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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 노트] 기(氣), 사라진 숨결을 예술로 되살리다

K-콘텐츠의 원형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철학적 탐구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우리 정신의 뿌리 다시 캐내야 

 

근대화의 파도는 많은 것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 중에서도 우리 민족 고유의 ‘기(氣)’ 철학과 이를 구체화하던 문화 형식들.서낭당, 굿거리, 무속의례는 서구적 합리성과 기독교적 가치관 속에서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철저히 배제되고 금기시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잃어버린 것은 단순한 민속이 아니라, 우리 정신의 뿌리였다. 이 뿌리는 다시 오늘, 예술이라는 형식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기(氣)란 무엇인가. 동양철학에서 기는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다. 인간과 자연, 정신과 물질, 생명과 우주의 흐름 그 자체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측정할 수 없으나 감응되는 것—기철학은 존재의 본질을 직관으로 체득하게 한다. 동양예술은 이 기의 흐름을 시와 그림, 소리와 몸짓에 담아내 왔다. 김영원 조각가의 인체 형상에서, 박정진 소리철학가의 논변 속에서, 그리고 젊은 예술가들의 무속오마주 무대 위에서 우리는 그 흔적을 다시 목도한다.

 

AI 시대, 기(氣)는 더욱 절실한 의미를 갖는다. 인공지능이 계산하고 예측하는 세계는 점점 정교해지지만, 그것이 포착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본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바로 이 ‘기’라는 이름의 본능, 감응, 직관,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예술적 감동이다. 기는 기술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 내부의 응축된 파동이며, 예술은 그 기를 형상화하는 도구다.

 

K-콘텐츠가 세계를 감동시키는 까닭은 단지 기술의 완성도 때문이 아니다. 그 안에 서려 있는 무형의 정서, 정중동의 미학, 비어 있음의 충만함, 즉 동양 고유의 기(氣) 철학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속을 다시 예술로, 굿거리를 무대로, 기를 철학으로 불러들이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미신을 문화로 회복하는 길, 억압되었던 원형을 창조로 전환하는 길이야말로 K-콘텐츠의 본질을 밝히는 여정이다.

 

기(氣), 세계에 줄 수 있는 독창적 감성의 언어

 

이제 예술은 단순한 표현의 도구를 넘어 인간 본성의 증거가 되어야 한다. 기(氣)의 미학, 기의 감응, 기의 직관은 우리가 잃었던 것을 되찾는 일이며, 동시에 우리가 세계에 줄 수 있는 독창적 감성의 언어다. 기술의 시대에 인간다움을 예술로 다시 말할 수 있다면, 그 중심에는 반드시 ‘기(氣)’가 있어야 한다.

 

김해시립김영원 미술관 

(氣)오스모시스의 창안자 세계적인 김영원 작가(광화문 세종대왕상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