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시대는 언제나 트렌드를 욕망의 화신으로 드러낸다
가난하던 시절을 지나 산업이 성장하고 경제가 부흥하면서, 사람들은 각자의 욕망을 다양한 형태의 트렌드로 노출시켜 왔다. 한때 대기업 총수나 부호들에게는 별장을 소유하는 것이 트렌드였다. 풍광 좋은 호수나 강가에 별장을 짓고, 주말이면 손님을 초대해 파티를 열며 자신의 위상과 여유를 과시했다. 욕망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골프, 승마, 요트, 최근에는 캠핑과 차박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늘 새로운 트렌드를 통해 자기 정체성과 계층을 드러내 왔다. 유럽 역시 다르지 않았다. 봉건주의 시대, 성주(城主)들은 오케스트라를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문화적 권력과 사회적 지위를 증명했다. 헝가리의 에스테르하지 공작이 하이든을 고용해 오케스트라를 운영했고, 하이든은 그 보답으로 수많은 교향곡과 실내악을 남겼다. 그가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다.
오케스트라의 시대는 소유에서 공공성으로 이동했다
오늘날 아무리 거대한 부호라도 개인이 오케스트라를 소유하는 시대는 끝났다. 대신 필하모니, 즉 시민과 후원자가 함께 유지하는 동호인 기반의 시스템, 혹은 공공 재정에 의해 유지되는 오케스트라가 주류를 이룬다. 한국 역시 해방 이후 오케스트라가 태동했고, 현재는 국립을 비롯해 시립 오케스트라만 해도 60여 개가 넘는다. 여기에 더해 민간 오케스트라는 그 수가 훨씬 많아, 몇 배에 이르는 규모다. 독일의 경우 베를린 한 도시에만 세계적 수준의 오케스트라가 세 개나 존재하며, 민간 단체 역시 활발하다.
최근에는 ‘꿈의 오케스트라’로 불리는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얼마 전 대통령이 정책회의에서 “아이들의 꿈과 자존감을 살리는 오케스트라를 더 확장하라”고 주문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남미의 엘 시스테마가 한국 땅에 상륙하며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 정신은 분명히 뿌리내리고 있다.
K 오케스트라는 수많은 민간 중 하나가 아니다
K 오케스트라는 이러한 민간 오케스트라 중 하나가 아니다. 그 목표는 분명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체성을 가진 오케스트라다. 그래서 K 오케스트라는 ‘대한민국을 연주한다’는 슬로건을 내건다. 지금 한국에는 우리 작곡가의 작품을 중심에 두고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어른들이 하지 않으니, 아이들도 따라 하지 않는다. KBS교향악단, 서울시향, 국립심포니 역시 구조적으로 우리 작품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
이 공백을 채우기 위해 K-Orchestra는 독자적이고 차별적이며, 분명한 개성을 가진다. 그것은 단체 하나를 더 만드는 일이 아니라, 한국의 얼굴과 혼, 정체성을 담아내는 플랫폼을 세우는 일이다. 많은 여러 단체 중 하나가 아니라, 매우 특별한 존재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특별함’은 언젠가 ‘보통’이 되어야 한다. 우리 것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가 특별하지 않은 시대를 만들기 위해서다.
세계 지휘자들이 말하는 ‘자국 오케스트라의 품격’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유수의 지휘자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한 나라의 오케스트라 수준은, 그 나라의 작품을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달려 있다.” 외국 지휘자를 초빙한다고 해서 국격이 자동으로 올라가지는 않는다. 이미 세계 시장은 매년 수십 개의 정상급 오케스트라가 최고의 오리지널 사운드를 들려주는 치열한 경쟁의 장이다. K-Pop과 BTS의 종주국, 세계가 주목하는 K-컬처의 나라에서 정작 오케스트라만 서구의 뒤를 맹렬히 쫓고 있다면, 그것이 과연 문화 주권의 모습일까. 더 나아가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오케스트라가 이런 인식의 부재와 책임 회피 속에 있다면, 재정의 적절성과 효율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K 오케스트라는 여기서 분명한 답을 제시한다. 한복을 입고, 가야금과 장구가 오케스트라 안에 자연스럽게 배치된 무대. 서양 악기와 우리 악기가 동등한 언어로 대화하는 사운드. 이것은 장식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도 없는 오리지널 경쟁력이다. 생각 해보시라. 종구국 나라에서 서양곡 레퍼토리로 초청할리도 없고 우리가 자비로 싸들고 간다고 해도 얼마나 가슴 졸이겠는가. 우리가 당당할 수 있는데 이를 마다하는 것은 무슨 깊은 사연이 있는 것을까?
K-Orchestra, 이름 자체가 이미 브랜드다
K-Orchestra라는 네이밍은 설명이 필요 없다. 단번에 한국임을 알 수 있고, 동시에 세계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이름이다. 해외 음악 관계자들은 이 이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미 방향이 정해진 이름이다. 남은 것은 내용을 채우는 일이다.” 때문에 K 오케스트라는 상업적 성과를 서두르지 않는다. 조건이 형성되는 프로젝트, 의미 있는 제안을 통해 분명한 색깔을 유지한다. 국가기념일 공연은 물론, 기업의 ESG 경영과 연계된 사회적 후원 음악회, 공공성을 강화한 문화 프로젝트를 담아낼 것이다. 결국 K 오케스트라는 우리 작품과 우리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오케스트라, 국민주권 시대에 걸맞은 대한민국 대표 오케스트라를 지향한다. 트렌드와 패러다임이 바뀌면 순위와 선호도는 달라진다. 지금은 더 이상 서구 오케스트라의 꽁무니를 쫓을 시간이 아니다. K 오케스트라, 그 자체로 이미 세계적이다.

'세계 지휘자들이 말하는 ‘자국 오케스트라'
리카르도 무티 (Riccardo Muti)
“이탈리아 오케스트라는 베르디와 푸치니를 연주할 때 가장 이탈리아답다. 자기 나라의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 오케스트라는 아무리 잘 연주해도 2류다.” 무티는 라 스칼라 극장과 시카고 심포니를 이끌며 줄곧 자국 음악의 책임 연주를 강조해 온 지휘자다. 그는 외국 오케스트라와 작업할 때도 “그 나라의 음악 전통을 존중하지 않는 연주는 관광에 불과하다”고 말해 왔다.
사이먼 래틀 (Sir Simon Rattle)
“독일 오케스트라는 베토벤을 연주할 때 역사와 언어를 함께 연주한다. 오케스트라는 사운드 이전에 문화적 기억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음악감독 시절, 래틀은 독일 음악 전통의 재해석을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삼았다. 그는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연주 단체가 아니라 한 나라의 기억 저장소”라고 표현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러시아 오케스트라는 차이코프스키와 무소르그스키를 통해 자신을 증명한다. 자기 음악을 하지 않는다면, 러시아 오케스트라일 이유가 없다.” 마린스키 극장을 중심으로 러시아 음악을 세계에 확산시킨 게르기예프는 자국 레퍼토리 중심주의를 가장 강하게 실천한 지휘자 중 한 명이다.
다니엘 바렌보임 (Daniel Barenboim)
“국제성은 정체성을 지운 뒤 얻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뿌리를 가장 깊이 이해할 때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 바렌보임은 독일·이스라엘·중동을 아우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정체성 없는 국제주의’의 허구성을 꾸준히 비판해 왔다.
세이지 오자와 (小澤征爾)
“일본 오케스트라는 서양 음악을 배웠지만, 결국 일본인의 감각으로 연주할 때 세계가 귀를 기울였다.” 오자와는 일본 오케스트라의 세계 진출 과정에서 ‘모방의 단계 → 자기화의 단계’ 를 명확히 구분해 설명한 인물이다.
파보 예르비 (Paavo Järvi)
“에스토니아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다면, 에스토니아 오케스트라는 존재 이유를 잃는다.”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의 음악을 세계 무대에 올린 예르비는 국가 규모와 상관없는 정체성의 힘을 보여준 대표 사례다.
K 오케스트라에 적용되는 핵심 메시지
이들 지휘자의 공통된 메시지는 분명하다.“세계적 오케스트라는 세계 곡을 잘 연주하는 단체가 아니라, 자기 나라의 음악을 세계 수준으로 연주하는 단체다.” 한복을 입고, 가야금과 장구가 오케스트라 안에 자연스럽게 배치되고, 우리 작곡가의 작품을 당당히 정기 레퍼토리로 올리는 것. 이것은 민속적 장식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도 없는 오리지널 경쟁력이다.
K-Orchestra라는 이름에 대해 해외 음악계 인사들이 덕담처럼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브랜드는 완성됐다. 이제 한국이 자기 음악으로 무엇을 말할지가 관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