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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경고미술연구소 황규완-조선시대의 백자 달항아리

인간이 지닌 가식 없는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 듯한

K-Classic News  석경 황규완 |

 

 

 

보름달을 연상시키듯 아름다우면서도 아무런 장식이 없는 순백의 둥근 항아리를 우리는 달항아리라고 부른다. 그 중에서 높이 40센티미터 이상 되는 큰 항아리를 이른 바 백자대호白磁大壺라고 해서 더욱 귀하게 여긴다.

 

백자 달항아리는 조선시대 18세기 중엽인 영조 시대에 들어 1721년부터 1752년 사이 조선왕조 관영 자기소가 운영되던 경기도 광주廣州 금사리金沙里 가마에서 처음 선을 보였고 1752년 이후에는 광주 분원 가마에서도 초기에 일부 제작되었지만 18세기 후반 이후에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다. 본래 백자 달항아리는 전통 물레로 만들어내기가 어려웠다. 그릇 모양을 빚어 올릴 때 아랫부분이 굳지도 않은 상태에서 윗부분을 둥글게 만들면 태토가 주저앉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서양의 항아리들은 대개 어깨가 풍만하고 허리가 홀쭉한 이른바 장호長壺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러나 보름달처럼 넉넉한 느낌의 둥근 항아리를 만들고 싶은 조선 도공들은 이 기술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달항아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 기술의 비법이란 커다란 왕 대접 두 개를 만들어 그것을 위아래로 이어 붙여 항아리를 만드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었다.

 

  이런 연유로 모든 달항아리는 가운데 부분에 이어붙인 자국이 있고 전체적인 형태는 아주 동그란 것이 아니라 둥그스레한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바로 이 점 때문에 달항아리는 인간적인 채취가 살아있는 너그러운 형태와 어질고 친숙한 선 맛을 지닌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그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훗날 예술가와 문인들이 수없이 칭송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최순우 선생이 “달항아리는 너무나 순정적이어서 마치 인간이 지닌 가식 없는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한 구절을 들 수 있다.

 

 본래 달항아리의 용도는 당시 궁중에서 감상용이나 의뢰용으로 꽃을 곶아 사용된 것으로 추축되며 현존하는 달항아리는 250여 년을 견디고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수량은 국내외를 통 털어 약 30점 정도로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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