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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바자렐리 "플라스틱 개체" 또는 "플라스틱 유닛"이라는 개념 개발

K-Classic News 탁계석 평론가 |

 

 

빅토르 바자렐리는 1952년부터 완전히 새로운 조형 창작의 원리를 제시하는 자신만의 조형언어이자 체계인 "플라스틱 개체" 또는 "플라스틱 유닛"이라는 개념을 개발했다. 이 체계의 중요한 전제는 그에게 있어 색과 형태는 이미지 창작에서 완전히 동등한 요소라는 점에 있었다. 색과 형태의 두 가지 요소를 결합한 조형 단위가 바로 그의 "색채 형태 알파벳(Color Form Alphabet)"이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색채 형태 알파벳"이 우주의 모든 원소를 보여줄 수 있는 세포나 분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현재와 미래의 창조자는 더 이상 전통 예술에 의지하지 않고 과학자, 엔지니어, 기술자, 건축가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래 사회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 전 세계의 모든 공간, 가정, 세부 사항으로 확장할 수 있는 예술 형식을 창조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 같은 소명을 실현해줄 방법과 철학이 담긴 세계를 "행성의 민속학"이라고 불렀다.

 

전 세계로 확장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 가능성인 "조형적 통일성"이라는 개념은 1983년 그의 저서 《행복의 폴리크롬 도시(Cité Polychrome du Bonheur)》에서 발표한 "컬러풀 시티"라는 개념으로 이어졌다. 평생에 걸친 그의 예술적 목표 중 하나는 이렇게 개념화되었다. "다채로운 행복의 도시를 건설하는 것보다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이어 그는 작가 자신이 이른바 "건축적 통합"이라고 부른 작품들, 즉 건축물을 위해 고안된 작품 제작에 나선다. 1954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대학교 캠퍼스를 장식하기 위한 작품을 시작으로 파리의 몽파르나스역에 있는 두 개의 대형 벽화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정점은 1976년에 개관한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의 바자렐리 재단 건물로 육각형 모양으로 된 이 거대한 건축물은 바자렐리의 작품을 입체화한 하나의 거대한 조형물인 동시에 미술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1953년부터 바자렐리는 자신이 "배수"라고 부르는, 재성 복제가 가능한 작품의 중요성을 역설하기 시작했다. 예 일부 계층만이 독점하고 향유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프로토타입에 따라 재현되고 재승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배포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보 성별, 연령의 한계를 뛰어넘어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고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안하고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보통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이해 옵아트의 역동성을 최대한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켜나갔다. 

 

"나는 스스로를 세기의 아이라고 부르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새로운 도구, 합금 또는 힘 재료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문장처럼 그는 예술가는 아크릴 유리나 플라스틱, 유리 도자기, 나무 또는 다양한 금속과 같은 산업적 방법으로 새로운 재료를 사용해 새로운 형식의 예술품을 제작해야 생각했다. 청년 시절 독일 바우하우스의 사상과 가르침을 그는 평생 동안 "예술가는 언제나 창의적인 태도로 작품 활동을 해야 한다"는 작가관을 견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