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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혼자서도 잘 할 거야

아티스트 글쓰기, 1인 시대가 열렸네


 

양평 비발디 파크를 지나면 ‘그냥 민박’ 집이 스쳐 지나 보인다. 민박이면 민박이지 왜 ‘그냥’ 민박일까? 부담 갖지 말라는 뜻일까? 값이 싸다는 것의 유혹일까?

 

원고를 부탁하면 글쓰기에 하나같이 부담을 느낀다. 평소 운동하지 않은 사람에게 갑자기 마라톤을 하자는 것처럼 몸이 따르지 않는다. 글은 그래서 연습이 필요하다. 잘 쓰려고 하면 굳어지고, 굳어지면 힘이 든다. 모든 기술은 ‘레슨 원리’에 다 들어 있으니까. 음악가들은 이를 적용하면 쉽게 풀리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냥 쓰기다. 손이 풀리려면 반복이 필요하고 익숙함에서 조금씩 즐거움이 생기는 것이니까. 

 

사라지는 것 아쉬워 말고 새로 생성되는 것들과 친하기 

 

필자가 글쓰기를 시작했던 40년 전(前) 원로 평론가 한 분이 원고지에 바로 수정 없이 글 쓰는 것을 본 층격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원고지를 아끼기 위해 백지에 쓰고 다시 고치고 또 고쳐 옮기면서도 수없이 많은 원고지를 버려야 했던 시절이었다.

 

세상은 바뀌고 바뀐 세상은 또 바뀌었다. 원고지도 사라졌고 그 힘을 날렸던 기자들도 사라졌다. 조, 중, 동 어느 신문에 문화부 가지가 누군지 퀴즈를 내도 못풀 만큼 이름이 가물거린다.  그렇다고 진짜 기자 명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1만 개가 넘는 포털 사이트 뉴스가 쏟아지면서 이름을 기억하지 쉽지 않게 되었다.

 

이제 전문지 매체 몇몇 기자들이 발로 뛰면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페이스북, 블로그, 카페, 카톡 등의 SNS 발달로 전 국민 글쓰기의 상용화가 이뤄진 것이다. 때문에 나는 피아니스트니까, 나는 작곡가니까, 나는 성악가이니까. 내 영역 기능만 할 뿐 다른 것은 못한다. 경계를 치고, 경계를 두고, 멀리할수록 나는 변화에 밀리고 낙오하는 세상이 이미 와 버렸다.

 

QR 코드도 처음은 힘들었지만 점차 익숙해졌다. 기술은 반복하면 뚫린다. 글쓰기도 무조건 쓰면 된다. 좋은 착상이 뜨면 메모하는 습관이면 좋고, 머리 쓰기, 생각 연습 등이 정신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특히 치매에 특효라던가!  

 

한글로 제 이름 석자만 쓴다면 이게 무슨 지성인인가? (흐흐) 자기감정 표현하고, 생각 전달하는데,  욕심도 치장도 필요하지 않다.

 

나는 기자가 아니다. 나는 작가가 아니다. 그 경계를 허물고 누구나 기자여야 하고,  누구나 작가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창조의 작업자들은 자기 장르를 설명하고 작품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맞춤법은 요즈음 네이버 맞춤법 검사기를 치면 나오니 그 틀에 넣으면 오타 및 띄어쓰기를 해주니 참 편리한 세상이다.

 

K-NEWS, 모든 아티스들이 주인인  1인 미디어 

 

그렇다, 이제는 기자, 평론가, 연주가, 글로벌의 경계조차 모두 사라졌다. 외국에 계신 분들은 한글과 원어(原語)를 혼용해주면 글로벌 신문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된다. 회원 가입을 하고 기사나 글을 올릴 수 있도록 ‘독자기고’ 란을 활용하면 된다. 이런 쉬운 기술도 없다면 자녀들이나 애들에게 배우면 된다.  

 

변화의 시대. 교과서에 배운 것 보다 밖에서 배울 것들이 엄청 많다. 학교가 중심이 아니라 현장이 중심이어야 생존이 가능하다. 교수들이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없으니 방향을 일러 주고 정보를 주면 좋겠다.  뭐든지 수긍하고, 되기 위해 용기를 던져야 한다. 아낀다고, 폼 잡는다고 폼이 잡히는 세상이 아니다. 고정관념의 낡은 외투를 벗고 도전하고 혁신의 파도에 몸을 맡기자. 혼자서도 잘 살아야 하는 세상이 이미 왔다. 코로나19가 빡세게 밀어 붙이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