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날개
날개, 날개
같은 날개를 가진 닭과 오리와 달리
새를 동경하는 것은 오직 자유 때문이다.
하늘을 향해 높이 비상할 수 있는 날개
일상의 밥을 위해 날개를 잃어버리고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날지 못하는 날개여
공중의 바다에서 먹이를
찾는 비상의 눈. 눈을 밝혀라.
날개, 날개.
어느 시인은 날개가 가렵다 하지 않았던가?
날기 위해 무엇을 버리고 무엇 구할 것인가?
날개여 답하라.
가렵지도 않게 무감각해 버린
날개여 답하라.
밥이냐 자유나, 답하라
더 높이 더 멀리
날아야 할 때, 나를수 있게
바다를 건널수 있게
튼튼히 하라 날개여
자유 의지여~자유의 기쁨이여~
시평 | 날개 – 생존과 자유 사이에서의 근원적 질문
탁계석의 시 〈날개〉는 날개라는 원초적 상징을 통해 인간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갈등, 곧 생존과 자유, 현실과 이상, 밥과 영혼 사이의 긴장을 집요하게 묻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날개는 단순한 신체 기관이 아니라, 자유를 향한 의지이자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조건으로 확장된다.
시의 출발은 명확하다.
“같은 날개를 가진 닭과 오리와 달리 / 새를 동경하는 것은 오직 자유 때문이다.”
여기서 시인은 ‘날개를 가졌으나 날지 않는 존재’와 ‘날기 위해 태어난 존재’를 대비시킨다. 이는 곧 능력의 유무가 아니라 선택과 의식의 문제임을 암시한다. 닭과 오리는 날개를 가졌지만 울타리 안에서 ‘밥을 위한 생존’에 안주한다. 반면 새는 굶주림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하늘을 택한다. 이 대비는 곧 현대인의 자화상으로 읽힌다. 중반부로 갈수록 시는 점점 비판적이고 자문적인 어조로 전환된다.
“일상의 밥을 위해 날개를 잃어버리고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날지 못하는 날개여”
여기서 ‘날개를 잃어버린 날개’는 역설적 표현이지만, 그만큼 강렬하다. 이는 제도, 안락,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스스로 비행 능력을 포기한 인간의 상태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특히 ‘가렵지도 않게 무감각해 버린 날개’라는 표현은, 자유를 갈망하는 감각마저 마비된 현대인의 정신적 피로와 무기력을 정확히 포착한다.
시의 후반부는 질문과 명령이 교차하며 존재론적 절정으로 나아간다.
“밥이냐 자유나, 답하라 밥의 생존이냐 영혼의 호흡이냐”
이 대목에서 시는 더 이상 은유에 머물지 않는다. 시인은 날개를 향해 묻지만, 그 질문은 결국 독자 자신에게 던져진다. 살아남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숨 쉬는 영혼으로 살아야 하는가. 이는 예술가만의 질문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어느 순간 반드시 맞닥뜨리는 선택의 갈림길이다. 마지막 연에서 시는 다시 희망의 언어로 돌아온다.
“튼튼히 하라 날개여 환희의 자유 의지여, 기쁨이여”
여기서 날개는 더 이상 상실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단련되어야 할 의지, 회복 가능한 자유, 다시 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제시된다. 시는 비극적 체념이 아니라, 각성과 결단을 촉구하며 끝난다.
종합적으로 볼 때
〈날개〉는 선언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시다. 감상에 머물지 않고, 독자의 삶을 정면으로 호출한다. 반복되는 “날개여 답하라”는 후렴은 마치 양심의 북소리처럼 울리며, 독자에게 침묵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 시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날고 있는가, 아니면 날 수 있음에도 울타리에 머물러 있는가. 그 질문이 오래 남는다는 점에서, 이 시는 이미 충분히 높이 날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