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글 │ 손영미 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인간은 때때로 자신에게 가장 금지된 곳에서 운명을 발견한다. 소년 빌리에게 그곳은 거친 복싱장이 아니라, 부드러운 발레 교실이었다. 탄광의 먼지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던 영국 북부의 음울한 회색 도시. 파업과 실업, 가난과 분노가 뒤엉킨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 거친 풍경 한가운데서 한 소년은 묻는다. “나는 왜 춤을 추고 싶은가.” 그 질문은 단순한 취미의 발견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자기 영혼의 진동수를 처음으로 감지한 순간에 가깝다. 빌리는 세상이 규정한 ‘남성성’의 틀에서 벗어난다. 강해야 하고, 싸워야 하며, 울지 말아야 한다는 완고한 질서 속에서 그는 몸이라는 도구로 다른 언어를 말하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 언어가 ‘말’이 아닌 ‘춤’이라는 사실이다. 춤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언어다. 언어가 탄생하기 전, 인간은 몸으로 슬픔을 새겼고, 기쁨을 하늘로 던졌으며, 절망을 발로 구르며 견뎌냈다. 빌리의 도약은 단순히 미학적인 발레 동작이 아니다. 그것은 억압된 존재가 자기 영혼의 감옥을 박차고 나오는 철학적 몸짓이다. 특히 작품 속에서 인상적
K- Classic News 손영미 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행여, 그대 나 몰래 운다면 그 눈물 닦아주리…” 김효근 작곡 〈어느 행복한 아침에〉의 한 구절이다. 이 짧은 문장은 노래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로 향하는지를 말해준다. 노래는 입술에서 태어나지만, 결국은 누군가의 눈물 곁으로 도착한다. 지난 2026년 4월 25일 토요일 오후 7시, 부산콘서트홀에서 ‘2026 한국가곡대축제-김효근 K-아트팝 가곡의 밤’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지난해 개관한 부산콘서트홀은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악기였다. 클래식 전용 홀 특유의 풍부하고 입체적인 사운드는 성악가의 미세한 호흡과 떨림까지 객석 구석구석으로 투명하게 전달하며, 이번 음악회의 감동을 한층 더 극대화했다. 지난 15년간 한국 현대가곡의 흐름을 이끌어온 작곡가 김효근. 그는 전통적 예술성(ART)과 대중성(POP)을 결합한 ‘K-아트팝’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며, 한국 가곡 르네상스의 한 축을 단단히 세워왔다. KNN과 한국가곡부산문화재단, 한국거래소, BNK금융그룹의 후원으로 이어진 이번 축제는 한국 가곡의 현재를 증명하는 귀한 무대였다. 공연은 인간 감정의 궤적을 따라가는 네 개의 정서적 테마
K-Classic News 글 │ 손영미 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우리는 지금, 답이 질문을 앞지르는 시대를 산다. 속도는 미덕이 되었고, 요약은 이해를 대신하며, 감정은 알고리즘의 추천 목록으로 환원된다. 이 거대한 효율의 흐름 속에서 문학은 종종 “쓸모없는 장르”로 밀려난다. 느리고 비경제적이며, 즉각적인 해결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묻고 싶다.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정말 ‘시간’뿐인가. 아니면 인간을 인간답게 이해하는 방식, 그 자체인가… 최근 ‘손석희 질문들’에서 김애란과 손석희의 대화는 이 질문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를 던진다. 그들은 문학의 효용을 말하기보다우리가 어떤 속도로 타인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되묻는다. 오늘의 사회는 끊임없이 결론을 요구한다. 사건이 발생하면 곧바로 해석이 뒤따르고 해석은 평가로, 평가는 진영의 언어로 굳어진다. 그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시간’이다. 누군가의 고통이 자신의 속도로 말해질 권리, 그 감정이 충분히 머물 수 있는 여지, 문장이 끝까지 도달할 때까지의 기다림이 삭제된다. 김애란 작가가 말한 “집중력이 곧 도덕이다”라는 문장은 이 지점에서 사회적 의미를 획득한다. 집중이란 단순한 주
K-Classic News 손영미 작가 · 시인 · 칼럼니스트 종로 인사동은 늘 시간을 품은 거리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오래된 종이 냄새와 붓끝의 숨결, 이름 모를 도자의 윤기가 골목 사이로 스며 나온다. 그 익숙한 예술의 결 위에 새롭게 문을 연 더프리마아트센터는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한 사람의 오랜 안목과 집념이 마침내 공공의 문화 자산으로 확장되는 뜻깊은 공간이다. 이번 방문에서 가장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것은 이상준 회장의 소장품 전시가 지닌 상징성이었다. 수집은 단순히 귀한 물건을 모으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미감을 읽고, 사라질 뻔한 시간을 붙들어 미래에 건네는 조용한 사명이다. 이상준 회장이 오랜 세월 곁에 두고 아껴온 작품들은 이제 한 개인의 서재와 응접실을 떠나 더 많은 이들의 눈과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먼저 다가오는 것은 작품의 ‘가격’이 아니라 ‘시간’이다. 도자의 표면에 스민 미세한 균열, 오래된 회화의 바랜 색감, 손때 묻은 고미술의 온도는 모두 한 시대의 호흡을 품고 있었다. 작품 하나하나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우리 역사와 한민족 삶의 결을 증언하는 침묵의 기록물처럼 다가왔다. 이번 전시의 중
K-Classic News 글 │ 손영미 작가 · 시인 · 음악칼럼니스트 한국예술가곡연주회가 오는 3월 31일(화) 오후 6시,보바스 기념병원 본원 로비(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왕판교로 155-7)에서 따뜻한 위로의 무대 <보바스 기념 병원 별빛콘서트〉를 다시 연다. 작년에 깊은 울림을 남겼던 이번 음악회는 클래식 성악과 대중가요가 어우러지는 크로스오버 콘서트로 꾸며져 환자와 가족, 의료진 모두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치유의 시간을 선사할 예정이다. 1부는 〈가고파〉, 〈남촌〉, 〈친구여〉, 〈꽃 구름 속에〉, 나폴리 민요 〈Santa Lucia〉 등으로 시작해 고향의 향수와 삶의 추억을 불러내는 친숙한 선율로 무대를 연다. 이어 슈베르트의 <Ständchen> 을 비롯해 〈청산에 살리라〉, 〈그리움〉,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 전통 민요 〈새타령〉까지 세대를 잇는 폭넓은 레퍼토리가 병원 로비를 한 편의 봄밤 풍경처럼 물들인다. 특히 공연의 마지막은 테너 5인의 특별 무대 〈O Sole Mio〉로 장식된다. 한국예술가곡연주회 최금주 회장은 이번 위문 연주회에 대해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환자들과 함께 따라 부르는 이 시간이 단순한 연
K-Classic News 손영미 작가. 시인. 칼럼니스트 | 650명의 예선 지원자들 가운데 단 10명만이 본선에 진출한 무대였다.이번 무대는 한국 가곡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공연 진행은 다소 길게 느껴졌지만, 연주자들의 뛰어난 기량은 충분히 인상적이었다.b음정과 호흡, 표현의 완성도는 국제 콩쿠르 무대를 연상시킬 만큼 정교했고, 무대 전반은 세련된 오케스트라와 안정된 음향 속에서 탄탄하게 구축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질문이 남는다. 기술이 완성될수록,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우리 가곡의 힘은 단순한 성악적 기교에 있지 않다. 말의 결을 살리는 호흡, 시어 사이에 스며드는 여백, 그리고 삶의 체온을 담아내는 절제된 울림 그 ‘맛’에 있다. 그 맛은 화려함이 아니라 스며듦이며, 과시가 아니라 기억으로 남는 정서 이번 무대에서는 그 고유한 결이 다소 옅어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동시에 전통을 향한 의미 있는 시도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민요와 전통 가곡이 주요 수상으로 이어진 점은, 우리 음악의 뿌리를 다시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 깊은 울림을 남긴다. 특히 임선혜 교수와 박미혜 교수의 심사평은 단순한 평가를 넘어, 가곡이 지
K-Classic News 손영미 작가. 시인 오는 2026년 3월 23일(월) 오후 7시 30분, 서울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네 명의 소프라노가 선사하는 특별한 봄의 무대, <Four Divas 정기연주회>가 열린다. ‘디바(Diva)’라는 호칭은 단순히 노래 실력이 뛰어난 성악가를 넘어, 한 시대의 감성을 대변하고 무대 위에서 자신의 삶과 예술적 깊이를 동시에 증명해 내는 이들에게 허락되는 영광스러운 이름이다. 이번 공연은 한국 성악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네 명의 소프라노김보영(예술총감독), 김미현, 김성현, 백현애가 한자리에 모여, 각기 다른 음색을 하나의 봄빛으로 엮어낼 예정이다. 디바의 전통을 잇는 오늘의 목소리 오페라의 역사 속에서 디바는 늘 시대를 움직이는 상징이었다. 20세기 신화 마리아 칼라스부터 레나타 테발디, 조안 서덜랜드, 그리고 현대의 안나 네트렙코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목소리라는 악기로 당대의 미학을 번역해 왔다. 이번 <Four Divas> 콘서트는 이러한 디바의 전통을 계승하며, 동시에 한국 성악의 오늘을 보여주는 자리다. 특히 예술총감독을 맡은 김보영을 필두로 대외협력홍보감독으로 활동 중인 김미현,
K-Classic News 손영미 작가 ,시인 칼럼니스트 최근 개봉한 영화 ‘ 왕과 사는 남자‘ 가 2026년 2월 4일 개봉 후 흥행을 이어가며 3월 6일 1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3월 8일 기준 1,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영화는 폐위된 단종 이홍위(박지훈)와 촌장 엄흥도(유해진)의 관계를 중심으로, 유배지 영월에서의 시간을 그린 사극이다.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이유는 이 작품이 단순한 사극이 아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왕을 모시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권력에서 밀려난 한 인간과 그 곁을 끝내 떠나지 않는 또 다른 인간의 이야기다. 그래서 이 영화는 왕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함께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가깝다. 우리는 지도자를 말할 때 흔히 힘을 떠올린다. 결단력, 카리스마, 통치력 같은 단어들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익숙한 문법을 조용히 뒤집는다. 왕위에서 쫓겨난 단종은 더 이상 권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왕관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한 인간의 품위뿐이다. 그리고 엄흥도는 그 곁에서 묻는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람 곁에 남는가. 장항준 감독이 이 작품의 핵심으로 말한 인간의 마지막 ‘도덕의 마지노선’이라는 화두도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K-Classic News 글 │ 손영미 - 작가·시인·칼럼니스트 〈K-가곡 슈퍼스타 코리아〉는 단순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다. 이 무대는 잊혀 가는 장르를 소환하기 위한 기획도, 새로운 스타를 급조하기 위한 이벤트도 아니다. 이 프로그램의 출발점에는 하나의 분명한 질문이 놓여 있다. “지금 이 시대에도 가곡은 여전히 살아 있는 언어인가.” 그래서 이 무대는빠른 유행보다 느린 호흡을 선택했고, 자극적인 편집보다 한 곡의 완주를 택했다.가곡을 다시 경쟁의 장으로 불러낸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과 목소리가 만나는 자리로 초대했다는 점에서 이 기획은 조심스럽고도 용감하다. 요즘 세상에서 노래는 자주 순위를 부여받는다. 조회 수로, 점수로,탈락과 생존이라는 이름으로.그래서 ‘슈퍼스타’라는 단어 앞에 ‘가곡’이 붙었을 때, 나는 잠시 멈춰 서게 되었다. 가곡은 원래 이기기 위해 불리는 노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곡은 사람의 속도를 늦추고 말의 온도를 되돌리는 노래다. 기교보다 호흡을 묻고, 성공보다 태도를 묻는다. 그 가곡이 <K-가곡 슈퍼스타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KBS홀 무대에 오른다는 사실은 단순한 방송 편성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 무대는 ‘누가 더
K-Classic News 손영미(극작가, 시인 칼럼니스트) 책을 내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출간 전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 원고를 덮고 나서야 또렷해지는 공부의 방향들이다. 아래의 열 가지는 최근 필자의 시집 ‘자클린의 눈물 ‘ 책을 내면서 다시 한번 더 깨닫고 체득한 것들’이며, 동시에 누군가가 용기 내어 공부하고, 쓰고, 출간하도록 등을 미는 이유이기도 하다. 1. 책은 ‘재능’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다 책을 쓰는 사람을 보면 흔히 묻는다. “원래 글을 잘 쓰셨나요?” 그러나 책은 재능의 증명서가 아니라 시간의 누적표다. 하루 한 쪽을 쓰든, 일주일에 한 단락을 고치든 중단하지 않은 시간이 결국 원고가 된다. 재능은 방향일 뿐, 완성은 오로지 지속성의 결과다. 2. 완벽을 기다리면 영원히 출판하지 못한다 책을 내지 못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미완성에 대한 두려움’이다. 하지만 출간은 완벽함을 선언하는 일이 아니다. 지금의 나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생각을 정직하게 공개하는 선택에 가깝다. 완벽을 기다리는 동안, 생각은 늙고 질문은 시효를 놓친다. 3. 출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원고를 넘기고 나면 안도감보다 먼저 드는 감정은 “이제 더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