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노유경 평론가 기자
(추모에세이) 작곡가 백병동을 기억하며
― 소리와 시간, 그리고 한 작곡가의 자리
2026년 3월 12일, 작곡가 백병동이 향년 90세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 현대음악의 형성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한 세대의 작곡가가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36년 만주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한 뒤 독일 하노버 국립음악대학(현 하노버 음악·연극·미디어 대학, Hochschule für Musik, Theater und Medien Hannover)에서 수학했고, 그곳에서 윤이상과 알프레트 쾨르펜(Alfred Koerppen) 등에게 작곡과 음악이론을 배웠다. 귀국 후에는 서울대학교 작곡과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하며 한국 작곡계의 교육과 창작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한국에서 현대 작곡기법이 제도적 교육 속에 자리 잡아가던 시기에 그는 작곡가이자 교육자로서 그 흐름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이었다.
한국 현대음악의 학계와 작곡계에서 백병동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이름에 속한다. 일반 대중에게는 낯설 수 있어도, 한국 작곡계와 현대음악의 장 안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미 하나의 준거점처럼 자리해 온 이름이다. 음악학자 김춘미 교수가 백병동을 두고 “베를린에 윤이상이 있다면 서울에는 백병동이 있다”는 취지로 언급한 적이 있다는 기억이 떠오른다. 이 표현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한국 현대음악사 안에서 그가 차지하는 상징적 위치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말로 읽힌다. 윤이상이 국제적 차원에서 한국 작곡가의 존재를 세계 음악계에 각인시킨 인물이라면, 백병동은 서울을 중심으로 창작과 교육의 현장에서 한국 현대음악의 지속성을 구축한 작곡가라는 의미에서이다.
백병동의 음악을 몇 개의 대표작으로 정리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어딘가 불충분하게 느껴진다. 그의 작품은 특정한 한두 곡으로 기억되기보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하나의 작곡 언어와 사유 속에서 이해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무엇보다 먼저 느껴지는 것은 소리의 밀도와 시간의 깊이다. 음향은 과장된 표정으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서로 다른 간격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음과 음 사이의 간격,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침묵은 음악의 흐름을 멈추게 하는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구조를 형성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이러한 특징은 백병동 음악의 중요한 작곡 태도와 연결된다. 김춘미는 『한국 현대음악 작곡가 백병동 연구』에서 그의 음악을 설명하며 “화성과 리듬은 서로 작용하면서 유기적인 운동을 형성한다”고 썼다. 이 문장은 백병동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의 작품에서 화성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음의 흐름을 움직이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리듬 역시 전면에 나서 강한 인상을 만드는 대신 음악의 호흡을 조절하며 흐름을 이어 준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건너뛰기보다 하나의 선처럼 이어지며 서서히 형성된다.
이 점에서 그의 음악은 서구 현대음악의 어법을 사용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시간의 감각을 품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급격한 변화나 극적인 대비보다는 미묘한 변화와 지속되는 긴장 속에서 음악이 서서히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러한 시간의 감각은 동아시아 음악 전통에서 발견되는 긴 호흡의 감각과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전통의 재현은 아니다. 백병동의 음악에서 전통은 표면적인 인용이나 장식으로 호출되기보다 음향을 조직하는 하나의 감각으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듣고 있으면 음악이 어떤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다기보다 하나의 공간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소리는 그 공간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며, 때로는 침묵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 경계 위에서 머문다. 이런 방식의 음악은 화려한 인상을 남기기보다 오래 지속되는 여운을 남긴다.
동양적 감각을 현대 작곡기법 속에서 탐구했다는 점에서 그의 음악은 일본 작곡가 다케미쓰 도루(Toru Takemitsu)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음향의 색채적 표면보다 구조적 긴장과 호흡의 지속성에 더 무게를 둔다는 점에서는 그와 분명히 구별된다. 또한 음향과 구조의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폴란드 작곡가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Witold Lutosławski)를 연상시키는 면도 있다. 물론 이러한 비교는 어디까지나 음악적 태도의 유사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지 동일한 미학적 계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백병동의 음악은 결국 한국 현대음악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고유한 맥락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필자가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하던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현대음악 연주 현장에서 자주 접할 수 있었던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백병동이었다. 특히 한국페스티벌앙상블( Korea Festival Ensemble )은 그의 작품을 꾸준히 프로그램에 올리며 당시 창작음악을 적극적으로 소개한 단체였다. 최근 한국페스티벌앙상블이 창단 40주년을 맞았다는 사실은, 필자에게 그 시절의 청취 경험을 더욱 특별한 기억으로 되돌려 놓는다. 1986년 창단된 이 단체는 지난 40년 동안 국내외 현대음악의 지속적인 연주와 위촉, 창의적인 기획을 통해 한국 현대음악의 중요한 연주 기반을 형성해 왔다. 그러므로 필자가 그 무대에서 백병동의 작품을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은 단순한 개인적 인상이 아니라 동시대 한국 현대음악의 실제 연주 현장에서 형성된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젊은 음악학도에게 백병동의 음악은 교과서 속 이름이 아니라 실제 연주 현장에서 경험되는 현재형의 음악이었다. 그 시기 들었던 작품 가운데 특히 깊이 남아 있는 곡이 〈사잇소리〉이다. 백병동은 작품 제목을 지나치게 설명적으로 붙이기보다 개념적인 방식으로 명명하는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삼중주, 사중주, 혹은 관현악곡과 같은 비교적 중립적인 제목이 많았고, 때로는 작품의 성격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무제에 가까운 명명도 적지 않았다. 그런 그가 ‘사잇소리’라는 지극히 한국어적인 제목을 붙였다는 사실은 오래도록 인상에 남았다. ‘사잇소리’라는 말은 언어적으로도 경계와 접속의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하나의 음 이름이라기보다 음과 음 사이에서 형성되는 미묘한 울림, 혹은 그 사이에서 살아나는 음향의 기운을 가리키는 말처럼 들린다.
필자가 독일로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었던 곡이 바로 이 〈사잇소리〉였다. 그래서인지 대금의 소리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하나의 파장처럼 남아 있었다. 화려한 선율이라기보다는 길게 이어지는 호흡, 미묘하게 흔들리는 음의 결, 그리고 그 사이에서 퍼져 나가던 공간감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지금도 백병동의 음악을 떠올리면 먼저 그 대금의 소리가 마음속에서 울린다. 그것은 분명한 멜로디라기보다는 조용히 이어지는 하나의 선에 가깝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양금의 존재이다. 양금은 한국 전통음악에서 그 사용 빈도가 그리 많지 않은 악기이지만, 백병동은 몇몇 작품에서 이 악기를 비교적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예를 들어 〈대사 Ⅱ〉와 같은 작품에서는 대금과 양금이 함께 등장하고, 〈오늘, 98년 9월〉에서는 해금과 양금의 조합이 사용된다. 필자가 기억하는 〈사잇소리〉의 공연에서도 어렴풋이 양금이 떠오른다. 대금의 호흡과 양금의 타현적 울림이 만날 때 음악은 선율의 단순한 진행을 넘어 음향의 겹침과 확장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음향의 층위에서 ‘사잇소리’라는 제목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 듯하다.
백병동의 음악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또 하나의 이미지는 화가 김환기의 회화 속 선이다. 김환기의 화면에서 선은 단순한 윤곽이 아니라 화면 전체의 호흡과 운동을 만들어 내는 구조가 된다. 백병동의 음악에서도 개별 음들은 사건처럼 분절되기보다 서로 이어지며 하나의 선을 형성하고, 그 선은 시간 속에서 긴 흐름을 만들어 낸다. 이 비유는 직접적인 영향 관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필자가 느끼는 미학적 유사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백병동의 음악을 “조용한 선의 음악”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에는 이 비유가 일정한 설득력을 갖는다. 필자가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서울대학교에서 그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연구실에서 일주일에 한 번 이어지던 수업의 분위기는 늘 조용했다. 교수님의 말투는 낮고 단정했으며 과장된 표현이 거의 없었다. 그 목소리를 떠올릴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의 음악도 그 목소리와 닮아 있었던 것은 아닐까. 크게 말하지 않지만 말의 여백 속에 더 많은 것을 남기는 방식. 바로 그런 점에서 백병동의 음악은 사람의 성정과 작품 세계가 드물게 깊이 호응하는 경우를 보여준다. 교수님은 필자의 삶의 방향에도 작은 흔적을 남긴 분이다. 한 번의 상담과 몇 마디의 조언이 때로는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미국이 아니라 독일로 향하게 된 필자의 진로에도 그때 나누었던 대화가 작은 계기로 남아 있다. 그래서 백병동은 단지 한국 현대음악사의 한 이름이 아니라, 필자에게는 삶의 갈림길에서도 조용한 방향을 제시했던 존재로 기억된다.
백병동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김춘미의 책이 함께 떠오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책은 단순히 한 작곡가의 작품 목록이나 생애를 정리한 연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한국 현대음악의 한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창이었다. 그 책을 통해 배운 것은 한 작곡가의 음악을 이해하는 일이 단순히 악보 분석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작품은 시대와 사유의 맥락 속에서 읽혀야 하며, 한 작곡가의 언어는 그가 살아낸 시간과 음악적 환경 속에서 비로소 입체성을 얻는다. 돌이켜보면 그 책은 필자의 음악학적 시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남겼다. 한국에 갈 때 가끔 우연히 교수님을 공연장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여전히 건강한 모습이셨고 늘 마른 체구에 소식하시며 삶을 단순하게 유지하려는 분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런 모습 역시 그의 음악과 멀지 않았다. 과도한 제스처를 경계하고 남는 것보다 덜어 내는 쪽을 택하며 무엇보다 조용한 질서를 지키는 삶. 그의 음악이 왜 그렇게 들렸는지를 설명하는 하나의 생활적 근거가 거기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백병동은 화려한 선언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작곡가는 아니었다. 오히려 평생 조용히 음악을 써 온 작곡가였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음악은 더 오래 남는다. 어떤 작곡가는 특정한 명곡 하나로 기억되지만 어떤 작곡가는 하나의 음악적 태도로 기억된다. 백병동은 후자에 속하는 작곡가였다. 그의 음악은 거대한 몸짓으로 시대를 장악하기보다 조용한 선을 그으며 오래 지속되는 울림을 남겼다. 그리고 그 선은 이제 작곡가가 부재한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교수님, 안녕히 가십시오.
글 | 노유경 Dr. Yookyung Nho-von Blumröder
음악학 박사, 쾰른대학교 출강
해금앙상블 K-YUL 음악감독 겸 단장
ynhovon1@uni-koeln.de
Instagram: hangulmanse · kyul_german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