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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혁한방] 유럽최고법원 “기후위기 대응 미비는 인권 침해"

제22대 '기후국회'와 유럽인권재판소(ECHR) 기후판결

K-Classic News  허준혁 칼럼니스트 |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못한 것은 스위스 정부의 인권 침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전 국민의 눈과 귀가 몰려 있던 총선 하루 전인 4월 9일(현지시각), 유럽에서는 "정부의 미흡한 기후정책 대응은 인권침해"라는 유럽 최고 법원의 '역사적인' 판결이 나왔다. ​평균 연령 74살 스위스 여성환경단체가 "지구 온도를 산업화 이전 보다 1.5℃ 이상 오르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못한 것은 스위스 정부의 인권 침해"라며 제기한 소송에 승소판결을 내린 것이다. ​

 

유럽인권재판소(ECHR) 재판부는, 스위스 정부가 유럽인권조약 제8조 '사생활 및 가정생활을 존중받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해당 조약에는 '기후 변화가 생명, 건강, 복지와 삶의 질에 미치는 심각한 악영향에서 국가 당국의 효과적인 보호를 받을 권리'가 포함된다고 했다. ​이번 판결은 국제 법원의 기후위기 소송에 내린 첫 판결이자, '기후위기 방관은 인권침해'라는 첫 판결이며,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의 의무'를 인정한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이번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은 각국의 정책을 바꿀 구속력이 있다는 점이다.

 

유럽인권재판소 각국 정부에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수정 명령을 내릴 것

 

이번 판결을 계기로 유럽인권재판소는 각국 정부에게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수정 명령을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협약에 서명한 46개국들을 대상으로 유사한 소송이 계속될 가능성도 크다. 유럽 외에 한국, 호주, 브라질, 페루 등에서 진행 중인 기후소송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되고 있다. ​

 

                   포르투갈 산불               

 

포르투갈 청소년들의 기후위기 소송 ​같은 날 포르투갈 청소년들이 제기한 기후소송에 대한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도 있었다. 포르투갈 청소년 6명은 32개의 유럽 국가를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했다. 유럽 국가들이 기후위기에 대처하지 못해 유럽인권협약 제2조(생명권)와 제14조(차별금지) 등을 침해했다는 것이었다. ​포르투갈은 2017년 대형 산불로 66명이 숨진 데 이어 2018년 여름엔 40도가 넘는 폭염에 시달렸다. 이들은 기후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면 젊은 사람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된다고 주장했다. “포르투갈 외 국가에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라는 판결에 따라 기각이 되긴 했지만, 포르투갈 정부만 상대로 소송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으리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우리도 100살까지 살고 싶어요"

 

미국 몬태나주 청소년들은 가족의 목장을 위협하는 극단적 날씨, 천식을 악화하는 산불연기, 기후변화에 따른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몬태나 주 법원은 몬태나 주의 기후위기 책임을 인정하며 청소년들에게 승소 판결을 내렸다. 세계 곳곳의 청소년들은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대처 부족은 기본권 침해라며 헌법적 심사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기후재앙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우리도 100살까지 살고 싶어요"라는 청소년들의 절규를 귀밖으로 들어서는 안된다.

 

IPCC 보고서와 세대별 행동 UN은 지난해 3월 전 세계 과학자와 195개국 정부 관계자가 참여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6차 종합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1950년생과 1980년생, 2020년생 등 세대별 상황도 설명하고 있다. 1980년생이 70세가 됐을 때 지구는 2℃ 상승의 재난 상황에 처하며, 기후위기에 책임이 가장 적은 2020년생은 인생 대부분을 2℃ ~ 2.5℃ 상승한 지구에서 살게 됨으로써 가장 큰 피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후위기는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스위스 여성노인단체와 포르투갈, 미국 청소년들의 소송사례 등은 기후위기에 따른 세대별 행동에 있어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과 EU의 탄소장벽 기후위기를 '환경오염' 정도로 인식하며 "당장은 먹고사는 게 중요하다"라고 규제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기후위기는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고 있다. 탄소 규제와 배출권 거래에 가장 적극적인 것은 유럽연합(EU)이다. EU는 2026년부터 유럽에 수출되는 6개 품목에 탄소 배출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EU는 이 같은 내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지난해 10월부터 시범 시행하고 있다. 미국도 미국판 탄소국경세로 불리는 '청정경쟁법'(이하 CCA)을 발의했다. 12개 수입 품목에 2025년 1월부터 온실가스 배출 1톤당 55달러를 부과한다. CCA는 대상 품목을 전기전자, 자동차 등 완제품으로 확대할 예정이며, 2030년에는 관세액이 90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국내 기업 상당수는 대비를 못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EU에 최대 3년 기술 격차가 벌어져 있으며 중국에는 1년 차이로 쫓기고 있다. 앞으로 탄소중립을 할 수 있느냐 못하느냐는 엄청난 무역장벽, ‘탄소장벽’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1.5℃ 마지노선' 기후위기시계 기후위기시계(Climate clock)...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 상승하는 시점까지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이다. 2019년 독일 베를린에 처음 설치된 이래 미국 뉴욕에 이어 2021년 5월 세계에서 3번째로 서울에도 설치되었다. 이후 현재 국내에서는 부산·인천·전주 등 10곳에 설치되어 있다. 국내 1호 기후위기시계가 설치되었을 때 남은 시간은 6년 235일이었지만 올해 7월 중 남은 시간은 4년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국회 각 정당도 기후 공약 법 제정에 나서야   

 

클라이밋 클락 본부는 맨 앞자리 숫자가 '4'로 바뀌는 시점을 ‘기후비상의 날(Climate Emergency Day)’로 선포할 예정이다. 4.10 총선, 각 당의 기후공약 한국은 2030년까지 2021년 대비 탄소 배출 40% 절감, 2050년까지 탄소 중립 달성을 국제사회에 공언했다. 각 당들도 이번 총선에서 기후위기 관련 공약을 내세웠다. 국민의힘은 원자력 발전과 신재생에너지의 균형적 활용,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 기술 개발 적극 추진 등을 약속했다. 민주당은 ‘RE100’(재생에너지 100% 활용) 적극 지원과 신재생에너지 의무 공급비율(RPS) 상향, 한국형 발전차액지원제도(FIT) 재도입을 공약했다. 녹색정의당은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새로운미래는 기후 신산업 연구개발 지원, 개혁신당은 무탄소 에너지(CF100)와 RE100 기반 구축, 조국혁신당은 태양광·풍력발전 특별법 제정 등을 약속했다.

 

Photo: UN 피스코 김봉선 작가 

 

각 당의 기후 공약과는 달리 지역구 후보자들은 거의 기후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우리도 기후공약을 했다"는 선언적, 과시적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결국 실천이 관건이다. 재원 확보나 법·제도 개선 등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후속조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기후위기시계 국회 설치와 '기후국회' 총선은 끝났다. 약속을 지키는 일만 남았다. 스위스 여성환경단체들에 대한 유럽최고법원의 판결이 시사해 주는 의미와 앞으로 몰고 올 파장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도 4월 23일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과 시행령 등을 대상으로 제기된 헌법소원 4건에 대한 첫 공개변론을 앞두고 있다.

 

새롭게 출범하는 제22대 국회는 임기가 2024~2028년으로, 온도 상승폭이 1.5℃ 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와 맞물린다. 제22대 총선은 ‘기후 유권자’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선거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기후위기시계는 갈수록 빠르게 돌고 있다. 세계 최초로 기후위기시계를 국회의사당에 설치하고, 기후위기를 철저하게 대비해 나가는 '최초의 기후국회'가 되기를 기대하고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