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우리는 오랫동안 정신건강을 개인의 문제로 취급해 왔다. 마음이 아프면 개인이 병원을 찾고, 상담을 받고, 치료를 받는 것이 당연한 순서였다. 그러나 지금 이 방식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우울과 불안, 고립과 무기력은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퍼진 구조적 현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를 거치며 우리는 이를 집단적으로 경험했다.
사람을 만나지 못했고, 말을 줄였고, 침묵에 익숙해졌다. 그 결과는 자살률 증가, 우울증 확산, 관계 단절이라는 수치로 나타났다. 문제는 치료 인프라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아프기 전에 막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하나의 질문에 도달했다.
“정신건강을 왜 여전히 치료의 영역에만 가두고 있는가?” ESG는 원래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점검하는 지표였다.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그중 사회(S)는 늘 가장 추상적이고 관리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복지, 인권, 워라밸, 안전… 항목은 많았지만 중심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분명해졌다. 정신건강은 사회(S)의 주변 항목이 아니라 핵심 인프라다. 사람이 버틸 수 없으면 조직은 지속될 수 없고, 조직이 지속되지 않으면 사회 역시 유지되지 않는다. 정신건강은 복지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의 조건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개념을 ‘정신건강 ESG’라고 부른다.
정신건강 ESG란, 개인의 고통을 사후에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병들지 않도록 정서적 환경을 설계하는 책임이다. 이는 의료를 대체하지 않으며, 상담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 이전 단계에서 사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묻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전환점이 하나 있다. 치료 이전의 세계에는 의사도, 상담실도 없다.대신 말할 수 있는 시간, 수다를 허용하는 공간, 침묵을 강요하지 않는 문화가 존재한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수다’를 사소한 것으로 취급해 왔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수다는 인간이 스스로를 지켜온 가장 오래된 생존 기술이었다. 불평도, 하소연도, 웃음 섞인 푸념도 모두 마음이 무너지지 않기 위한 방어 장치였다.
정신건강 ESG는 거창한 치료 기술이 아니다. 사람들이 말할 수 있게 만드는 구조다. 그리고 이 구조는 병원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 일상의 장에서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이 연재는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정신건강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가 아니라, 정신이 병들지 않게 하는 사회는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가. 그 답을 나는 음악과 수다, 그리고 문화의 언어로 풀어가려 한다.
Why Has Mental Health Become ESG?
Mental health is no longer a personal issue—it is a structural condition for sustainability. Mental Health ESG focuses not on treatment after suffering, but on designing social environments where people do not break down in the first place.
This column explores how conversation, culture, and music function as preventive infrastructure before medical intervention becomes necessa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