 처음부터 거대한 것이 아니라, 들어주는 단 한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례는 이탈리아 북부 고산지대 아시아고(Asiago) 페스티벌이다. 유목과 치즈 산업으로 알려진 이 지역에서, 마을 성당에서 시작한 작은 콘서트가 마을의 자부심으로 성장했고, 유럽 전역의 음악가들이 가족과 함께 휴양 겸 참여하면서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이 축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