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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리뷰] 피아노와의 삶 80주년 장혜원 음악회

2023년 12월 10일 (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K-Classic News 성용원 평론가 |

 

 

 

​경이롭다. 존경스럽다.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80의 나이에 새로운 레퍼토리에 도전해 에튀드를 치는 그 지치지 않은 끝없는 열정과 장인 정신, 그리고 완벽주의가 큰 울림을 주고 음악계의 큰 어른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희로애락 인생 속에서 피아노와 함께 달려온 삶의 여정을 통해 그의 음악 인생 80년을 고스란히 담아낸 연주회였다. 

 

1부에서는 스카를라티(D. Scarlatti)의 ‘Sonata in D Minor L.413’과 ‘Sonata in D Minor L.164’, 경쾌하면서도 우아한 작품이 돋보이는 피에르네(G. Pierne)의 ‘15 Pieces Op.3’과 ‘Etude de Concert’를 선보였다. 피에르네의 '피아노를 위한 15개의 곡'은 리스트의 '순례의 해'와 같은 모음곡으로 특히 '교회'는 그중 '빌헬름 텔 성당'과 같은 깊고 웅장한 악풍이었으며 나폴리의 춤곡 '타란텔라'에서는 칸초네 '푸니쿨리 풀니쿨라'의 선율이 인용되기도 하였다.

 

이 모든 곡을 암보로 치는 노(老) 대가 장혜원의 모습에서 호로비츠가 투영되었다. 꺾이지 않은 장인의 숭고함과 완벽주의가 금시벽해 향상도하[金翅劈海, 香象渡河] 이라는 (금시조의)금색날개가 바다를 바르고, (향상이라는)코끼리가 물살을 가르는 그 웅혼한 기세로 일생을 바쳐 추구한 경지에 올랐다. 아나운서나 해설가 따위의 말이 필요 없이 수백개의 시선이 박힌 오직 적막만이 흐르는 외로운 무대에서 연주혼을 바쳐야 하는 정통 피아노 리사이틀이 대관종의 시대에 경종을 울렸다. 끊임없는 열정과 샘솟는 듯한 창의력, 치열하고 혹독한 자기 수련과 프로정신, 신곡 발굴과 저변 확대라는 연주자를 넘어 우리 음악계를 위한 헌신에 경이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2부에서는 2022년부터 장혜원이 있는 한국피아노학회의 피아노5중주 프로젝트로 창작 활성화와 앙상블 교육 그리고 한국적인 소재로 국제 교류의 새 장을 열고 있는 실내악 무대였다. 현악은 리움현악4중주단(바이올린의 이진성과 옥자인, 비올라의 박용은, 첼로의 김다솔)이 함께 했다.

 

① 신동일 – 오빠생각

피아노의 8마디에 이어 다음 큰 악절에서는 현이 가세되어 전개하다 빠졌던 피아노가 다시 합류하더니 국악 장단을 곁들인 행진곡풍의 변주로 이어지다 첼로의 장2도 16분음표의 짧은 인터메조에 이어 다시 원 주제로 복귀하였다.

 

② 정보형- 새야새야

저음의 현악기부터 고음으로 하나씩 들어오는 대선율에 로드무비의 OST과 같은 영상미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완전 4도의 '새야새야' 주제 모티브가 하향 조성 모방되더니 내림표 계열의 조성으로 전조 되는 게 감각적이었다. 주제는 현악기들에 의해 시종일관 차분하게 이어가지만 피아노에서 바뀌는 변화화음들로 인해 원래 민요의 느낌은 온데간데없이 마치 류이치 사카모토와 같은 뉴에이지 풍의 감성이 가득해졌다. 종지는 주제 파편의 분해로 소멸되어갔다. 그리고 긴 노스텔지어만 잔향으로 남았다.

 

​③ 김은혜 – 아리랑

현악4중주만으로 서주가 시작되고 주제는 피아노에 의해 나온다. 8개 음의 아치형 모티브가 피아노에 의해 그리고 현악은 피치카토로 어울리다가 왼손에서 등장하는 트로트 풍의 반주형에 걸맞은 가요풍의 선율이 전개되는데 Db음이 너무 신파적으로 빠지는 걸 막아줬다. 피아노 왼손의 리듬이 이제는 주 리듬으로 작용하면서 Bb-C-Bb 음의 순으로 되어 있는 장2도 3음 모티브가 나왔는데 이 모든 건 원래 주제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개파이다.

 

​④ 신동일 – 봄바람

피아노가 나왔다가 현악4중주만 나오는 각각 따로 순차적인 등장을 하더니 피아노의 4마디 이후에는 마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에서의 현악 반주와 같은 화음 깔림이 피아노를 감쌌다. 신동일 특유의 전조 과정이 생략된 이조의 연속으로 진행되다 원조인 D에서 버금딸림조인 G로 이동하였다. 주제의 머리 부분을 강조하고 거기서 파생되어 발전시키는 고전적인, 더 나아가 브람스 같은 작법으로 되어있다.

 

​⑤ 나인용 – 나운영 달밤 주제에 의한 로망스 2

21세기악회 발표회였지만 다행히(?) 종지는 소프라노 E음의 장3화음으로 마쳤다.

 

⑥ 김은혜 – 오 탄넨바움

첼로 솔로에 금세 비올라가 들어와 둘이 서주를 구성하더니 역시나 피아노가 주제를 제시하였다. 여기서부터 장혜원은 '오 탄넨바움' 선율을 만드는 주요소인 부점을 강조하는 게 앞으로 나올 복선을 깔았다. 왼손의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아르페지오에 주제 선율 분해로 인한 단선율 장음에 이은 2변주곡에서는 앞의 '아리랑'에서와 같은 아치형 음형에 이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현의 피치카토에 맞춘 흥겨운 중간부였다. F장조로 드디어 주제의 부점 리듬이 변주의 주 소재로 출연하더니 '오 탄넨바움'의 앞 4마디가 G장조로 수미상관되었다.

 

앙코르는 당연히(?) 슈베르트의 '음악에 부쳐'(An die Musik)였다. 경건했다. 장혜원의 삶을 한 마딜 요약한 셈이었기 때문이다. 숙연했다. 어느 누구도, 어떤 무엇도 막을 수 없는 음악 외길에 “일을 해야지, 움직여야 사람이지! 90살이 돼도, 100세가 되어도 돌아다니면서 일할 거야”라는 카랑카랑한 장혜원의 음성이 묵언으로 들려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반성하게 만드는 장혜원의 가르침의 시간이었다.

 

​評 성용원 (작곡가, 상임평론가) 

 

[출처] 피아노와의 삶 80주년 장혜원 음악회|작성자 클래식 잡지 월간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