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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아 칼럼] 나는 편안함을 위해 침묵하고 있지는 않은가? 뮤지컬 '위키드'가 던지는 철학적 질문과 예술적 완성도

K-Classic News 박선아 칼럼니스트 |얼만전에 지인과 뮤지컬 '위키드' 공연을 보고 난 후 여운이 남는 그런 감정을 오래간만에 느끼게 되었다.

“나는 지금, 편안함을 위해 침묵하고 있지는 않은가?”,“얼마나 많은 순간 편안함을 위해 침묵을 선택하였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화려한 무대와 웅장한 음악으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 잡았지만 본질적으로 인간의 윤리적 선택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착한사람’이 되는법이 아니라 ‘깨어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법에 대한 성찰을 하게되었다.

 

뮤지컬이란 대중 예술의 언어로 확장한 작품이다.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의 세계관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Wicked: The Life and Times of the Wicked Witch of the West』를 원작으로 한다. 음악은 『Stephen Schwartz』가 맡아,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이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화려한 무대나 유명한 넘버 때문만은 아니다. '위키드'의 진정한 힘은, 관객의 삶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철학적 질문에 있다. 심오한 철학적 질문을 음악고 무대로 전달함으로써, 생각하기전에 음악으로 느끼고 느낀 뒤에 철학적인 생각을 하게 하는 위대한 작품이다. '위키드'를 보고 난 후 나는 이전과 조금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선택이다

 

'위키드'의 중심에는 두 인물이 있다. 사회적 차별을 받는 엘파바와, 인정받으며 살아가는 글린다이다. 이들은 모두 선한 마음을 가지고 출발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엘파바는 부조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동물 탄압, 권력의 거짓, 조작된 진실을 목격한 뒤, 그녀는 침묵하지 않기로 선택한다. 그 결과,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마녀’라는 낙인을 받는다. 반면 글린다는 다르다. 그녀 역시 문제를 인식한다. 그러나 그것을 바로잡기보다는, 체제 안에서 안전한 자리를 택한다. 영향력을 얻고, 명성을 유지하며, ‘좋은 사람’으로 남는다. 대신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이 두 인물의 대비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종종 부당함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다. 불합리를 느끼면서도 문제 삼지 않는다. 불편해질까 봐, 손해 볼까 봐, 관계가 틀어질까 봐 침묵한다.

'위키드'는 묻는다.

그 침묵은 과연 무해한가?

 

철학적으로 볼 때,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현존하는 구조에 대한 묵시적 동의이며, 유지에 대한 참여이다. 엘파바가 고립되는 이유는 그녀가 특별히 급진적이어서가 아니라, 침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편안한 삶과 윤리적 삶의 충돌

 

철학자 막스 베버는 인간의 윤리를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로 구분했다. 신념에 따라 옳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 그리고 현실적 결과를 고려하는 태도 사이의 긴장이다. '위키드'에서 엘파바는 신념 윤리에 가깝고, 글린다는 책임 윤리에 가깝다. 엘파바는 옳다고 믿는 일을 택하지만 고통을 감수한다. 글린다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안정적인 삶을 살지만, 그 과정에서 양심의 일부를 내려놓는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이미 수없이 글린다의 선택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직장, 조직, 공동체,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는 매일 작은 타협을 반복한다. 그 대부분은 생존을 위한 것이며, 현실적으로 이해 가능한 선택이다. 그러나 '위키드'는 그 선택들이 쌓일 때, 한 사회가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편안함을 택한 침묵이 많아질수록,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점점 ‘문제 인물’이 된다.

 

음악이 전하는 철학적 선언

 

'위키드'의 뛰어난 점은 이러한 메시지를 설교가 아닌 음악으로 전달한다는 데 있다. 대표 넘버 ‘Defying Gravity’는 단순한 고음 자랑이나 감정 폭발의 곡이 아니다. 이 곡은 엘파바가 사회적 승인 욕구를 내려놓고, 자기 신념에 따라 살겠다고 선언하는 윤리적 결단의 순간이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는 삶”을 포기하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선택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단순히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옳다고 믿는 일을 했는가? 또 다른 대표곡 ‘For Good’은 갈등과 차이를 넘어선 성찰의 노래이다. 두 인물은 서로 다른 선택을 했지만, 상대의 존재가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음을 인정한다. 이는 도덕적 완벽함이 아니라, 성찰하는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위키드'의 음악은 감정을 넘어 사유의 계기를 제공한다. 이것이 이 작품이 ‘좋은 노래가 많은 뮤지컬’이 아니라 ‘사고하는 뮤지컬’로 평가받는 이유이다.

 

세계적 수준의 공연 예술로서의 완성도

 

철학적 깊이만으로 위대한 공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위키드'는 예술적 완성도 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에 속한다. 무대 디자인은 오즈의 환상성을 구현하면서도, 권력 구조의 위압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거대한 시계 장치, 기계 장치, 색채 대비는 모두 서사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조명과 음향은 인물의 내면 변화에 따라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으며, 배우의 압도적인 성량과 감정선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특히 라이브 오케스트라와의 조화는 음악적 깊이를 한층 끌어올린다. 무엇보다 '위키드'의 강점은 배우의 연기와 음악 해석이 단순한 테크닉을 넘어, 인물의 사상과 내면을 전달한다는 점이다. 관객은 ‘노래를 잘 듣는 경험’을 넘어, ‘한 인간의 선택을 목격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이 '위키드'가 단순한 흥행작이 아니라,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이다.

우리가 공연장을 나선 뒤에도 남는 질문

 

'위키드'는 공연이 끝나는 순간 완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공연이 끝난 뒤,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며 다시 선택의 순간들을 맞이한다. 회의실에서, 교실에서, 온라인 공간에서, 가족 관계 속에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선택한다. 말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불편해질 것인가? 편안할 것인가?

'위키드'는 우리에게 영웅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에게 질문하라고 요구한다.

“나는 지금, 편안함을 위해 침묵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을 잊지 않는 한, 우리는 완벽하지 않아도 ‘깨어 있는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다.

좋은 공연이란 무엇인가?, 오래 기억되는 공연이란 무엇인가?

'위키드'는 그 답을 분명히 보여준다.

좋은 공연이란, 관객이 극장을 나선 뒤에도 자기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공연이다. 그래서 뮤지컬 '위키드'가 인기있는 작품을 넘어 전 세계 뮤지컬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성공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 아닐까 생각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