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평론가 |
모든 제품은 크기나 형태, 색상은 같은데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골프채, 테니스채, 만년필, 자동차, 호텔, 요리, 소위 ‘명품’으로 오르는 계단엔 많은 층계가 존재한다.
어느새 세일가곡이 명품 공연임을 클래식을 좀 안다는 사람 누구나가 알게 되었다. 올해가 13년째 이면서 한 눈 팔지 않고 달려온 결과다. 정승일 이사장의 정신을 이어 받아 가곡 정신을 승화하면서 정성을 다한 것이다. 이 번 공연을 더욱 원숙한 무대로 이끈 주역으로 베이스 연광철과 테너 김우경이 등판했다.
그러니까 발성 가곡(?), 소리 가곡(?)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한국 가곡 가창법에 대한 의문이 비로써 풀리는 듯했다. 가곡은 시(詩)를 표현하는 노래이지 소리 자랑대회가 아니란 사실이다. 이름대면 다아는 세계적인 소프라노도 딕션이 그다지 좋지 않은데 이 날 두 분의 딕션은 받아 적는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곡의 해석력이 돋보였다.
요즘 예당 마당에 틀어 놓은 영상의 러시아 소프라노 그리운 금강산도 딕션이 좋다. 외국인들이 앞으로 우리 가곡을 부를 텐데 우리가 어슬프면 안된다. 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 헤르만 프라이가 불렀던 1978년의 ‘청산에 살리라’ 눈물이 글썽이던 그 푸른 눈동자를 영원히 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소리에 집착하면서 표현의 디테일을 잊어 버려선 안되고, 가사가 몸에 녹아서 이미지나 정서로 표출되는 과정을 가볍게 여기면 가곡은 청중에게 와 닿지 않음을 깨닫게 했다. 수많은 무대에서 가곡이 불려지지만 잘 부른다는 가수를 손에 꼽을 정도인 것도 이 때문이다.
왜 소프라노 김순영이, 왜 소프라노 김영미가, 왜 소프라노 이규도 선생이 한국 성악사의 흐름에서 캐릭터로 떠오르는 것일까? 노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잘 부르는 것은 어렵다. 가곡을 벨칸토 발성만으로 ‘소리 노래’를 불러서 안되는 이유다.
영상으로 본 세일상 수상자 신영조 선생에 이르러 탄성을 자아낸다. 정서의 깊은 우물에서 뽑아낸 가곡의 에너지가 청명한 음색과 명쾌한 이미지를 그려내는 것에서 단연코 탁월함이다.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가장 강렬하게 필자에게 회상되는 것은 정통성때문이 아닐까. 인간도 평품이고, 그의 삶과 예술도 평품이 아닌가. 참석을 못해 못내 가슴이 저렸다.
다시 발성으로 돌아가, 장사익은 “저는 발성을 따로 하지 않습니다. 수없이 가사를 읇조립니다. 그게 발성이죠. 그렇다. 정가(正歌)도 그렇고 판소리도 그렇고 노래란 시의 운율성이 핵심이므로 이 '문학성'을 놓치면 맛을 잃는다.
예당의 굿모닝 가곡은 가곡의 역사 스페셜이다. 대중들에게 가곡의 시대적 조명을 통해 흐름을 알게 하는 것은 교육적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이 좋은 프로그램을 전국에 공급하겠다고 방을 붙여도 별 응답이 없다면, 이게 굿모닝이 나가야 할 방향이 아니겠는가. 다 가곡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기금신청을 하면 가곡은 대부분 탈락시키는 것이 오늘의 가곡 현주소요 상황이다. 그러나 실제 가곡은 많이 불려지고 있고, 앞으로 많이 불려질 것으로 본다.
가곡은 클래식의 줄기세포다. 이걸 살려내야 희망이 있다. 청중들이 좋아하는데, 대학은 왜 연구를 외면하는가? 가곡을 더 깊이 파고 들지 않는다면 성악의 미래는 없다. 신인 작곡가, 성악가를 등용하는 세일의 전체 레퍼토리 구성도 좋았다.
그래서 세일 가곡이 클래식의 한 기둥을 바치고 있다는 흐뭇함이 들었다. 청중과 다 함께 ‘아 가을인가 봐~’ 같은 객석 합창을 했더라면 아쉬움이 남았다. ‘이별의 노래’를 들으며 이별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