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이름은 이미 답이 아니라 질문이 되었다
한국에는 수십 개의 국립·시립·도립 오케스트라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좀처럼 묻지 않았다. “그들은 무엇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인가?” 행정 단위로 구분된 이름들은 많았지만, 사운드의 정체성을 말하는 이름은 거의 없었다. ‘서울시향’, ‘국립심포니’, ‘시립교향악단’이라는 명칭은 소속을 설명할 뿐, 그 오케스트라가 어떤 언어로 말하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때문에 지금 K-Orchestra라는 이름은 이 공백을 정면으로 찌른다. 그래서 불편하고, 그래서 논쟁적이며, 그래서 지금 필요하다.
한국 오케스트라는 정말 ‘한국’인가?
최근 K-Classic News의 여러 기사들이 반복적으로 지적해 온 문제는 분명하다. 한국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 99% 이상이 서양 음악으로 되어 있다. 한국 작곡가 작품은 초연 후 사라지는 일회성 소비다. 그렇다면 “K-컬처 300조 시대”라는 구호 속에서 오케스트라가 수출할 레퍼토리가 없다는
이같은 현실에서 ‘한국 오케스트라’라는 명칭은 사실상 지리적 표시에 머물고 만다. 지역은 달라도 음악 연주는 어디서나 동일하다. K-Orchestra는 이 모순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는 아직 K-Orchestra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불려야 할 시점에 왔다.”
K-Orchestra는 장르가 아니라 ‘언어 선언’이다
K-Orchestra의 ‘K’는 국적 마케팅이 아니다.
전통 재현의 표식도 아니다.
그것은 오케스트라 언어에 대한 선언이다.
한국의 역사와 기억, 한국어의 호흡과 리듬
산과 강, 공동체와 개인의 서사,
이 땅에서 형성된 감정의 밀도
이 모든 것을 오늘의 관현악 언어로 번역하고 작곡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래서 K-Orchestra는 말한다. “우리는 서양 음악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서양 음악만으로 우리를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럼 왜 지금 ‘K-Orchestra’인가?
이 질문의 시점은 우연이 아니다.
K-Pop은 세계 표준이 되었고
K-Drama는 서사를 수출하며
K-Art, K-Food, K-Design까지 확장됐다
그러나 유독 오케스트라만 “보편”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정체성을 유보해 왔다. 지금 이 이름이 등장한 것은, 오케스트라가 더 이상 중립 지대에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선택의 순간은 늘 늦게 온다. 그러나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 K-Orchestra는 그 선택을 이름으로 먼저 감행한 사례인 것이다.
위험한 이름이지만, 가장 정직한 이름
K-Orchestra는 안전하지 않다. 서양 레퍼토리를 그대로 연주하면 즉시 질문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당신들의 K는 무엇인가?”라는 검증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위험성은 결함이 아니라 윤리다. 이 이름은 연주자·기획자·비평가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가? 아니면 무엇을 새로 만들고 있는가?”
이름 이후에 남은 과제
때문에 K-Orchestra는 완성형이 아니다. 오히려 시작 선언에 가깝다. 이 이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레퍼토리 철학의 지속적 실천
반복 연주되는 한국 창작 작품
기록과 비평의 축적
일회성이 아닌 시즌 구조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이름은 가장 먼저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조차 의미 없는 실패는 아니다.
다시 결론은 왜 K-Orchestra 인가
K-Orchestra는 ‘이미 완성된 오케스트라’의 이름이 아니라 ‘이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요구의 이름이다. 이 이름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지 않는다. 대신 기준을 남긴다. 그리고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세계 지휘자들이 말하는 ‘자국 오케스트라'
리카르도 무티 (Riccardo Muti)
“이탈리아 오케스트라는 베르디와 푸치니를 연주할 때 가장 이탈리아답다. 자기 나라의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 오케스트라는 아무리 잘 연주해도 2류다.” 무티는 라 스칼라 극장과 시카고 심포니를 이끌며 줄곧 자국 음악의 책임 연주를 강조해 온 지휘자다. 그는 외국 오케스트라와 작업할 때도 “그 나라의 음악 전통을 존중하지 않는 연주는 관광에 불과하다”고 말해 왔다.
사이먼 래틀 (Sir Simon Rattle)
“독일 오케스트라는 베토벤을 연주할 때 역사와 언어를 함께 연주한다. 오케스트라는 사운드 이전에 문화적 기억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음악감독 시절, 래틀은 독일 음악 전통의 재해석을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삼았다. 그는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연주 단체가 아니라 한 나라의 기억 저장소”라고 표현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러시아 오케스트라는 차이코프스키와 무소르그스키를 통해 자신을 증명한다. 자기 음악을 하지 않는다면, 러시아 오케스트라일 이유가 없다.” 마린스키 극장을 중심으로 러시아 음악을 세계에 확산시킨 게르기예프는 자국 레퍼토리 중심주의를 가장 강하게 실천한 지휘자 중 한 명이다.
다니엘 바렌보임 (Daniel Barenboim)
“국제성은 정체성을 지운 뒤 얻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뿌리를 가장 깊이 이해할 때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 바렌보임은 독일·이스라엘·중동을 아우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정체성 없는 국제주의’의 허구성을 꾸준히 비판해 왔다.
세이지 오자와 (小澤征爾)
“일본 오케스트라는 서양 음악을 배웠지만, 결국 일본인의 감각으로 연주할 때 세계가 귀를 기울였다.” 오자와는 일본 오케스트라의 세계 진출 과정에서 ‘모방의 단계 → 자기화의 단계’ 를 명확히 구분해 설명한 인물이다.
파보 예르비 (Paavo Järvi)
“에스토니아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다면, 에스토니아 오케스트라는 존재 이유를 잃는다.”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의 음악을 세계 무대에 올린 예르비는 국가 규모와 상관없는 정체성의 힘을 보여준 대표 사례다.
K 오케스트라에 적용되는 핵심 메시지
이들 지휘자의 공통된 메시지는 분명하다.“세계적 오케스트라는 세계 곡을 잘 연주하는 단체가 아니라, 자기 나라의 음악을 세계 수준으로 연주하는 단체다.” 한복을 입고, 가야금과 장구가 오케스트라 안에 자연스럽게 배치되고, 우리 작곡가의 작품을 당당히 정기 레퍼토리로 올리는 것. 이것은 민속적 장식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도 없는 오리지널 경쟁력이다.
K-Orchestra라는 이름에 대해 해외 음악계 인사들이 덕담처럼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브랜드는 완성됐다. 이제 한국이 자기 음악으로 무엇을 말할지가 관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