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황순학 교수| “클래식(Classic)의 현대적 해석은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트랜드 중 하나는 기교를 최소화하고 절제의 미를 추구하는 미니멀리즘한 스타일이며, 미니멀리즘은 이제 인테리어, 패션, 건축, 심지어는 단순하게 살기를 추구하는 삶의 철학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다음 이미지처럼 요즘 카페 인테리어 디자인은 대부분 미니멀리즘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최소한의 단순한 요소 한 가지로만 최신 트랜드인 미니멀리즘을 정의하기란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이런 부족한 느낌을 채울 수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18세기 신고전주의가 지향한 고전적 아름다움인 클래식(Classic)이라는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미니멀리즘이란 의미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 평소 우리 사회에서 클래식(Classic)이라는 용어를 떠올릴 때, 주로 연상되는 의미는 프랑스어 클리셰(Cliché)가 아닐까 싶다. 프랑스어 클리셰는 진부한 표현이나 고정관념을 뜻하며, 주로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진부한 장면이나 판에 박힌 대화 등을 뜻하는 부정적 느낌의 용어이기에, 우리 사회에서 클래식 또
K-Classic News 황순학 교수 | “예술, 나폴레옹의 선전도구로 전락한다!” 현대의 프로파간다(선동:Propaganda)는 프랑스 혁명 시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당시 프랑스 국민은 언론과 다양한 집단에 의해 체계적인 선전에 새로운 충성심과 국가적 정체성이 강요된다. 여기에는 대중에게 어필하고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형태가 포함되었는데 신문, 팜플렛, 대량 배포용 판화, 만화와 캐리커처,연극, 노래, 공공 기념물 등이 있었다. 대중을 새로운 애국심으로 통합해야 했던 프랑스 혁명 지도자들은 모든 형태의 예술이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자유와 평등과 같은 공화국의 원칙 등을 알리기 위해 당시 대부분 문맹인 대중에게 새로운 예술적 이미지가 필요해진다. 이런 이미지는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동전, 편지지, 다양한 출판물 및 인쇄물에 적용했다. 심지어 카드 놀이 이미지 조차도 기존의 귀족적 이미지를 제거하기 위해 다시 디자인되었다. 혁명의 이상을 홍보하는 이미지에는 테니스 코트의 맹세와 같은 혁명의 주요 사건을 묘사한 이미지 외에도 시민적 미덕과 조국에 대한 이타적인 헌신을 강조한 이미지가 요구되었다. 이는 종종 동시대 주제를 묘사
K-Classic News 황순학 교수 | “단순함은 고도의 정교함이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예술의 역사를 극도로 단순하게 전개하면, 원시적 상징적 단순함에서 출발해 사실 재현적인 자연주의 양식과 자연주의 양식을 사실 재현적 요소와 함께 단순화한 기하학 양식이 공존하고 이후 극도로 인공적인 화려함으로 치닫다 다시 단순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단순함은 서양 예술에서 늘 화려함 다음에 찾아오는 정화작용 역할을 맡는다. 신고전주의 양식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등장한 예술 사조를 뜻하는데, 가장 큰 특징으로 단순함을 추구하는 형식미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형식적이다’라는 말은 대부분 좋은 의미의 말은 아니지만 달리 생각해 ‘형식을 갖추었다’란 의미로 접근해 보면, ‘형식적이다’라는 부정적 의미에서 탈피할 수 있다.즉 형식미는 최적의 요소들로 구성된 정교함을 추구하는 예술인 것이다. 럼 왜 18세기 말 예술은 로코코의 화려하고 기교적인 예술에서 벗어나 단순함에 의한 형식미를 추구하게 되었느냐는 의문에 도달한다. 서양 역사에서 신고전주의 예술은 바로크 말기 로코코 시대 유희와 쾌락 추구로 인해 경박해진 사회 풍조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났다.
K-Classic News 황순학 교수 | “평범한 예술가는 베끼지만, 훌륭한 예술가는 훔친다!” - 파블로 피카소. 일명 ‘무시대 패션’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며 침체에 빠졌던 구찌(Gucci)를 재도약 시킨 인물로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사례는 브랜드 속 예술사가 끼치는 영향을 잘 말해준다. 그에 관한 세간의 평가는 아름다운 것을 골라내는데 타고난 ‘큐레이터’ 같은 눈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그가 인정받는 건, 가장 ‘올드’한 오브제들을 골라내 정신없이 섞어 ‘최신’ 트렌드로 창조해 내는 창의력으로 크게 인정받는다는 점이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최신 트랜드를 창조해 내는 그의 창의력의 기반은 평소 가장 ‘올드’한 것과 함께 지낸다는 점이다. 이탈리아 로마의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거주하고 있는 그의 아파트는 바로크 시기 건축물이다 보니 평소에도 수많은 ‘올드’한 것들과 같이 살아가고 있다.그리고 엄청난 빈티지 수집가이기도 한 그는 그가 좋아하는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의 프린트에 관심이 많다. 이런 결과로 ‘올드’한 패턴 속에서 아름다움을 골라낸 후에 그것을 정신없게 ‘믹스’해 보는 이에게 최신 패턴으로 착각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빠지게 하는 능력
K-Classic News 황순학 교수 “베르니니와 보로미니” 바로크 양식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가톨릭의 반종교개혁 차원에서 시작되어 베르니니와 카라바초에 의해 전개되고 발전한다. 특히 베르니니가 추구한 화려한 볼륨의 풍부한 곡선미는 인간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이런 베르니니가 조각 예술에서 구현한 풍부한 볼륨의 곡선미를 건축에서 재현한 이가 바로 베르니니의 평생의 경쟁자였던, 스위스 출신의 프란체스코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 1599~1667]이다. 이 바로크 예술의 두 주인공은 둘 다 20대 후반이었을 때 로마에서 우연히 만난다. 보로미니가 1619년 로마에 도착했을 때, 베르니니는 이미 놀랄 만큼의 많은 수의 화려한 조각상을 낳은 후 이미 ‘로마라는 도시의 장면’을 조각하는 조각가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교황 우르반 8세(Urban VIII)가 공개적으로 다른 모든 사람보다 베르니니를 선호함에 따라 거의 20년 동안 베르니니의 명성 아래서 자신의 미래를 도모할 수밖에 없었다. 보로미니의 상황은 1644년 차기 교황이 집권하면서 바뀐다. 인노센치오 10세(Innocenzio X)는 그의 전임자와 그의 가문인 바르베리니(Ba
K-Classic News 황순학교수 | 우리나라 지폐 주인공들이 대부분 왕이나 지금의 행정고시인 과거 시험 합격자들인 것과는 다르게, 유로화로 통합되기 전 과거 이탈리아 지폐의 주인공으로는 보티첼리, 다 빈치, 미켈란젤로, 티치아노, 카라바조, 베르니니, 벨리니, 베르디 등 지폐나 동전의 주인공 대부분이 예술가라는 사실이 색다르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이탈리아 지폐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의 지폐에서 종종 발견되는 공통된 현상이다. 이로써 유럽 사회에서 예술에 관한 관심과 그 중요도가 우리와는 사뭇 다르게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 을 알 수 있다. 다음 이미지는 2002년 1월 1일 유럽이 유로화로 단일화되기 전의 이탈리아 지폐 리라(Lira, Lire) 를 장식했던 인물들이다. 먼저, 1,000리라의 주인공은 우리에게 몬테소리(Maria Montessori)로 잘 알려진 마리아 테클라 아 르테미시아 몬테소리(Maria Tecla Artemisia Montessori)이다. 그녀는 이탈리아의 교육자 겸 아 동 신경정신과 의사이자 과학자였으며 무엇보다도 그녀는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교육 방법은 아이의 잠재력을 키워주고 발전시키기보다는, 아이의 잠재력을 실질적으로 억압하
K-Classic News 황순학 교수 | 바로크(Baroque) 바이올린 스크롤 디자인, 17세기 유럽 왕실 디자인의 콘셉트가 되다! 현대와는 다르게 바로크 시대에는 뚱뚱하고 육중한 사람이 오히려 매력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육중한 사람들은 활발한 활동의 결과물로서 과도한 체중은 게으르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많이 먹고, 많이 마시고, 깊이 자는 격렬한 생활의 결과라 여겨졌다. 이런 배경에는 유럽인의 음식 섭취에 관한 변화가 그 배경 중 하나이다. 14세기에 네덜란드의 한 어부가 청어의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에 절이는 방법을 고안해낸 이후로 염장된 청어는 오랜 기간 보관이 가능했고 이후 유럽 각국으로 팔려나간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염장 청어는 ‘바다의 밀’이라 불릴 정도로 저렴하면서도 영양이 풍부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유럽인을 이전보다 크게 살찌우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변화는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16세기부터 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의 식민지에서 가져온 감자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들여온 감자는 유럽 각 지역으로 빠르게 재배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후가 맞지 않아 잘 자라지 못했으나, 점차 알이 굵
K-Classic News 황순학교수 기자 | 이탈리아 도시국가 중 하나인 피렌체 공화국에서 르네상스가 발생 기원후 4세기 무렵 지금의 서유럽 지역의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하고 신성로마제국 즉 중세를 맞이하지만, 동로마제국은 계속 건재해 오다 1453년 5월 29일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오스만 제국에게 함락당한다. 이 사건으로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존재해왔던 동로마제국은 종말을 고하게 되고 동로마제국의 그리스 고전학 연구 학자들과 선진 과학과 기술자들이 이슬람의 지배를 피해 당시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웠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로 대거 망명하게 되고, 결국 이탈리아 도시국가 중 하나인 피렌체 공화국에서 르네상스가 발생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은 당시로서는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베네치아 공화국을 위시해 이탈리아 내의 도시국가들은 오랫동안 동서 무역의 중계지로서 막대한 부를 형성을 할 수 있었고 여타의 유럽 국가들이 왕정 체제를 고수하고 있었던 것에 반해 베네치아와 피렌체로 대표되는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교황령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민주적 정치 체제인 공화국이었던 관계로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충분한 여건이
K-Classic News 황순학교수 | 3. 르네상스가 전하는 혁신의 본질 “르네상스적 혁신은 무언가를 싹 다 바꾸는 것이 아니다!” 서양 예술사에서 두 번의, 혁신의 시대가 도래하는데 그것을 고전주의(Classicism)라 지칭한다. 첫 번째 고전주의는 중세 암흑기를 극복한 15세기 르네상스(Renaissance)의 혁신이며, 두 번째 고전주의는 프랑스 혁명을 통해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구체재(舊體制)) 즉 절대왕정 체재의 몰락을 가져온 혁신인 18세기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이다. 여기서 고전주의(Classicism)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고대 그리스 문화와 예술을 뜻하며, 이처럼 고전주의, 즉 클래식(Classic)은 유럽의 역사에서 늘 혼돈의 시기를 정화하는 요소로 고대 그리스가 소환된다는 점이다.즉 서양 역사에서 혁신은 늘 자신들의 과거 즉 서양 인문학과 철학 그리고 예술의 본향인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는 순환적 구조의 역사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혁신의 의미는 몇 년 전 모 회장님께서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마누라 빼고, 싹 다 바꿔라!”는 발언과 그 기업의 성공 신화 때문에 혁신은 기존의
K-Classic News 황순학 교수 | “메디치효과가 르네상스를 낳았다?” 메디치효과를 단순히 설명하자면, 서로 다른 이질적인 분야를 접목하여 혁신적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기업경영방식을 뜻한다. 즉 서로 관련성이 없을 것 같은 이종 간 교류, 융합이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뛰어난 생산성으로 나타나고 새로운 시너지가 창출된다는 경영이론이다. 이는 15세기 르네상스를 연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과학자. 인문학자, 예술가 등 여러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후원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피렌체에 모여든 다양한 분야의 이질적 집단 간의 교류를 통해 서로의 역량이 융합되면서 생긴 시너지가 르네상스를 일으켰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다분히 정치적 성공을 위한 사회적 영향력의 기반을 닦기 위한 코시모 데 메디치의 천문학적 투자는 예술가나 인문학자 그리고 과학자를 자신의 돈을 들여 투자해 후원하지만, 후원의 결과물인 작품의 이름들은 고스란히 예술가나 인문학자 그리고 과학자의 몫으로 돌렸다는 점이다. 코시모의 이런 후원 방식이 알려지자 이탈리아 내는 물론이고 전 유럽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자 피렌체로 몰려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피렌체는 베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