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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 칼럼] AI 이후, 오케스트라는 지역 문화 플랫폼이 되어야

문화 경쟁력은 암기와 모방이 아니라 감성과 스토리 정체성에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지역의 역사, 설화, 자연, 기억을 음악으로 살려내야

 

AI 기술은 산업의 구조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문화를 만들고 향유하는 방식까지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 오케스트라 역시 더 이상 과거의 운영 방식에 머물 수 없다. 이제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연주 단체를 넘어 지역 문화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할 시점이다.

 

과거의 오케스트라는 연주 기술력과 레퍼토리 축적 중심의 구조였다. 서양 고전 작품을 얼마나 정교하게 재현하느냐가 평가 기준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의 문화 경쟁력은 암기와 모방이 아니라 감성과 스토리, 즉 정체성에 있다.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와 정서적 연결이 핵심 자산이 되는 것이다.

 

한국 오케스트라가 여전히 외국 레퍼토리 중심에 머문다면 시민과의 감성적 접점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역이 가진 역사, 설화, 자연, 기억을 음악으로 구현하는 작업이야말로 새로운 문화 경쟁력을 만든다. 오케스트라는 지역의 이야기를 예술로 기록하는 창작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세계적 지휘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원칙이 있다. “오케스트라는 반드시 자기 나라의 작품을 연주해야 한다. 그 음악 속에 그 나라의 정신과 시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단순한 애국주의가 아니라 문화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통찰이다. 지역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드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미래 전략이다.

 

그래서 오케스트라의 역할을 “지역 콘텐츠 플랫폼”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본다. 단순히 공연 단체를 넘어 지역 문화 자원을 음악 콘텐츠로 개발하고 시민 참여 프로그램과 연결할 때 문화 산업적 파급 효과는 커진다. 프로젝트 기반 창작 공연은 충분히 실행 가능한 모델이며, 특히 젊은 연주자와 콩쿠르 수상자들이 지역 프로젝트에 참여할 경우 실제 고용과 예술 생태계 활성화라는 이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우리 강 소재로 스메타나 '몰다우' 처럼 명곡 만들어야 할 때 

 

더 나아가 오케스트라가 없는 도시나 군에서도 브랜드 K-오케스트라를 활용해 향토 작품을 제작해 할 수 있는 변화된 세상이다. 예컨대 한강, 태화강, 남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 등 우리 강토를 흐르는 주요 강들을 소재로 스메타나의 ‘몰다우’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교향적 작품을 만든다면, 이는 곧 도시의 문화 상징이 된다. 음악은 지역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동시에 관광과 문화 브랜드를 키우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우리가 서양음악사를 반복적으로 수용하는 데 익숙했던 만큼, 이제는 그 형식을 K 콘텐츠로 전환하는 구체제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은 AI 이전과 이후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더 마스터 키 강상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AI 이후의 예술은 암기 지식이 아니라 과정 체험과 상상력의 영역이다. 인간만이 설계할 수 있는 감성과 서사가 예술의 핵심 자산이 된다.”

 

이 통찰은 오케스트라의 방향을 분명히 한다. 반복과 모방의 가치는 급격히 낮아지고, 창작 능력과 해석력이 문화 경쟁력이 된다. 오케스트라도 일정 비율 이상의 창작 레퍼토리를 확보하고 작곡가·기획자·지역 예술가와 협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단순한 프로그램 다양화가 아니라 한국의 문화 서사를 음악으로 축적하는 전략이다. 만약 이러한 전환이 어렵다면, 프로젝트 기반의 맞춤형 오케스트라가 더 효율적이며 미래 지향적일 수 있다. 

 

기득권 공공 오케스트라 설득은 한계, 새로운 K 오케스트라 어법 추구

 

반세기 넘게 운영되어 온 공공 오케스트라 구조적 재검토가 그래서 필요하다. 붙박이형 운영은 조직의 경직성과 창작 전무(全無)라는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AI 이후의 조직은 유연성과 협업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프랜차이즈형 운영 모델은 창작과 실행의 속도를 높이고 예술 생태계를 개방적으로 만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 변화 속에서도 예술의 본질을 지키는 균형이다.

 

결국 답은 지역과 시민에게 돌아간다. 기술 시대일수록 인간의 이야기는 더 중요해지고 지역 콘텐츠를 통한 청년 예술가의 참여와 새로운 문화 에너지가 축적될 때 지속 가능한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이는 문화 생태계의 구조적 전환이며, 한국 음악이 자신만의 서사를 구축하는 역사적 기회다. 이제 오케스트라는 무대 위에만 존재하는 단체가 아니라, 지역과 함께 살아 움직이는 문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