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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섭 클래식인터뷰] 몽골 음악봉사활동가 - 제주대 황경수 교수

A Better Me
찾아가는 아름다운 음악봉사 활동가
꿈은 더 나은 내일을 향해

K-Classic News 원종섭 기자 |

 

 

 

 

 

 

"이 혼잡한 세상에  스스로  찾아가는 아름다운 음악 봉사 활동가  황경수"

 

 

2023년 7월 19일부터 23일까지 몽골에서의 음악 봉사 기록

 

 

 

 

우리는 길을 잃어 버릴 준비를 해야 합니다

황경수 교수의 품격있는 이중생활을 파헤칩니다

 

 

기울어진 지구의 여행은 어마어마한 기회를

가져다 주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황경수 교수에게 몽골 봉사의 의미는?

 

 

 

스스로 일년동안의  삶에서 만들어야 할 매듭 중 하나이다

 

 

스스로 꼭 지어내어야 할 일년 농사 품목 중 하나이고

 

 

 

삶의 지루함을 정리해주는 나를 위한 축제이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의미있는 행사이다. 원조받던 국가에서 원조해주는 국가의 국민 자존감을 세워주는 행사이며, 남들이 하기 어려운 봉사이어서

 

 

나에게 자존감을 주는 활동이다

 

 

 

봉사할 수 있는 악기연주 소양이 있어서

감사하게 되는 활동이다

 

  

 

 

 

 

"이번 봉사활동에는 예전에 했던 학생이 참여해서 플룻*의 몽골정착에 도움 될 듯 하다.

첫연습에 온 학생 중, 코로나 전에 왔었던 학생 ‘아쩨아’라는 여학생은 플룻 스케일을 알고 있었다. 그 때는 초등학생이었는데.  플룻 앙상블이 몽골에서 싹이 트길 바라는 입장에서는 감동이었다. "

 

* 플룻의 한국국어원의 표준 표기는 플루트이다. 본지에서는 플룻으로 표기한다

 

 

 

기부의 연속과 누적  

 

2019년 기부했던 플룻 10대는 그대로 있었다. 잘 보관되어 있었고, 일행 이관홍 선생이 그 중 두 대는 수리를 했다. 이관홍 선생이 악기를 수리를  배우고와서 봉사가 한층 수월해졌다.  

 

 

의지만으로는 쉽지 않은 플룻

 

초등학생 남학생은 의지는 있으나 플룻이 한번에 가능하지 않아서 울기도 한다. 사실 플룻은 쉬울 듯 해도 쉽지 않다. 다양한 음역, 안정적 소리, 다양한 표현이 가능함, 서양음악 악보에서 표현하는 것을 대부분 표현할 수 있는 악기여서 예민하고, 쉽지 않은 악기이다. 소리를 낼 수만 있다면 그것은 많은 발전이다. 리코더가 쉬운 악기는 아니지만 고장의 염려도 덜하고 부는 방법도 어렵지 않아서 쉽다고 느낀다. 플룻은 그와는 다른 점이 많다. 조립에서부터 엄격함이 적용되는 악기이다.   

 

 

 

 

현지에 계시는 수녀님 두 분 중 한분은 예전에 배운 적이 있어서 음계는 곧잘 하신다.  한 수녀님은 이번에 배우기 시작했지만 대금을 연주할려고 노력하셨던 분이시라 금방 배우신다. 수녀님들이 잘 하시게 되어 어린학생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어느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안내하면 금방 활성화 될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룻 앙상블이 몽골에서 태어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첫날까지는 절대적이었다. 

 

 

 

벽화봉사도 곁들이고

 

 ‘이미나’라는 제주대학교 미술학과 4학년 학생은 같이 가서 벽화그리기를 안내했다. 꼬마들이 좋아해서 참여도 하고, 방해도 하고, 어린이다운 모습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즐겁게 따라한다. 교장 수녀님도 긍정적으로 보신다. 어린이들이 자유롭고, 어른들이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극히 정상이라고 말씀하신다. 어린이들을 지지해주시는 것이다. 

 

 

 

 

이미나 학생은 2018년에 고등학생일 때도 몽골에 가서 어린이들에게 페이시페인트 등을 해주었다. 어린이들이 아주 좋아했다. 어린이들이 관심을 집중시키는 데에 일조를 하였다. 봉사를 할 때 하나의 항목만으로 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선물, 다양한 장르 등을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엘 시스테마 운동의 맥락을 국제교류에

 

 베네즈웰라 엘 시스템마 운동을 존경했었다. 그 운동을 알기전부터 사실 그 맥락의 운동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항상 있었다. 북한 길이 열리면, 악기를 가지고 가서, 북한 어린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쳐 주고 싶고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그길로 중국과 몽골에 가서 가르쳐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터였다. 우연히 다른 봉사로 몽골에 갔다가 수녀님들을 뵙고 제안한 결과 긍정적 답을 얻게 되어서 시작되었다. 2017년 제주도 지속가능협의회에서 몽골에 사막화방지를 위한 물주기 봉사활동에 임했었다. 그 때부터 연결된 것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외국에 지원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가고 있다.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음악분야에서도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게 가능하게 되었다. 가능하면 우리가 돈을 모아서 하고, 공공의 지원은 받지 않고 봉사하려고 한다. 그래야 봉사의 의미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팀의 생각이다. 

 

 

 

 

제주와 몽골의 관계 자주 떠올라

 

몽골 봉사과정에서는 과거 원나라, 삼별초, 탐라총관부, 목호, 최영 장군의 목호정벌, 항몽유적지 등이 연결되면서 제주도와 몽골은 사실 다른 나라 하나의 핏줄일 수도 있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호들이 제주의 여성들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들이 또 자라서 아이를 낳고, 그 중 한 아이가 저일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본 것이다. 그렇게 보면 제주와 몽골은 제주와 오오사카 처럼, 우리나라와 고려인처럼 떨어져 있지만 연결되는 관계가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다리가 필요해

 

다리역할을 할 수 있는 음악선생님이 계셨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방학이라서 이번에는 뵙지 못했다. 아니면 우리 중 한 두명이 겨울에도 가서 봉사하게 되면 좋은 다리가 될 듯 하기도 하다.  

 

 

 

 

 

몽골 플룻 앙상블팀 제주에 공연이 꿈! 그런 꿈, 꾸지 말아야 성공할 수 있을 듯!

 

몽골의 플룻 앙상블 팀이 만들어지고, 그 팀을 제주로 초대해서 공연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 최고의 바램이다. 

첫날 꾸어본 꿈이었고, 다음 날, 그 꿈도 꾸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유욕을 가지면 순수 봉사가 안될 듯 싶어서였다. 그래서 바뀐 꿈은 저희들의 봉사로 플륫을 불러본 수녀님이나 학생들이 과거의 추억을 하나 만들어주는 것으로 족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악기 구입 부담 줄어듬

 

이제 악기를 계속 가지고 가서 기부를 했기 때문에 악기가 근 20여대가 되어갔다. 그래서 다음부터의 봉사는 훨씬 가벼워질 듯 하다. 악기를 새로 사야하는 부담감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예산이 확보되면 추가적으로 더 구입하겠지만, 그래도 부담은 줄어드니 봉사출발의 어깨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통역은 한국 출신 수녀님들이

 

소통이 어려웠다. 몽골어로 직접 말할 수 없으니 집중이 잘 되지 않아 몰입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수녀님들이 통역을 해주셔서 조금 가능하긴 했다. 수녀님들은 통역하면서 악기에 대한 지식을 더 넓혀가는 잇점도 있었다. 

 

 

손가락이 작아서 구조적으로 플룻 배우기 어려운 꼬마들은 오카리나로

 

이튿날 일곱살 여덟살 꼬마들은 오카리나 배우는 팀으로 나누어서 봉사했다. 손가락이 짧아서 플룻을 구조적으로 잡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호흡과 악보 보기만을 배우더라도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안내한 것이다.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수녀님들이 준비해주신 식사로

 

식사 걱정은 없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 좋아서 행복했다. 수녀님들이 직접 재배하는 채소, 달걀 등을 재료로 만든 음식들이었다. 맛도 있고 건강식이며, 걱정도 없애주는 그런 음식들이었다. 점심에는 학생들과 같이 모두가 같이했다. 어린이 어른 모두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셨다. 

 

 

 

 

 

나비야, 작은 별, 오 수재너 연습

 

나비야라는 곡은 ‘시플랫’을 연습하기 좋은 곡이었다. 작은 별은 ‘도’와 ‘레’의 핑거링 연습하기 좋은 곡이었다. ‘오 수재너’라는 곡은 한 옥타브 위 음계 연습에 좋은 곡이었다. 세 곡을 모두 해서 마지막날 발표하려 했으나 두 곡만 했다.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첫날 식사 후 쇼핑, 걸어서 귀가할 걱정, 수녀님 승용차 도착, 일체감 형성 

 

첫날 저녁 식사 후 쇼핑을 하러 갔다. 수녀님들은 가까운 슈퍼를 말씀하셨지만 저희는 본 적이 없어서 멀리 있는 슈퍼를 갔다. 자동차 동선에서 보았던 슈퍼였다. 우리를 쇼핑하러 보내놓고, 수녀님들께서 우리를 걱정하게 된 것이다. 수녀님 중 한 분이 멀리 있는 슈퍼를 갔을 것이라고 생각하시고는 승용차를 보내 주신 것이다. 집까지 다시 걸어올라 갈 것을 서로가 말없이 걱정만하면서 쇼핑하던 중 수녀님이 나타나셔서 엄청 놀랐다. 차를 가지고, 우리를 데리러 왔다고 하니 더 놀랐다. 이번 봉사여행 중 최고의 에피소드였다. 진정성, 일체감, 고마움, 우리를 믿어줌 등을 느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운전하시는 수녀님의 흥얼거림 속에 ‘직녀에게’라는 선율이 흘렀다. 우리가 알아맞춰서 맞냐고 물으니 맞다고 하셨다. 불러달라고 청하니 고운 목소리로 불러주셨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제주도의 나와 몽골

 

 

 

나는  관조의 꼭지점에 있다

 

 

 

몽골 원이 제주 정벌과 삼별초, 목호의 삶과 그 후예 등의 역사를 관조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몽골과의 관계를 예술과 봉사를 통해서 연결하려는 노력의 시도와 시작. 테제의 시작점이다.  결국 나는 몽골 조상들의 제주 삶과 현재 몽골 어린아이들을 연결해주는 다리역할을 하는 느낌도 들었다. 그것도 제3자가 문화예술을 통해서!

 

 

몽골어를 배워야 하는 숙제

 

수녀님에게 말하고 왔다. 내년에는 묵주기도 드리는 방법 익히기와 몽골어를 배우는 것을 숙제로 정했다. 몽골어를 플룻을 가르칠 때 필요한 용어만이라도 익히자는 목적을 가지기로 했다.  소통이 가장 중요했다. 매일 하버마스를 외치지만 정작 몽골어를 사용하지 못하여 보석을 전달할 수 없으니 무력함이 컸다. 

 

 

6.25 전쟁당시 길버트 소령의 인간애 정신을 생각하면서

 

6.25당시 길버트 소령이 제주 서귀포 모슬포 군악대를 중심으로 제주도 학생들에게 악기를 가르쳐주고, 악기를 제공해주던 그 휴머니즘 정신을 생각한다. 위대함으로야 못 따라간다. 흉내를 내는 차원이지만 플륫과 같은 악기를 접하지 못하고, 불러보지 못했으며, 배울 기회를 가지지 못한 가난한 외국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모습은 비슷한 측면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연히 길버트 소령님의 역사를 알고, 그 DNA가 세포 어디엔가 숨어있었겠다!

찾아가서 하는 봉사차원에서는 조금 의미가 있다고 스스로 격려도 해본다. 

 

 

 

 

 

겨울에는 몽골 봉사를 할 수 없을까?

 

 겨울에도 몽골봉사 다녀올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러면 하루라도 빨리 플륫이 안착될 수 있을 듯 하다는 느낌 때문이다. 겨울은 보통 영하 20도라고 한다. 이전 겨울은 영하 40도, 기름값 천정부지로 올라서 겨울 지내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한다. 게르촌 지역은 중앙난방이 되지 않아 개별적으로 비용을 부담해야하기 때문에 가난하면서 연료비는 더 들어가는 지역이었다. 모순이다. 더 추웠겠다하는 생각이 들고, 겨울에 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먹구름이 인다.    

 

 

 

 

이번 여행은 별을 보지 못했다

 

몽골 봉사활동 중 마지막날 오후와 저녁은 들판에서 달빛을 관찰하는 여정을 계획한다. 이번에는 비가와서 생략했다. 수녀님들이 구워주진 삼겹살 파티만 했다. 술도 없이!!  봉사하시는 분들이 외국에 가서 조명아래서 술을 먹지 않는다는 다짐들을 듣곤핟다. 몽골에서는 조명은 아니라도 달빛 아래서 양고기 맛을 보고 와야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쉬웠다. 그래도 삼겹살 파티와 편안한 잠자리가 감사할 내용이었다.

 

허르헉이라는 요리는 봉사 두 번째날 저녁식사에서 맛을 보았다. 학교 직원 중 한 분의 댁에 초대받아서 맛을 보았다. 깨끗한 게르였다. 맛은 너무 좋았고, 게르의 느낌은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정문에서 20m!!!이어서. 

 귀국하기 위해 공항 레스토랑에서 몽골음식을 시킬 기회가 있었다. 제대로 느꼈다. 봉사 말미에 몽골 맛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했다.       

   

 

 

 

 

황경수 

1963~ . 국립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이다. 제주제일고등학교 브라스밴드 시절 수자폰 즉 튜바를 연주했고, 제주대학교 음악 동아리 칼리오페 Calliope에서  합창 지휘를 했다. 육군 군악대 시절 수자폰을 연주했고, 제주대 행정학과 학사, 서울대 도시 및 지역계획 석사, 서울시립대 교통분야 공학박사를 마쳤다. 2004년 이후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재직, 현 전몰군경유족합창단 지휘 봉사를 하고있다. 2017년 이후 몽골 봉사를 지속 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K-Classic News Wannabe.  redfox0579@naver.com

 

 

 

 

 

 

 

 

음악하는 마음은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 Muse Calliope

 

 

음악은 끝까지 미쳐야 갈 수 있습니다

-Wannabe

 

 

당신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뜻밖의 능력자 입니다

 

 

 

원종섭   Won  Jong -Sup

시인, 길위의 인문학자,  영미시전공 교육학 박사

대중예술 비평가,  K-Classic News 문화예술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