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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진의 목소리가 건네는 현대미술의 사유... 로랑 그라소 개인전 '미래의 기억들' 대전 헤레디움에서 열려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감각하는 전시… 관람객 사유의 시간을 확장하다

K-Classic News 오형석 기자 | 대전의 복합문화예술공간 헤레디움(HEREDIUM) 이 프랑스 현대미술가 로랑 그라소(Laurent Grasso) 의 개인전 '미래의 기억들(Memories of the Future)'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방송인 오상진이 오디오 도슨트로 참여하여 관람객의 이해와 감각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단순한 설명이 아닌, 작품이 던지는 질문과 정서를 섬세하게 전달하는 그의 목소리가 이번 전시를 관람하는 또 하나의 감각적 축으로 자리한다.

 

로랑 그라소는 영상, 설치, 회화, 조각 등 다매체적 실험으로 시간을 시각화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한 시대를 규정하는 신념과 기억, 에너지의 흐름을 추적하며 과거와 미래가 서로 교차하는 지점을 포착한다. 현실과 비현실, 과학과 신화, 합리와 직관이 공존하는 그의 작품 세계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지금 보고 있는 것이 과연 현실인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이번 전시에는 대표작 20여 점이 소개된다. 특히 인간이 통제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기후 변화, 생태 위기, 에너지의 순환 구조 등 전 지구적 이슈를 예술의 해석 범주로 끌어올리며, 미학적 감상과 사유적 숙고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체험을 제안한다. 그라소는 해결책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게 하는 장치를 통해 관람객 각자가 스스로의 지적 기반과 감정 구조 위에서 질문과 응답을 만들어가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메시지에 공감한 오상진은 전시 오디오 해설 녹음을 재능기부 형태로 참여했다. 오상진은 뉴스·방송 진행자로서의 단정함과 문장 감각, 그리고 시사·예술을 아우르는 지적 음색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번 해설에서 작품의 역사적 맥락과 작가의 사유 방향을 명확히 정리하면서도, 과도한 해석이나 결론을 강요하지 않는 ‘열린 해설’ 방식을 택했다.

“작품은 결국 관람객이 마주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여정에서 관람객과 작품 사이의 ‘온도’를 맞추는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오상진이 전시 해설을 준비하며 밝힌 소감이다.

 

전시장에서는 관람객이 QR코드를 통해 헤레디움 전용 앱에 접속하여 무료로 오디오 도슨트를 들을 수 있다. 작품의 이미지, 상세 설명 문구까지 연계 제공되어 청각과 시각이 결합된 관람 경험이 가능하다.

 

전시가 열린 공간 헤레디움 자체 역시 이번 전시의 중요한 맥락을 이룬다. 1922년 지어진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 지점 건물을 보존·복원한 공간으로, 근대사의 층위와 오늘의 문화가 공존하는 장소다. 과거의 기억이 물리적 형태로 남아 있는 건물에서 ‘미래의 기억’ 을 주제로 한 전시가 열린다는 점은 전시의 개념을 공간적으로 강화한다.

 

한편 함선재 헤레디움 관장은 “이번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시간과 기억, 미래를 다시 사유하는 경험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오상진의 해설 참여는 관람객에게 그 사유의 흐름을 보다 편안하게 열어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가 미래를 비추고, 미래가 현재를 다시 정의하는 시대.
로랑 그라소의 전시는 예술이 단순한 시각적 대상이 아니라 ‘생각이 자라는 환경’ 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