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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해구, 여섯 번째 개인전 "가면을 벗기면 비로소 보이는 세계… 피노키오와 고래가 이끄는 내면의 서사"

K-Classic News 오형석 기자 |2025년 12월 3일부터 11일까지 안동문화예술의전당 35갤러리에서 열리는 최해구 작가의 여섯 번째 개인전은 익숙한 동화적 모티프 속에서 인간의 가장 깊은 심리를 끌어올리는 전시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여러 해 동안 탐구해온 ‘가면’, ‘페르소나’, ‘피노키오’, ‘고래’라는 상징적 세계를 총체적으로 담아내며, 회화적 서사를 기반으로 한 독창적인 조형언어를 선보인다.

 

최해구의 작업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피노키오’와 ‘파란 머리 요정’ 같은 동화 속 인물들을 단순한 차용이 아니라 심리학적 장치로 재해석한다는 점이다. 그의 화면 속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하는 소년이기보다, “진실과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현대인의 초상”에 더 가깝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분명한 얼굴을 가지지 않거나, 혹은 감정을 읽을 수 없게 가려져 있다. 이는 곧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수많은 가면과 그 뒤에 숨겨진 본래의 얼굴”을 상징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신작 ‘피노키오의 의심’은 작은 눈동자들이 화면 곳곳을 떠도는 구성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복합적 감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관람객은 작품 앞에서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데, 이는 최해구의 회화가 가진 정서적 울림이자 미학적 힘이다.

 

최해구의 시각적 상징 체계에서 ‘고래’는 특별하다. 그는 오래전부터 고래를 ‘기억과 무의식의 저장소’, 혹은 ‘내면의 심연’으로 표현해 왔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고래는 단순한 동물의 이미지가 아니라, 인간 내면에 축적된 감정과 시간을 비유하는 존재이다. 고래의 부피감과 시간성은 고요한 수면 아래 깊게 가라앉은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

 

관람객은 그 거대한 형상 앞에서 자연스럽게 자기 내면을 마주하게 되며, 이는 최해구 작품의 핵심적 미덕으로 꼽힌다.

 

작가의 화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눈동자 패턴은 그의 회화 세계를 해석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실마리다. 이는 타자와 사회의 시선,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 돌아보게 만드는 ‘내면의 눈’을 상징한다.

 

이 눈동자들은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불안감을 조성하며 등장한다. 마치 수많은 시선이 존재하는 현대 사회에서 타인의 기대와 평가 속에 놓인 우리의 모습을 은유하는 듯하다. 관람객들은 그 시선과 마주하는 순간, 자신이 스스로에게 묻지 못한 질문과 직면하게 된다.

 

최해구의 화면은 한눈에 보아도 강렬하다. 원색이 주로 사용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다. 화면을 가득 채운 강렬한 색감은 인간 감정의 깊이와 생동을 표현하고, 거칠게 겹쳐진 질감은 감정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일종의 ‘기억의 층위’를 형성한다.

 

또한 붓질과 채색이 결합된 겹겹의 화면은 “시간이 쌓이는 회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장식적이면서도 심리적인 화면 구성은 최해구만의 독자적 화풍을 구축하는 중요한 요소다.

 

최해구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우리는 결국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 가면을 벗겨내면 무엇이 남을까, 그 질문을 계속 던지고 싶었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피노키오라는 이야기 속에는 ‘진실’, ‘욕망’, ‘불안’이라는 인간의 본질적 감정이 담겨 있다”며, “이 전시를 통해 그 감정의 흔적을 시각적으로 풀어내고자 했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는 안동문화예술의전당의 정기 기획전 흐름 속에서 지역 문화계에 새로운 활력을 더할 것으로 평가된다. 전시 관계자는 “안동 지역에서 contemporary 회화의 정서적 다양성을 이 정도 규모로 선보이는 기회는 드물다”며 “지역 문화예술계에 의미 있는 창작 영감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전시는 관람객에게 단순한 미술 감상을 넘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내면의 여행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익숙한 이미지 속에 비친 낯선 감정, 그리고 상징으로 가득한 화면 속에서 각자가 품고 있던 질문 하나쯤은 건져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