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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저승 터미널

AI 이후, 의미 문명을 향한 물음을 향하여~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저승 터미널 

 

욕망이라는 열차를 타고 

넓은 들판을 지나고

협소한 계곡을 지나고 

산을 오르고 비탈길 능선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왔네

 

땀도 눈물도, 때론 피를 흘리면서 

욕망의 푸른 하늘을 향해 

청춘은 땡뼏 매미처럼 울부짖기도 했었지

 

삶의 중심터를 향해 달리다

실패의 상처를 싸매기도 하고

승승장구 하늘을 솟구치며 환호도 질렀네

 

때론 브레이크 파열로 병상에 누웠고

바다 건너 먹잇감을 찾아 헤매이기도 했었지

 

열차는 높이 오르고 싶고 

멀리 달리고 싶고,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었네

 

달리고 또 달리고 멈추다 또 달리며 

이윽고 동해 바다 확 트인 저 강건너가

어디에나 있는 요단강이라네

 

마지막 저승 터미널에 인간 군상들이 다 모였네.

한 시절 떵떵거리던 기업가도, 

부하들을 호령하던 장군도

학생을 가르쳤던 교수님도 

골목 장사, 마트 사장님도

영혼들이 표정들 각양각색

예비군 훈련장과는 또 다르게 모였네

 

누군가 호각을 불며 큰 소리 호령했네

넥스트 다음 역은 입관역이다. 

이곳 저승 터미널에서 더 이상 가지고 갈수는 없다. 

호주머니가 없는 삼배옷 하나, 

그리고 태울 사람 태우고 묻을 사람 묻고 , 그것은 각자의 자유 선택이다.

 

여러분들께 나눠준 백지에 OX로 표기하면 끝이다. 

떠나는 것 역시 여러분의 컨디션 상태에 따라 각자 다르다.

저 확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이곳 홍금빛 실버타운에서 여러분은 머지 않아 입관역으로 향하게 된다

 

여러분들이 떠난 후에도 

조금도 흔들림없이

아침이 오고 노을이 지고 

또 아침이 오면서 열차가

끝나는 지점에서 

한 사람씩 나룻배에 싣거나 

많으면 고기 통통배가 여러분의 시신을

저 수평선 건너로 운반할 것이다.

 

갈매기는 여전히 눈부신 하늘에 파닥거리고 

바다속 생선들은 비늘을 반짝이며 헤엄칠 것이다.

 

걱정 마시라. 남겨둔 가족들은 잠시 묵념한뒤

그들의 일상으로 돌아 갈것이고 그 울음 소리는 길지 않다.

 

여기는 종합 터미널 

다음 역은 입관역 

요단강을 건너 

각자 떠나는 홀로 떠나는 열차 길이다.

 

언덕위의 꽃들은 언제나 처럼 바람에 웃고

새들도 저희들끼리 짝을 지어 날아 다닐 것이니

떠나는 자여 뒤돌아 보지 말라, 생각도 없는

길위의 먼지처럼 흩어지리라!

 

오직 명예를 남긴 자의 이름은 남고
역사에 세계진 의미의 삶과 예술은 기억되리라

 

 

 

<AI 詩評>

「저승 터미널」 : 욕망의 열차에서 존재의 바다로


이 시는 삶을 하나의 이동 체계로 본다. 출발역도 종착역도 명확히 알고 있지만, 그 사이를 달리는 인간은 언제나 목적지를 잊은 채 속도에만 매달린다. ‘욕망이라는 열차’는 곧 *욕망(慾望)*의 은유이며, 시 전체는 인간 생애를 관통하는 한 편의 장거리 운행 기록이다.


달리는 생 — 성취의 서사와 피로의 시간
시의 전반부는 끊임없이 상승하려는 인간의 운동성으로 가득하다.


들판–계곡–산–능선으로 이어지는 지형은 곧 사회적 상승 곡선을 상징한다.
“높이 오르고 싶고
멀리 달리고 싶고,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었네”
여기서 삶은 선택이 아니라 추진력이다.
청춘은 매미처럼 울고, 실패는 붕대를 감고, 성공은 환호로 기록된다.


즉 인간은 존재하기 전에 먼저 경쟁하는 존재로 살아간다.
하지만 중요한 장면은 따로 있다.
“브레이크 파열로 병상에 누웠고”
이 한 줄이 시의 축을 바꾼다.
속도 문명은 언제나 멈춤을 사고로 경험한다.
멈춤은 선택이 아니라 파열로 온다.


터미널 — 평등의 공간
후반부에서 공간은 바뀐다.
더 이상 ‘오르는 길’이 아니라 ‘모이는 장소’가 등장한다.
“기업가도, 장군도, 교수도, 장사꾼도”
여기서 시는 사회적 서열을 해체한다.
살아 있을 때 인간을 구분하던 직함은 터미널에서 의미를 잃는다.
이 공간은 죽음이 아니라 분류가 사라지는 장소다.


특히 인상적인 장치는 행정적 표현이다.
“백지에 OX로 표기하면 끝이다”

삶 전체가 선택의 연속이었지만
마지막 선택은 단 한 번의 표시로 축약된다.
거대한 인생이 하나의 기호로 환원되는 순간이다.


요단강 — 종교가 아닌 자연의 질서


이 시의 죽음은 공포가 아니라 자연의 복귀로 묘사된다.
갈매기, 물고기, 아침과 노을은 계속된다.
죽음 이후 세계는 신비가 아니라 지속이다.
즉 이 시에서 죽음은
‘어디로 가는가’가 아니라
‘세상은 계속되는가’의 문제다.
답은 명확하다.
“조금도 흔들림없이 아침은 온다”
죽음은 개인의 사건이지만
세계는 개인 중심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
이 시의 철학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억 — 존재의 마지막 잔여물


마지막 연은 물질도 감정도 아닌 기억만 남긴다.
“명예를 남긴자의 이름은 남고
역사에 세계진 의미의 삶과 예술은 기억되리라”
여기서 시는 성공이 아니라 의미를 묻는다.


많이 가진 삶이 아니라 해석될 수 있는 삶만이 남는다.
결국 이 작품은 죽음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삶은 기록 가능한가, 아니면 소비 가능한가.”


총평
「저승 터미널」은 죽음을 애도하거나 초월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 생애를 속도 → 정차 → 분류 해체 → 자연 복귀 → 기억의 구조로 보여준다.


이 시의 핵심 정서는 비극도 허무도 아니다.
오히려 담담한 통보에 가깝다.
우리는 인생을 여행이라 말하지만
이 시는 말한다.
여행이 아니라
이미 예약된 환승이었다고.


욕망의 열차에서 내려 존재의 바다로 건너가는 순간, 인간은 처음으로 사회적 역할이 아닌 하나의 생명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이 시의 주제는 죽음이 아니라
“삶의 사용 방식에 대한 마지막 안내 방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