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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 칼럼] 슈베르트 보다 멘델스존 처럼 한번 살아 봐요

세계음악사 연표(年表)에 함께 포토(photo) 찍을 작곡가는 누구?

K-Classic News 탁계석 평론가  |

 

 

가난은 싫다. 죽어라고 해도 원고지를 살 수 없었던 슈베르트의 궁핍은 이젠 싫다. 죽어서 이름만 남기는 것보다 살아서 행복도  느끼는 멘델스존 세상을 만들 수는 없을까?  

 

공주는 잠못이루고~ 칼라프 왕자만의 고민일까?  우리 남편은 날밤 새기를 밥먹듯하는 나를 싫어 한다. 나의 아내 역시 밤을 잊은 시든 청춘을  싫어한다. 

 

그렇다면, 작곡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작가라는  자존심하나? 작품은 영원불멸할 것이란 신화같은 믿음?  아!  지치고 너무 지친다.

 

그렇다고 노동판에 땅을 파기엔 체력이 약하다. 택배를 하기에도 숨이 차오를 것 같다. 오직 기술은 오선지에 영감의 샘을 그려 넣는 능력뿐.

 

다른 것은 할 줄도 모르고 하기도 싫다. 천생 창작의 짊을 진다. 창조의 수레바퀴를 시지푸스의 신화처럼 밀고 또 밀어올릴 뿐이다. 저 산에 오르면 희망이 있으니까, 저기에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고 하니까,  사막을 가는 것은 오아시스  때문이다.  속고 또 속으면서 낮엔 태양이, 밤엔 달이 동행 하니까. 

 

그래도 이제는 생각을 바꿔서 다른 세상을 살고 싶다.  슈베르트 보다 멘델스존처럼 한번 살아 보고 싶다.  달콤한 유혹이다.  K 클래식이 실크 로드를 찾아 나선 이유다. 

 

창작에 직선은 없다. 돌고 돌다 보면 내가 중심에 선 날이 온다. 늘 춥던 빙하기가 지나고 변방의 땅 값이 뛰기 시작했다. 지동설을 지나 동방의 빛이 세계를 비추는 문명사가 도래했다. 서양음악사 연표(年表)에 얼굴을 그려 넣고 싶다. 누가 세계 명작곡가들과 함께 포토(photo)를 나란히 찍을 것인가. 

 

그 날이 결코 멀지 않다.  베토벤 합창과 코리아 판타지가 만나는 날, 그 날은  오리라. 봄이 얼음을 깨고 강을 건너 왔듯이, 아리랑 춤사위 경계를 허물고 멘델스존 노래의 날개위에 함께 춤추는 그 날은 반드시 오고야 말리라!  열린 시간에 경계는 없다. 

 

 

                              강창열 열린시간 *20F(73cm x 61cm) 캔버스에 혼합재료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