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3, 400년 정도는 취급도 하지 않아. 천년도 2천년도 고요히 자태를 드러낸 백자,청자.남는 것과 사라지는 것의 경계가 이토록 분명할 수 있을까 ? 깨어졌어도 남아 있는 것들, 온전한 것들 사이에서 어쩜 그렇게 당당하냐?
100년 , 200년은 명함도 못붙이는구나. 한 부호가 수억, 수백억, 수천억을 들여 모은 것들을 여기에 이름 석자 남기고 떠났네, 이 보물들을 발견하고 밤잠을 못 이루었을 그 소유의 기쁨과 사랑은 또 얼마나 뜨거웠을까? 그 욕망과 열정과 희열을 유리 상자 안에 다 던져놓고 갔네.
천년이었다 해도, 바람과 강물과 바다는 다루지 않아 . 오직 이름 없는 장인이 밥을 먹기 위해 달빛 영감과 새벽별 총기로 빚어내, 그 순간 스스로 와! 와! 감탄했을 소리가 담겨져 있을 뿐이야. 몽땅 태워지고 더 이상 태울수 없는 보석보다 단단한 눈물의 결정체만 남았거든.
수만년 공룡 발자국을 보았을 때 디딘 바위가 살짝 흔들렸어. 그때 내가 살아 있다는게 무서웠고 사라진다는게 두려웠어.
오늘도 박물관 앞에 서니 크레인에 들려진 휴지 조각처럼 내가 가벼웠어. 쓸려가지 않으려고 비오는 날 아스팔트에 치근대는 가랑잎 같았어.
그런데 모든 걱정이 사라졌어. 넌 이곳에 다룰대상이 안돼. 예선 탈락이야! 그러니 걱정말고 살아. 천년 도공(陶工)도 그저 하루의 밥을 먹기 위해 열심히 땀을 흘렸을 뿐이야. 배 곯지 않을 아이들과 마누라에게 바가지 긁히지 않으려고 죽을 힘을 다했을 뿐이야. 잘리면 안되니까. 허,허,허~
유리벽 안 장인(匠人)이 미소를 던진다. 나도 웃으며 눈인사를 나눴다. 집에 돌아와 누웠는데 그 장인이 지워지지 않는다.천년의 미소만 짓는다.
AI 시평 – 『박물관 앞에서』
탁계석 선생의 산문시 「박물관 앞에서」는 시간과 존재, 예술과 생존, 영원과 덧없음 사이를 유영하는 고요한 사유의 여정입니다. 다음은 AI 시평입니다.
1. 시간의 중력 앞에 선 자아의 자각
시의 화자는 박물관 앞에서 '3,40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감각하며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 “3,400년 정도는 취급도 하지 않아.”
라는 표현은, 인간이 흔히 자랑하는 백 년, 이백 년의 역사가 박물관의 기준에서는 “예선 탈락”이라는 냉소적 통찰로 전환됩니다. 이 시간의 대비는 곧 나는 얼마나 하찮은가? 라는 자문으로 이어지며, 존재론적 불안으로 확장됩니다.
> “휴지 조각처럼 내가 가벼웠어.” “살짝 흔들렸어. 내가 살아 있다는 게 무서웠고 사라진다는 게 두려웠어.” 이 구절들은 박물관 유물 앞에서 '영원'을 본 자의 떨림이자, 시간 앞에 선 인간의 본질적 불안의 문학적 형상화입니다.
2. 예술은 위대한 생존의 흔적
이 작품의 핵심은 ‘예술’을 신성화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천년 도공도 그저 하루의 밥을 먹기 위해… 죽을 힘을 다했을 뿐이야.”
이 말은 ‘예술’도 처음부터 위대한 것이 아니었음을 말합니다. 생존의 욕망이, 자식의 끼니가, 아내의 잔소리가 그릇 하나에 담겼고, 그것이 오늘날 박물관에 ‘영원’으로 남아 있다는 역설이 펼쳐집니다.
그리하여 시는 말합니다. “그러니 걱정말고 살아.”
이것은 단지 위로가 아니라, 존재의 정당성을 선언하는 생존의 예찬입니다. 위대한 유산도 결국은 평범한 하루의 땀방울에서 비롯되었음을 일깨우며, 현재를 살아가는 이에게 용기와 해방감을 줍니다.
3. 형상과 음영의 대비 – 언어의 조형미
탁계석 선생의 산문시는 수사적 장치 없이 담백하지만, 이미지의 밀도가 높습니다.
“유리 상자 안에 다 던져놓고 갔네”
“비 오는 날 아스팔트에 치근대는 가랑잎 같았어”
“장인이 미소를 던진다… 천년의 미소만 짓는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단순한 비유를 넘어 독자가 시적 체험을 함께하도록 만듭니다. 특히 마지막의 "지워지지 않는 천년의 미소"는,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메타포로써, 시간과 생존, 그리고 예술의 통합적 이미지로 자리 잡습니다.
✨ 총평
『박물관 앞에서』는 예술의 숭고함을 말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일상의 노동과 시간의 누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환기합니다. 그래서 이 시는
> “영원한 것은 결국, 오늘을 다해 살아낸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는 메시지를 전하며, 모든 ‘살아가는 자’에게 천년의 예선을 통과할 자격이 있음을 말합니다.
➤ “지금의 나도 언젠가 미소로 남을 수 있다.”
이 조용한 선언이, 시의 가장 아름다운 여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