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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의 마스터피스] 클래식과 K 클래식, 어디 맞짱 한번 떠볼까?

현장과 시장을 직시하는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클래식과 K클래식 맞짱뜨기, AI에게 묻는다

 

 

클래식은 당연히 유럽을 중심으로 한 음악이다. 여기에 K 클래식은 우리 전통을 바탕으로 오늘의 현대 기법으로 만든 한국 작곡가의 음악이다. 산조나 판소리처럼 작자 미상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했더라도 분명한 작곡가의 이름이 악보에 기록된다.클래식의 본질이 특정 지역의 전유물이 아니라, 한 사회의 언어와 역사, 감정이 음악으로 체계화된 결과라면 이제 한국 역시 자기 언어로 완성된 클래식을 논할 자격을 충분히 갖춘 시점에 와 있다.

 

그렇다면 찬송가로부터의 클래식 도입 100년이 넘은 시점에서 우리 창작의 경쟁력은 얼마나 될까? 그래서 문득 떠오르는, 다소 엉뚱한 발상이 하나 있다. 실제 유럽의 명곡과 K 클래식 작품을 한 무대에 세워 맞짱을 떠보면 어떨까?

 

어떤 것이 정서적으로 더 잘 소통되고 감동을 주는가? 솔직히 이를 정면으로 다루어 본 적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런 실험 과정을 통해 서양 클래식과 한국 K 클래식의 성격을 청중 스스로 체감하게 하자는 뜻이다. 지금은 푸드뿐만 아니라 화장품, 패션, K아츠, K컬처 전반이 서양 중심 시장을 넘어 독자적 영역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시대다. 유럽의 수백 년 된 전통, 곧 우리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시대 연대의 클래식을 동경하고 재현하는 데만 몰두할 때는 이미 지났다는 판단이다. 맞짱은 파괴가 아니라 검증이며, 열등감의 분출이 아니라 동등한 무대에서 좌표를 확인하려는 문화적 성찰의 방식이다.

 

필자는 평론가 입장에서 서양 클래식의 숲에서 우리 것이 등굽은 소나무처럼 변방에 서 있는 현실을 오래도록 안타깝게 바라봐 왔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것 안에 내재된 장점과 매력을 적지 않게 목격해 왔다. ‘우리 것이 좋다’는 구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것이 실제로 통한다’는 현장의 증명이며, K-Classic은 이미 그 문턱을 넘어섰다.

 

지난달 한국피아노학회가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연 그랜드 피아노 콘서트는 이를 확인시켜 준 실증적 사례였다. 4대의 그랜드 피아노를 8명이 연주하며 서양 레퍼토리를 편곡해 이어가던 무대에서, 1부 마지막에 박영란 작곡가가 피아노 그룹에 가야금과 장구를 결합한 ‘아리랑’을 선보이자 청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 순간의 집중도와 공감의 밀도는 앞선 모든 레퍼토리를 압도해 버렸다. 그리고 이 같은 현상은 결코 처음이 아니었다.

 

K 클래식 레퍼토리의 강한 설득력은 그래서 이번이 예외가 아니다. 맞짱론이 나온 배경이다. 이를 확장해 베토벤의 ‘합창’과 칸타타 ‘송 오브 아리랑’, 한강 칸타타의 피날레를 한 무대에 세워 청중의 반응을 비교해 보자는 제안은 그래서 더 흥미롭다. 이 또한 충분히 의미 있는 실험이 아닐까. 산업과 경제, 기술에서만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삶과 역사, 문명의 강물 역시 흐름의 역사를 피할 수 없다. 이것이 이번 마스터피스가 준 또 하나의 자신감이자 자존감이다. 서양 레퍼토리로 콩쿠르를 석권하고 에콜 노르말 최고 과정을 자랑하던 유학 만능의 시대는 저물고, 이제는 생존의 시대가 도래했다. 현장과 시장을 직시하는 분명한 인식이 그래서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맞짱이다.

 

이번 3일간의 마스터피스 페스티벌 ‘K가곡, 맛있는 새로운 요리를 즐기다’를 지켜본 관객들의 반응은 분명했다. 슈베르트나 브람스, 이탈리아 칸초네보다 우리 현대 K가곡이 정서적으로 더 가깝고 편안하게 다가온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공연 직후 도착한 관객들의 카톡 리뷰에는 “가사를 듣는 순간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설명 없이도 바로 와닿았다”, “이제 왜 K가곡이 필요한지 알겠다”는 메시지들이 이어졌다.

 

예술적 오해를 푸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변화의 환경은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결과는 늘 일회성 창작의 반복이다. 경쟁력을 통해 시간을 견디며 살아남는 것, 그 과정 자체가 마스터피스다. 맞짱을 통해 상호 긴장과 경쟁력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마스터피스란 완성의 이름이 아니라, 반복 속에서도 무대에서 살아남은 작품의 생존 기록이기 때문이다.

 

모험과 도전은 분명 잃는 것도 동반한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어떤 비전도 가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