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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숲과 오르겔이 울산의 미래를 부른다

이동구 울산대 교수 · 홍성훈 오르겔 마이스터 · 탁계석 K-Classic 회장 가상 3자 대담

K-Classic News 정리: 송인호 기자 |

 

한국형 홍매화 오르겔(홍성훈 마이스터의 9번째 작품)

 

2050 빅뱅설, 울산이 문화 대폭발의 근원지 될 것인가?
 

‘대숲과 오르겔’—울산에서 포착된 동시대적 공명(共鳴)

 

“공감과 울림의 확장성이 동시에 발생한다면, 새로운 빅뱅이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초점이 울산이라면 어떻겠는가.” 이 문제의식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세계가 기후·문명 전환의 시대에 들어서며 ‘도시의 정체성’은 생존 조건이 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르겔 제작의 세계적 장인 홍성훈 마이스터, 예술철학의 울산학을 정립해 온 이동구 교수, 한국형 칸타타와 K-Classic 흐름을 주도해 온 탁계석 회장—세 사람의 통찰이 서로를 향해 자연스럽게 수렴된다.

 

각자의 시간이었지만, 글과 강연, 예술적 비전이 서로 얽히며 울산이라는 공간이 ‘새로운 문화 빅뱅의 원점’으로 부상하는 흐름이 읽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홍성훈 마이스터가 울산에서 특강을 하던 중 대숲을 바라본 작은 순간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 발견은 결코 작지 않았다.

 

“대숲은 이미 하나의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이다” — 자연이 악기로 되는 순간

 

태화강 십리 대숲 앞, 홍 마이스터는 말했다. “대나무가 바람을 품으면 소리가 됩니다. 파이프오르간도 원리가 같습니다. 십리 대숲은 거대한 오르겔 군락이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대나무는 속이 비어 있는 공명 구조이며, 바람이 흐를 때 비로소 음향이 된다. 파이프오르간의 관도 내부 공기의 흐름이 음이 되는 구조다. 즉, 자연의 구조와 악기의 구조가 동일한 원리로 작동한다.

 

“대숲 자체가 이미 하나의 악기입니다. 이 대나무로 오르겔을 만든다면, 세계 어디에도 없는 울산만의 고유 악기가 됩니다.” 이는 단순한 비유를 넘어, 자연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도시 정체성을 만드는 문명적 전환을 뜻한다. 울산의 자연이 스스로 울산의 상징이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한국형 오르겔의 가능성 — 세종대왕이 만든 ‘정체성 개혁’의 계보가 다시 살아나다

 

이동구 교수는 이 발상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바라본다. 세종대왕은 중국 아악 중심의 음악 질서를 넘어 ‘조선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편경·편종을 개혁하며 이렇게 강조했다.  “향악은 우리의 심장이다. 결코 버릴 수 없다. 홍 마이스터는 여기에 화답하듯 말한다.  “오르겔은 한 나라의 정신을 담는 악기입니다. 한국적 재료·음향·미감을 담은 오르겔은 새로운 한국 고유악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동구 교수는 이에 덧붙여, 울산은 자연·역사·산업이 독보적으로 결집한 도시이기에 “울산은 산업도시를 넘어 문화문명도시로 도약할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고 강조한다. 한국형 오르겔은 단순한 악기 제작이 아니라, 동아시아 음악 문명의 계승이자 21세기형 문화정체성 회복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암각화–대숲–오르겔–태화강, 네 개의 숨결이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

 

탁계석 회장은 이미 울산암각화에서 영감을 받아 칸타타〈코리아 판타지> 를 예술의전당에서 초연했고,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여민락’을 음악화한 작업으로 한국 창작음악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왔다. 그는 말한다. “울산의 원시성과 현대성은 동시에 작동하는 에너지입니다.” 암각화의 생명문양, 대왕암의 신화성, 처용 스토리,태화강의 물결, 십리 대숲의 호흡, 그리고 현대중공업이 상징하는 산업 문명까지— 이 요소들이 한 무대에서 만날 때 하나의 문명 서사가 폭발적으로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탁 회장은 구체적 사례를 든다.“스에즈운하를 기념하기 위해 베르디의 <아이다>가 탄생했습니다. 울산도 세계가 공감할 작품을 낼 타이밍입니다. 암각화의 유네스코 등재까지 겹쳤으니 지금이 바로 그 순간입니다.” 그가 구상하는 장면은 명확하다.태화강 정원 중심에 대풍금(大風琴)이 울려 퍼지는 순간—울산의 자연·역사·산업·미래가 하나의 음향으로 형상화되는 장면.

 

2050년 ‘문화 빅뱅’의 근원지가 될까 — 울산 르네상스의 개막

 

홍성훈 마이스터는 2050년을 ‘문화 대폭발’의 시점으로 본다.그는 동양 문화의 약 300년 주기를 근거로,세종(15세기) → 정조(18세기)로 이어진 문화적 밀도가 21세기 울산에서 또 한 번 폭발할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이동구 교수는 말한다.“십리 대숲의 새떼가 일제히 하늘을 덮는 순간, 대숲 전체가 하나의 초대형 음향공간이 됩니다.”그는 대풍금의 첫 음이“대한민국 문화 르네상스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확언한다. 탁 회장은 철학적 결론을 덧붙인다. “서양 오라토리오가 ‘태초에 말씀’에서 출발했다면 우리는 ‘태초에 소리’에서 시작합니다. 이 소리가 울산에서 깨어난다면 K-Classic의 미래도 거기서 열립니다.”

 

울산의 대숲–태화강–오르겔–암각화라는 네 축은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새로운 문명서사의 원천이며,K팝·BTS 이후 한국이 전 세계에 던질 다음 교향적 파장— K-Classic 르네상스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울산의 바람은 이미 숨을 고르고 있다

태화강은 흐르고,대숲은 숨 쉬고,
암각화는 7천 년의 숨결을 간직한 채
우리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이제,오르겔은 울릴 준비를 마쳤다. 울산의 문화 빅뱅은 대숲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