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해금 앙상블 편집부 |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문학적 실험장
2025년 여름의 끝자락, 쾰른대학교 학생이 연주한 해금 앙상블 K-YUL의 종강 연주회는 단순한 학기말 발표를 넘어선 인문학적 사건이었다. 약 90분 동안 이어진 이 무대는 해금이라는 고유한 한국 전통 악기를 매개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학생들이 음악을 통해 세계와 소통한 현장이었다. 독일, 한국, 중국, 터키 등에서 온 학생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곡을 해석하고, 한국어의 정서를 해금의 떨림으로 풀어냈다.
이 연주는 음악학, 교육학, 문화인류학적 관점 모두에서 깊은 시사점을 준다. 인간의 정서와 손끝의 감각이 소리로 변환되는 과정, 그리고 그것이 타문화의 공간에서 공감과 해석을 낳는다는 점에서 이 무대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문학적 실험장이었다. 해금은 두 줄의 현을 활로 켜는 악기로, 연주자의 감정과 손끝의 압력에 따라 음색이 미세하게 달라진다. 본 대사관 본분관의 민재훈 관장은 연주 후 "피아노는 누가 치든 같은 소리를 내지만, 해금은 누가 켜느냐에 따라, 또 그날의 감정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낸다"며, 이 악기의 감성적 깊이에 감탄을 표했다. 이어서 "외국 학생들이 이렇게 정성껏 한국 악기를 배우고 연주하는 모습은 참 인상 깊다"고 덧붙였다. 독한협회 판 슈테폴드 씨와 KHG의 라트게버 씨 역시 따뜻한 격려의 말을 전하며 무대의 의미를 되새겼다.
다양한 레퍼토리로 한국과 독일이 통한 무대
공연은 애국가를 해금으로 연주하며 시작되었고, "새야 새야", "홀로 아리랑", "도라지", "한오백년", "천안삼거리" 같은 전통 민요와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 '이누야사'의 OST, 영화 음악 "I'm Still Loving You", 독일 민요 "로렐라이"와 "들장미", 그리고 한국 가곡 "찔레꽃"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곡들이 연주되었다. 특히 '도라지'는 산들바람 속 들꽃을 연상케 했고, 다성으로 연주한 '오나라'는 슬픔과 절제를 해금 고유의 진동으로 표현했다. 전 곡은 학생들이 직접 독일어로 해설을 맡아, 음악과 문화를 설명하는 교육적 실천으로 승화되었다.
학생들은 이번 학기 동안 G장조와 A♭장조를 중심으로 해금을 익히며 조성에 따른 음색의 미묘한 차이를 체험다고 한다. 단원들은 각자의 곡을 분석하고, 무대 위에서 해금의 미학과 문화적 맥락을 설명하는 주체로 나섰다. 이는 구성주의 교육철학에 입각한 대표적 사례이자, 다문화 교육 현장의 예술적 실천으로 기록될 만하다. 음악은 단지 들리는 소리의 연쇄가 아니라, 문화의 기억과 감정이 얽힌 상징적 언어임을 이 무대는 다시금 입증했다.
“함께 먹는 것, 그것이 인공지능이 결코 따라할 수 없는 한국 문화의 본질
공연 후 이어진 풍경은 더욱 인상 깊었다. 떡볶이, 만두, 잡채, 김치전, 두부조림, 따뜻한 밥—모두 단원들과 지도교수 노유경이 직접 준비한 음식이었다. 후원도 없고, 외부 케이터링도 없이 꾸려진 밥상은 한국의 '함께 먹는 문화'를 실천하는 자리였다. 외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노유경 교수는 인사말에서 “한국인에게는 함께 먹는 문화가 매우 중요하며, 한국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 한국 음식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고, 프로그램 해설에는 “함께 먹는 것, 그것이 인공지능이 결코 따라할 수 없는 한국 문화의 본질”이라는 문장이 실려 있었다. 이 식사의 자리는 단지 식탁이 아닌 교류의 연장이었으며, 문화 간 거리를 좁히는 인류학적 장면이기도 했다.
음악이란, 악보 위의 음표가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사람의 마음
해금의 외형은 종종 바이올린과 혼동되곤 한다. 실제로 해금 케이스는 바이올린 케이스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쾰른대학교 해금 앙상블 K-YUL의 단장이자 지도교수인 노유경은 자신의 사비로 마련한 해금을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대여해주며 늘 이런 당부를 잊지 않는다. “누군가가 너희들이 들고 다니는 악기를 보고 바이올린이냐고 묻거든, 똑똑히 설명해 줘. 이 악기는 한국 전통 악기, 해금이야. 해금이라고 꼭 말해줘.” 그 말 속에는 단지 악기의 명칭을 알리려는 차원을 넘어, 한 문화를 지키고 전하는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공유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음악이란, 악보 위의 음표가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사람의 마음이며, 진정한 교육은 학생이 말하고, 느끼고, 나눌 수 있도록 돕는 일임을. 학생들은 단지 기술을 익힌 연주자가 아니라, 음악을 통해 삶을 표현하고 연결하는 서술자들이었다. 특히 올해는 쾰른대학교에 세계 최초로 해금 강의가 도입된 해로, 해당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이 기존 해금 앙상블 K-YUL(단장: 노유경)과 함께한 무대였다.
노유경 교수는 다음 학기 주제를 '이야기를 품은 소리'로 정했다. 보다 서정적이고 내밀한 곡들을 다루며, 새로운 키를 익히고, 전통 악기와의 협연도 계획 중이다. 음악이 언어를 대신해 마음을 잇는 길이라면, 이 앙상블의 다음 발걸음은 그 길 위에 새겨질 아름다운 흔적이 될 것이다.
전 시대의 사물놀이가 섬세한 표현의 해금으로
이러한 사례는 독일 내에서도 유일무이하다. 한국 전통 음악이 사물놀이와 같은 타악 위주로 국한되던 흐름 속에서, 해금이라는 섬세하고 접근이 어려운 현악기를 외국 학생들이 직접 배우고 연주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해금은 정악과 산조 모두를 넘나드는 폭넓은 표현력을 가진 악기로, 그 떨림과 농현을 이해하고 직접 구사하기 위해선 높은 집중력과 정서적 공감이 요구된다. 그 섬세한 악기를 서툴지만 진지하게 마주한 학생들의 모습은, 단순한 연주를 넘어 문화 간 이해와 존중의 한 장면이었다.
한국의 선율이 쾰른의 하늘 아래 울려 퍼졌고, 해금은 더 이상 낯선 악기가 아니게 되었다. 이 날의 울림은 한낱 수업의 결과물이 아니라, 문화의 씨앗이 타지의 마음에 스며드는 순간이었으며, 음악이 국경을 넘는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이는 동시대 인문학이 추구하는 다층적 정체성, 타자 이해, 공존의 실천으로 읽을 수 있다. 이처럼 한국의 해금이 유럽의 학문 공간에서, 그것도 학생들의 자발적 해석과 연주로 구현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하다. 이러한 시도는 단지 공연의 성공을 넘어서, 교육과 예술, 문화 교류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위대한 발걸음이었다.
독일 해금 앙상블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