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아득한 옛날, 하늘과 땅이 서로 가까이 숨 쉬던 시절. 인간의 발길이 채 닿지 않은 신비로운 대지, 그곳에 순결한 달빛처럼 빛나는 흰 사슴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 사슴은 날개를 잃은 별처럼 고요히 들판에 내려앉았다. 눈은 깊은 우물 같고, 뿔은 은빛으로 반짝였으며, 발굽이 닿는 자리마다 꽃이 피어났다. 흰 사슴이 머문 곳마다 바람은 말을 잃었고, 나무들은 몸을 낮춰 예를 올렸다. 사람들은 처음엔 두려워했지만 곧 경외심으로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흰 사슴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세상을 어루만졌고, 병든 아이를 핥아주면 낫고, 메마른 땅을 밟으면 샘이 솟았다. 사람들은 이 사슴을 “하늘의 사자(使者)”라 불렀다. 그러나 사람들 중 욕심 많은 이가 사슴의 뿔을 가져오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어느 날 밤, 탐욕스런 자가 활을 들어 사슴을 노렸고, 화살은 사슴의 왼쪽 어깨를 스쳤다. 하늘의 사자는 아픔을 뒤로한 채 조용히 산 너머로 사라졌고, 그가 떠난 자리엔 한 줄기 은빛 안개와 전설만이 남았다.
이후 사람들은 흰 사슴이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가 머물렀던 들판을 성지로 삼았다. 지금도 해 뜨기 전 은빛 안개 속에서, 그 흰 사슴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고 한다.
1막 – 하늘에서 내려온 빛
[나레이션]
"신비로운 대지 위에, 달빛보다 고운 생명이 내려왔다.
하늘의 숨결을 지닌 흰 사슴,
그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피어났다."
[아리아 – 흰 사슴 (카운터테너 또는 소프라노)]
〈나는 말 없이 내려온 빛〉
나는 말 없이 바람을 타고,
은빛 구름을 지나 이 땅에 왔노라
나의 발굽 아래 피는 꽃은
하늘의 눈물인가, 사람의 기도인가?
아픔을 씻고, 생명을 일으켜
나는, 이 땅에 사랑을 남기리라
2막 – 사람들의 경외와 탐욕
[나레이션]
"흰 사슴을 본 자들은 그 눈빛에 마음을 씻었고,
그 발굽 아래에서 병이 낫고, 샘이 솟았다.
하지만, 어느 날 한 사람의 욕심이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이중창 – 사슴과 인간 소녀 (메조 & 소프라노)]
〈네 곁에 머물고 싶지만〉
(소녀)
넌 말이 없지만 내 마음은 들리겠지
네가 웃는 듯 고개를 돌릴 때
세상은 잠시 멈춰 숨을 쉰단다
(사슴)
너의 손길은 따스하나
인간의 마음엔 두 얼굴이 있나니
나는 빛 속에서 왔으나, 그림자 앞에선 떠나야 하리라
(함께)
우린 서로를 알아보았지만
함께 머물 수는 없는 운명이구나
3막 – 떠나는 사슴과 남겨진 전설
[나레이션]
"활 끝에 스친 고통.
흰 사슴은 말 없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고,
이 땅에 마지막 숨결을 남긴 채 산 너머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아리아 – 인간 합창 / 코러스]
〈그대는 다시 올 것인가〉
하늘에서 내려온 자여, 빛의 사자여
그대를 잃고 우리는 울음이 되었다
이 들판은 이제 그대의 자취로 남고
안개는 그리움을 안은 망설임이 되었네
우리는 묻는다,
그대는, 다시 돌아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