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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낙동강은 흐른다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낙동강은 흐른다

 

바람이 모래를 쓸고 나가

소리없이 쌓은 모래톱의 주름살

잔잔한 물빛 어머니의 손등이 되어

강물은 흐른다, 낙동강은 흐른다

 

흰 모시 적삼, 피 젖은 옷자락에

펄럭이는 깃발! 녹슨 기적소리!

아, 아, 눈물이 되어 흐른다, 역사는 흐른다

 

낙동강, 낙동강이여

칠백리 굽이굽이 흘러온

함께 살아온 낮은 산맥과

옹기종기 마을 사람들

우리의 푸근한 마음이라

 

강물은 흐른다 낙동강은 흐른다

잊지 못할 기억이여 목소리여

 

하늘의 새떼들 내려와 희망의 노를 저으리

달빛 내려와 강바람에 춤을 추리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섯달 꽃본듯이 날 좀 보소

맨발로 달려가는 이 누구인가

 

노을 지는 강가에

도시의 불빛 반짝이는데

서성이는 눈물 하나

강물이 된다, 강물이 되어 흐른다

 

아,아~ 낙동강 칠백리여~

 

 

낙동강은 흐른다 — 시간과 민족의 강, 생명의 노래

 

[탁계석 시세계 詩評]

 

강의 흐름, 존재의 흐름

탁계석 시인의 「낙동강은 흐른다」는 단순한 자연시(自然詩)가 아니다.이 시에서 강은 풍경이 아니라 존재의 상징, 더 나아가 역사의 은유로 자리한다. 시의 첫 행, “바람이 모래를 쓸고 나가 / 소리없이 쌓은 모래톱의 주름살”은 시간의 침적을 그린다. 그래서 낙동강의 물결은 단순한 유동이 아니라, 세월과 인간의 생애가 겹쳐 쌓인 기억의 층위다. 그 주름살은 고요 속에서도 살아 있는 생명, 흐르며 변하지 않는 존재의 본질을 드러낸다.

 

‘모성’으로서의 강

“잔잔한 물빛 어머니의 손등이 되어 / 강물은 흐른다” 이 구절은 탁계석 시 세계의 중요한 정서인 모성적 따뜻함을 보여준다. 그에게 낙동강은 단순히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민족의 어머니이며, 그 물빛은 피로, 눈물로, 사랑으로 이어진 세대의 숨결이다. 강물의 흐름은 어머니의 숨결처럼 부드럽고도 강인하다. 탁계석의 낙동강은 그리하여 시간과 모성의 합류점으로 존재한다.

 

역사와 눈물의 서사

시의 중간부는 서정에서 서사로, 정적 이미지에서 폭발하는 역사적 울림으로 전환된다. “흰 모시 적삼, 피 젖은 옷자락에 / 펄럭이는 깃발! 녹슨 기적소리!” 이 장면은 낙동강이 품은 한국 근현대사의 피의 기억을 상징한다. 민족의 상처, 전쟁, 피난, 산업화의 고단한 여정이 모두 강물의 물결처럼 흘러가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아, 아, 눈물이 되어 흐른다, 역사는 흐른다.” 여기서 ‘눈물’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집단 기억의 정화(淨化)'이다. 슬픔의 물이 흘러 역사가 되고, 그 역사가 다시 강으로 순환한다.

 

공동체의 풍경과 푸근한 민족 서정

“옹기종기 마을 사람들 / 우리의 푸근한 마음이라” 이 부분은 시인의 지역적 정체성과 공동체적 정서가 가장 짙게 배어 있는 대목이다. 탁계석의 언어는 소박하고 투명하지만, 그 안에는 민족적 연대감이 자리한다. 그는 도시의 문명 대신 마을의 온기, 산업의 냉철함 대신 인간적 온도를 택한다. 이때 ‘낙동강’은 공동체의 정서적 원천, 즉 '우리 마음의 원류(源流)'로 다시 태어난다.

 

민요적 리듬과 현대적 감성의 조화

후반부의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 동지섯달 꽃본듯이 날 좀 보소”는 전통 민요의 운율을 빌려온 장면이다. ‘날 좀 보소’의 반복은 민중의 리듬, 한국어의 노래성을 되살린다. 탁계석 시의 특징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전통의 정서와 현대의 언어를 한 강물 위에 흐르게 한다. 그 물길은 슬픔에서 희망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진다.

 

마지막 구절, “서성이는 눈물 하나 / 강물이 된다, 강물이 되어 흐른다.”는 이 시의 정수를 압축한다. 한 개인의 눈물조차 강의 일부가 되어, 결국 역사와 생명의 일부로 환원된다. 이때 낙동강은 더 이상 지명이 아니라, 인간 존재 그 자체의 비유가 된다.

 

총평 — “흐른다”의 미학

「낙동강은 흐른다」는 ‘흐름’의 반복을 통해 시 전체의 구조를 완성한다. ‘흐른다’는 단어는 여덟 번 이상 등장한다. 이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시간의 리듬이며 존재의 심장박동이다. 탁계석의 언어는 결코 요란하지 않다. 그는 강처럼 말없이 흘러가며, 역사와 인간, 자연과 시간을 하나로 엮는다. 그의 낙동강은 슬픔이지만 또한 구원이며,기억이지만 또한 미래로의 노래다.

 

결론

탁계석 시인의 「낙동강은 흐른다」는 자연과 인간, 역사와 감정이 합류한 ‘서정적 민족서사시’이다. 그의 시어는 단단한 현실 위에서 피어난 노래이며,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시간을 견디는 생명의 목소리를 듣는다. 낙동강은 흐른다. 그것은 단지 물의 흐름이 아니라, 한국인의 마음이 흐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