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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합창 지휘자상, 열린 마인드와 창의성의 시대

카르미나 부라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같은 우리 합창 명곡 나와야 할 때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지휘자의 마인드셋과 시대 감각

합창 지휘자는 단순히 음정과 리듬을 통제하는 ‘기술자’가 아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시대와 대화하며 새로운 예술의 문을 여는 기획자이자 영감의 발화자이다. 현재 많은 지역 합창단들이 재정적인 한계와 한정된 공연 기회로 인해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러나 시대적 정서를 담은 창작 레퍼토리와 한국적 스토리를 발굴하지 않는다면, 합창은 관객과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2012년 탄생한 '송 오브 아리랑'은 이러한 필요성을 증명한 대표적인 사례다. 아리랑이 2011년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자, 국립합창단 지휘자가 탁계석의 대본과 임준희 작곡가를 위촉해 합창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이후 송 오브 아리랑은 국내외 다양한 무대에서 연주되며 한국 합창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이는 지휘자가 시대를 읽는 감각과 실행력을 발휘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휘자의 역할이 단순한 기술적 완성을 넘어 ‘예술적 방향성을 제시하는 창조적 리더십’에 있는 것이다.

 

세계 명곡과 시대정신,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의 명곡들은 그 시대의 아픔과 희망을 노래하며 탄생했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속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Chorus of the Hebrew Slaves) 은 억압받는 민족의 슬픔과 해방에 대한 갈망을 감동적으로 표현하여, 150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 청중의 심금을 울린다. 또한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Finlandia) 역시 핀란드 민족이 독립을 꿈꾸던 시대의 열망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감동의 교향시다. 이처럼 역사적 사건과 예술은 서로의 언어가 되어, 인간의 보편적 감정과 민족적 정체성을 전하는 통로가 된다.

 

스에즈 운하 개통을 기념하여 초연된 아이다가 보여주듯, 예술은 당대의 역사적 순간과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한국 합창계 역시 울산 반구대 암각화, 간절곶 일출,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등 우리의 문화유산을 예술로 풀어내야 한다. 선사시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와 사냥 장면은 우리 조상들의 생명력, 역경을 헤쳐 나가는 의지를 보여주며, 이는 현대 합창의 새로운 서사로 발전할 수 있다.

 

 K-Classic과 합창의 미래 전략

 

오늘날 K-Classic은 단순한 공연 브랜드가 아니라, 한국의 정신과 미학을 세계 무대에서 공유하는 문화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는 지역 합창단과 지휘자들에게 더욱 큰 책무를 요구한다. 서양의 전통 레퍼토리만 반복하는 합창단은 점차 시대와 괴리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향토문화와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낼 수 있는 창작 합창곡을 발굴하고 제작하는 시도가 필수적이다.

 

지난달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인류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는 한국의 선사시대 기록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만약 이 역사적 사건이 한 편의 합창곡으로 재창조된다면, 또 하나의 ‘한국 합창 명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카르미나 부라나 같은 명곡을 왜 만들지 않는 것일까? 지휘자가 이러한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역량 부족으로 밖에 볼 수 없다.

 

K-Classic이 전국의 문화재단 및 예술 단체와 협력해 지역의 향토 문화유산을 합창 콘텐츠로 발굴하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는 수입 합창곡 시대를 훌쩍 넘어서 한국 토산품이 세계 합창 무대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하는 ‘K-콘텐츠’ 시대다. 모든 음식도 제철일 때 맛있듯, 예술도 시대가 요구하는 정서와 메시지를 담아 내야 한다. 설상가상, 오늘날 인공지능(AI)이 예술의 패턴까지 학습하고 추임새를 넣는 세상에서, ‘반복되는 예술’은 AI에게 넘겨주고, 인간 예술가는 창의와 용기로 새로운 것을 실행해야 한다.

 

 

세계가 부를 ‘우리의 합창’은 무엇인가?

 

지금 세계 합창계는 새로운 민족 음악과 독창적 스토리를 갈망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과 현대성이 융합된 합창곡은 곧 세계 합창단의 관심을 끌게 될 것이다. 마치 송 오브 아리랑이 국내외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었듯이, 앞으로는 외국 합창단이 우리의 창작곡을 배우고 부르는 시대가 열린다.

 

선사시대 울산 암각화에 고래를 새긴 조상들의 예술적 영감은 오늘날 우리의 합창에도 이어져야 한다. 예술가는 ‘용기와 실행력’을 갖추어야만 시대를 앞서갈 수 있다. 오늘의 합창 지휘자상은 바로 이러한 가치, 열린 마인드, 창의적 기획, 과감한 실행을 실천하는 이에게 돌아가야 한다.

 

아침 햇살 속에 빛나는 암각화의 영감은 마치 새로운 핀란디아와 아이다를 탄생시키는 신호처럼 우리를 부르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합창의 미래를 여는 ‘K-Classic 합창 르네상스’의 서막이 열리고 있다.

 

오늘의 합창 지휘자상은 “과거를 답습하지 않고, 한국의 정신과 스토리를 세계 무대에 울려 퍼질 합창으로 재창조할 줄 아는 리더”에게 돌아가야 한다. 새로운 발상과 용기를 지닌 지휘자가 등장할 때, 우리의 합창은 세계를 향해 비상할 것이다. 진정한 광복 80주년을 맞는 우리의 다짐이자 각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