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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학의 문화노트] 상업적 시각으로 다시 바라본 서양 예술사

바이올린 스크롤 디자인, 17세기 유럽 왕실 디자인의 콘셉트가 되다!

K-Classic News  황순학 교수 |

 

바로크(Baroque)

바이올린 스크롤 디자인, 17세기 유럽 왕실 디자인의 콘셉트가 되다!

 

현대와는 다르게 바로크 시대에는 뚱뚱하고 육중한 사람이 오히려 매력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육중한 사람들은 활발한 활동의 결과물로서 과도한 체중은 게으르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많이 먹고, 많이 마시고, 깊이 자는 격렬한 생활의 결과라 여겨졌다. 이런 배경에는 유럽인의 음식 섭취에 관한 변화가 그 배경 중 하나이다. 

 

14세기에 네덜란드의 한 어부가 청어의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에 절이는 방법을 고안해낸 이후로 염장된 청어는 오랜 기간 보관이 가능했고 이후 유럽 각국으로 팔려나간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염장 청어는 ‘바다의 밀’이라 불릴 정도로 저렴하면서도 영양이 풍부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유럽인을 이전보다 크게 살찌우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변화는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16세기부터 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의 식민지에서 가져온 감자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들여온 감자는 유럽 각 지역으로 빠르게 재배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후가 맞지 않아 잘 자라지 못했으나, 점차 알이 굵고 재배하기 편한 감자로 변화하였다. 17세기에는 계속되는 감자 풍년으로 유럽 인구가 증가했으며, 프랑스어로 감자는 ‘폼 드 테르(Pomme de terre)’부르며, 즉 땅의 사과로 불리게 된다. 익히지 않은 생감자의 식감은 코를 막고 씹어 보면 사과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과와 흡사한 단단하고 아삭한 질감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럽 사회에서 음식 섭취에서 청어 염장과 감자 재배로 인한 영양분의 급격한 증가는 17세기 바로크 예술이 갖는 과도한 풍만함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이런 풍만한 아름다움은 바이올린 첼로 등 현악기들의 모습으로 이어지는데, 살진 모습의 인물들로 가득한 루벤스의 그림처럼 이탈리아산 현악기들은 인간 육체의 풍만함을 기하학적 관점으로 재조명해 그려내고 있다 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현대적 바이올린의 모습은 1590년경 이탈리아 북부 크레모나 출신의 바이올린 제작자로 유명한 아마티 가문에 의해 만들어진다. 아마티 가문은 바이올린의 형태가 형성되어가던 초창기 시기에서 바이올린의 형태와 구조를 확립하여 후대 바이올린 제작자들에게 그 기준을 제시하는데 바이올린 형태에 있어 가장 큰 변화된 시도는 스크롤이었다. 스크롤 부분은 바이올린에 있어 음향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부분이라 아마티 가문 이전까지는 다음처럼 다양한 모습과 형태로 제작되곤 했다.

 

 

우스개 이야기로 바이올린 스크롤은 바이올린 제작 기간 단 한 번의 역할을 하는데 바이올린 도색을 위해 도료를 칠한 후 말릴 시에 편의를 위해 줄에 걸어 놓을 때 딱 한 번 사용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처럼 하찮은 부분마저도 아마티 가문은 아름다움으로 제작했다는 점은 그들의 특별한 미의식을 잘 설명하는 부분이 바로 스크롤이다.

 

 

위의 이미지처럼 현재까지도 400년 전의 바이올린의 외적 형태가 가졌던 아름다움이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게 느낀다는 것을 부정하기란 힘들 정도로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것이 스크롤이다. 바이올린에서 느껴지는 곡선미의 또 다른 부분은 ‘f’자 홀이다. 바이올린 음색이 몸통을 울린 후 멋지게 빠져나가는 곳이다. 아마티 가문은 바이올린 제작뿐만 아니라 교육 면에서도 큰 역할을 하였는데, 특히 니콜로 아마티는 여러 제자를 문하에 둠으로써 그의 바이올린 제작 기술이 이탈리아 전역에 퍼질 나갈 수 있게 만든 이였는데 여기에는 재밌는 일화가 있다.

 

아마티 가문은 전통적으로 거의 본인 혼자 힘으로 바이올린을 제작하거나 가끔은 그들의 자식들의 도움으로만 바이올린을 제작했다 한다. 즉 바이올린 제작기법은 당시에 가문의 절대 비밀이었다. 하지만 아마티 가문의 3대인 니콜로 아마티는 외부 제자의 영입에 관대하여 그의 제자 중 우리가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유명한 제자들로는 과르니에리와 스트라디바리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잘 모르는 조반니 바티스타 로제리란 또 다른 인물이 있다. 로제티의 바이올린은 과르니에리나 스트라디바리보다는 비교적 싼 가격에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스승인 니콜로 아마티로부터 f자 홀 음각에 있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서이다. 다음은 로제리의 f자 홀 음각의 모습이다.

 

 

f자 홀 아래쪽을 유심히 살펴보면 곡선이 완만하게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스승으로부터 이런 완만한 곡선 형태는 당시 게으른 느낌이란 평가를 받았다 한다. 로제기로서는 스승인 아마티가 자신의 동료인 스트라디바리의 f자 홀 음각만을 높이 평가하고 자신의 f자 홀 음각 실력을 못마땅해하며 나무라자, 고민 끝에 니콜로 아마티의 공방을 나와 크레모나와 경쟁 도시였던 브레시아로 터전을 옮기면서 로제리에 의해 아마티 가문의 바이올린 제작기법은 세상에 공개되고 전 유럽으로 알려지게 된다. 다음은 스트라디바리의 f자 홀 음각 모습이다.

 

 

 

앞서 살펴본 로제리의 f자 홀 음각보다는 매우 날렵한 곡선미를 선보이고 있다. 자세히 보면 로제리의 f자 홀이 완만한 곡선인 것에 반해 스트라디바리의 f자 홀의 곡선은 빠르게 아래로 떨어졌다가 다시 위로 빠르게 용솟음치며 올라간 모습이다. 이런 경우를 패션 업계에선 “선이 잘 떨어진 모습이다!”라고 평한다. 이처럼 ‘선이 빠르다’에서 기원한 새로운 용어가 바로크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는데, 바로 이탈리아어 ‘라피나토’(raffinato)이다. 우리 말로 해석하면 ‘세련되다!’란 뜻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곡선의 풍만함으로 인한 우아한 모습이라 할 수 있으며. 바로크 시기의 전반적인 아름다움의 특징인 ‘인공미’ 그러니까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기보다는 극한의 인위적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는 용어로 자리 잡는다. 이후 이 용어는 패션 디자인에서 도회적 아름다움의 의미를 갖는 ‘세련된 아름다움’의 용어적 기원이 된다. 이처럼 세련된 아름다움이 탄생한 바로크 시기는 이전 시대인 르네상스가 갖는 이상적인 ‘자연미’에서 벗어나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시대이었으며, 이런 인공적인 아름다움은 패션과 건축 디자인 분야를 망라한 17세기에 유럽 왕실을 위해 생산되는 모든 물품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