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소멸의 즐거움
걷어 내면서 맑아지는 게
어디 설렁탕 국물 만이랴
우려내면서 깊어지는 게
어디 사골뼈 만이랴
세상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연륜이 다해 납골당이 멀지 않았다면
조금씩 조금씩 걷어 내고 걷어 내어
몸을 가볍게 할 일이다
그 맑은 눈으로
하늘을 보고 땅을 밟으며
풀에 이르는 것 , 바람에 이르는 것
원형으로 회귀하는 것
소멸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어디 저녁 노을만 이랴
따사한 햇살에 몸 비비는 돌담 만이랴
-AI 詩評-
탁계석 시인의 「소멸의 즐거움」은 제목에서부터 역설의 미학을 내세운다. ‘소멸’은 통상 상실과 끝을 의미하지만, 시인은 그것을 ‘즐거움’이라는 감각으로 전환한다. 이 전환이야말로 이 시의 핵심 미학이자 철학적 중심이다.
■ 걷어냄의 미학, 비움의 철학
“걷어 내면서 맑아지는 게 / 어디 설렁탕 국물 만이랴”
이 구절은 일상의 구체적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설렁탕 국물은 불순물을 걷어낼수록 맑아진다. 시인은 이 생활적 체험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확장한다. ‘걷어냄’은 단순한 제거가 아니라 정화이며, 삶의 본질을 드러내는 과정이다.이어지는 “우려내면서 깊어지는 게 / 어디 사골뼈 만이랴”는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걷어냄이 ‘맑음’이라면, 우려냄은 ‘깊이’다. 즉, 이 시는 맑음과 깊이, 비움과 축적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제시하며 인간 존재의 완성을 말한다.
■ 삶의 종착역을 향한 담담한 인식
“연륜이 다해 납골당이 멀지 않았다면” 이 구절은 시의 정서를 한층 낮고 깊은 곳으로 끌어내린다. 죽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만, 비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담담하다.
이는 노년의 통찰, 혹은 생의 후반부에 도달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거리 두기와 수용의 태도다.여기서 ‘조금씩 걷어 내고 걷어 내어 / 몸을 가볍게 할 일이다’라는 문장은 단순한 노년의 권유가 아니라, 삶 전체에 대한 윤리적 제안이다. 욕망, 집착, 기억, 심지어 자아까지도 덜어내는 과정—이것이 곧 시인이 말하는 ‘소멸의 준비’다.
■ 원형으로의 회귀, 존재의 귀향
“풀에 이르는 것, 바람에 이르는 것 / 원형으로 회귀하는 것” 이 부분에서 시는 자연과 존재의 근원으로 확장된다. ‘풀’과 ‘바람’은 인간 이전의 상태, 혹은 인간 이후의 상태를 상징한다.여기서 소멸은 사라짐이 아니라 귀향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본래의 자리로 회귀하는 것. 이는 동양적 자연관—특히 무위(無爲)와 순환의 사상—을 연상시키며,존재의 완성은 확장이 아니라 환원에 있음을 암시한다.
■ 소멸의 감각을 미학으로 전환하다
“소멸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 어디 저녁 노을만 이랴” 저녁 노을은 흔히 소멸의 아름다움으로 비유된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을 넘어선다.
돌담, 햇살 같은 일상의 사물까지 끌어들여 소멸을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삶 전체에 스며든 감각으로 확장한다. 즉, 이 시에서 소멸은 끝이 아니라 과정이며 상실이 아니라 정화이며 죽음이 아니라 귀향이다
■ 총평
「소멸의 즐거움」은 노년의 정서를 넘어, 존재의 본질을 ‘덜어냄’이라는 행위로 사유한 철학적 서정시다. 이 시의 미덕은 과장된 비극이나 감상에 있지 않다. 오히려 설렁탕 국물, 사골, 돌담 같은 생활적 이미지 속에서 존재론적 질문을 길어 올린 데 있다.
결국 이 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삶의 완성은 더하는 데 있지 않고, 덜어내는 데 있다. 그리고 그 덜어냄의 끝에서, 인간은 비로소 가벼워지고 맑아지며 자연의 일부로 돌아간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소멸이야말로 가장 조용한 완성이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