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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유경 율모이] 독일 본의 오후, 함께 만든 한국의 날

한국의 날 (KOREA-TAG) 2025 독일 본에서

K-Classic News 노유경 평론가 기자 

[노유경 율모이]

『독일 본의 오후, 함께 만든 한국의 날』

행사명: 한국의 날 (KOREA-TAG)

일시: 2025년 10월 11일 (토) 14:00–18:00

장소: 본대학교 강당 (Aula der Universität Bonn, Am Hof 1, 53113 Bonn)

주최: 주독일대한민국대사관 본분관

사회: Alea Leonore Leibelt

 

 

『독일 본의 오후, 함께 만든 한국의 날』

2025년 10월 11일, 본대학교 강당은 가을 햇살이 들이비친 따뜻한 오후의 온도로 가득했다. 그날의 ‘한국의 날(KOREA-TAG 2025)’은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젊은 세대가 예술로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살아 있는 마당이었다. 누구의 공연이 중심이거나 누가 주인공이기보다, 모두가 한 흐름속에서 한국과 독일, 전통과 현대를 잇는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행사의 문을 연 것은 대한민국 본분관 민재훈 총영사였다. 그는 본대학교와 쾰른대학교가 문화와 학문으로 맺은 인연을 언급하며, 젊은이들이 예술을 통해 서로 배우고, 이해하며,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인사했다. 그 말은 이날 공연의 공통된 정조가 되었고, 무대의 모든순간은 그 바람처럼 따뜻하게 흘러갔다.

 

 

첫 무대에 오른 것은 한국 경상남도 창원에서 온 DIAZ Dance Company였다.그들은 오랜 지역 예술의 뿌리에서 출발해, 세계 무대에서 한국 춤의 색을 새롭게 펼치고 있다. 〈화무삼색〉에서는 붉고, 푸르고, 노란 치맛자락이 서로 스치며 꽃잎이 피고 지는 듯한 시간의 순환을 그렸고,〈달빛 아래서〉에서는 고요히 흐르는 달빛이 무용수의 손끝을 따라 번지듯 움직였다. 〈K-Wind〉에서는 부채가 공기를 가르고, K-pop의 리듬이 얹히며 한국의 전통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장면을 만들어냈다. 그들의 무대는 전통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의 감각으로 ‘한국의 몸’을 다시 그려내는 시도였다. 지역에서 자라난 예술이 국경을 넘어 또 다른 청중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뒤이어 등장한 Bonn-Ullim(본 울림, 단장 오상이)은 북소리로 공간의 공기를 뒤흔들었다. 한국의 북이 독일식 강당의 벽에 부딪혀 메아리칠 때, 소리와 공간이 맞닿으며 새로운 리듬이 태어났다. ‘Beethoven Virus’가 연주될 때 청중은 두 세계의 정서가 한 무대 안에서 교차하는 감각을 경험했다. 그들의 연주는 단순히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박동과 독일의 울림이 하나의 리듬으로 섞이는 순간을 보여주었다. 세 번째 무대는 Bonnie-Voice였다. 그들의 노래는 무대의 분위기를 따뜻하게 풀어 주었고, 공연의 전반부를 하나의 정서로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했다. 감미로운 음성과 자연스러운 무대 매너는 한국 대중음악이 가진 서정성과 인간미를 전했다. 강당을가득 채웠던 북의 진동이 서서히 가라앉자, 무대에는 전혀 다른 결의 소리가 올라왔다. 조용한 발라드 대신, 익숙한 트로트의 리듬이 흘렀다. Bonnie-Voice의 목소리는 담백하면서도 힘이 있었고, 그 음색 속에는 한국 대중가요가 지닌 따뜻한 서민의 정서가 배어 있었다. 노래는 형식보다 감정이 앞섰고, 그 진심이 객석의 표정 하나하나에 닿았다. 마지막에 불린 〈아름다운 나라〉의 가사가 낯선 땅에서 울려퍼질 때, 그 말들은 ‘그리움’과 ‘자부심’으로 변해 공간을 천천히 채워나갔다.

 

이어서 무대에 오른 해금 앙상블 K-YUL(케이율, 단장:노유경)은 쾰른대학교와 아헨공대 학생들로 시작해, 지금은 재외동포와 교포세대까지 함께 하는 열린 앙상블로 성장한 단체다. ‘K’는 Korea, Köln, Kultur를, ‘Yul(律)’은 조화와 울림, 그리고 음악의 생명을 뜻한다. 서로 다른 배경의 연주자들이 하나의 숨으로 엮이는 그 순간마다 해금의 두 줄 현이 떨렸고, 그 미세한 진동이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어떤 이는 눈을 감았고, 어떤 이는 손끝으로 박자를 따라 두드렸다.그 소리 속에는 한국의 정서와 독일의 감각이 함께 살아 있었다. 마지막 곡으로 연주된 〈고향의 봄〉에서는 관객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음악은 언어를 대신했고 정이 공간을 채웠다.

 

마지막 순서로 Hotspot Kpopdance.DE의 무대가 이어졌다. 젊은 댄서들의 몸짓은 자유로웠고, 리듬은 활짝 열린 현재의 한국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춤은 단순히 K-pop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이해한 한국의 감정과 에너지를 표현하는 행위였다. 그 무대의 밝음은 전통의 깊이와 이어졌고, 하루의 마지막을 경쾌하면서도 힘 있게 마무리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대한민국 대사관 본분관이 마련한 한국 음식과 한글 이름 쓰기 체험이 이어졌다. 관객들은 김밥과 떡을 나누며 웃었고, 한글로 자신의 이름이 써진 책갈피를 선물로 받으며 그 형태의 아름다움에 즐거워했다. 먹는 일과 쓰는 일은 모두 같은 마음의 언어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의 뒤에는 팜플렛을 제작하고 행사를 세심히 조율한 주숙영 책임실무관, 그리고 300명이 넘는 관객들에게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하고 나른 대사관의 요리사와 보조 인력들의 수고가 있었다. 눈에 띄지 않는 이들의 손길이야말로 이날의 무대를 가능하게 한 또 하나의 따뜻한 무대였다.

 

그날 본대학교 강당은 정악의 절제나 명상의 고요보다는, 젊은이들의 축제답게 민속의 흥과 사람의 온기로 가득했다. 누구 하나 돋보이려하지 않았지만, 각 무대는 저마다의 색으로 하나의 긴 호흡을 이루었다. 이날의 ‘한국의 날’은 거창한 축제가 아니라, 작은 무대 위에서 피어난 진심의 풍경이었다. 이런 공연들이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새롭지 않지만, 그 하나하나는 여전히 소중하다. 도시의 광장에서, 작은 학교의 강당에서 한국의 음악과 춤이 또 한 번 펼쳐질 때마다 그곳의 시민들은 잠시나마 한국을 여행하는 마음으로 음악과 언어, 그리고 정을 통해 서로를 만날 것이다. 본의 오후에 경험한 악가무는 그 모든 여정의 한 장면이자, 앞으로도 이어질 한국 문화경험의 약속이었다.

 

글: 노유경 Dr. Yookyung Nho-von Blumröder, 

음악학박사, 쾰른대학교 출강, 국제독일교류협회 대표, 해금앙상블(K-Yul) 음악감독 겸 단장,  

Ynhovon1@uni-koeln.de ,인스타그램: Hangulmanse, kyul-germany, www.kyul.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