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10월 10일~12일 마스터피스 페스티벌,(중구 을지로 푸르지오 아트홀에서)
눈에 보인다고 해서 모두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림은 분명 눈앞에 존재하지만, 그 그림을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감상의 깊이는 전혀 달라진다. 단순히 시각적으로 인식된다고 해서 본질까지 ‘보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소리 또한 마찬가지다. 들린다고 다 들리는 것이 아니다. 아는 귀와 모르는 귀, 경험한 청취와 경험하지 못한 청취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다. 작품 역시 누가,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다. 알고 하는 연주와 모르고 하는 연주의 차이를 일반 청중이 즉각적으로 분별하지 못하더라도, 그 차이는 박수의 밀도와 감동의 깊이로 정확히 드러난다.
왜 K-Classic 작품은 연주되지 않는가
K-Classic 작품들이 무대에 오르지 않는 이유를 단순히 “낯설어서”라고 설명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비켜간다. 보다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는 작품에 관심, 정보, 해석, 연주 기술의 문제에 대한 학습 부재로 귀결된다. 서양 레퍼토리는 유학 과정에서 체화되었고, 반복 연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기 것이 된다. 해석을 돕는 문헌과 녹음 자료 역시 풍부하다. 반면 창작, 특히 K-Classic은 초행길이다. 우리 전통을 바탕으로 한 작품은 국악에 대한 이해, 우리 문화의 정서적 근본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접근 자체가를꺼려진다.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설명할 필요가 없이 어느 정도 답이 나와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공유하는 구조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전통의 문법을 모르면 ‘맛’을 낼 수 없다 한국의 전통이 녹아 있는 K-Classic 작품을 연주하면서 우리 장단과 색깔을 모른다면 그 작품의 맛을 살릴 수가 없지 않겠는가. 김치나 된장을 담그는 노하우가 없는 외국인이 김치를 담근다고 생각해 보자. 그 김치를 신뢰하고 선호할 수 있을까? 문제는 국적이 아니라 맥락과 축적의 부재다.
이같은 현실을 외면한 채 행정과 제도가 지원만을 앞세운다면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창제가 상당한 시간이 지났ㅈ만 그 작품을 연주하는 악단이 없이 일회성에 그친다면 그 원인이 뭘까를 짚어 봐야 한다. 그저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구호가 전부인 시대를 지났다. K-컬처가 글로벌 시장을 개척해야 하고 정부는 300조를 팔겠다고 호언 장당하는듯 큰소리지만 빙산의 일각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런지. 이 어마한 타이밍에 결정적 시점에, 가장 기초적인 문제가 다시 떠오른다. 기초가 부실한 건축물이 안전은 물론 상품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연주력의 차이가 차별화의 핵심이다— 미세한 디테일이 등급을 만든다
예술의 등급은 미세한 디테일에서 갈린다. 디테일을 놓친 상태에서는 결코 ‘수준’이라는 말을 할 수 없다. 이탈리아 오페라는 프랑스에서도, 독일에서도, 유럽 어디서나 공연할 수 있다. 그러나 본고장인 라 스칼라 극장에서 다른 나라 성악가가 중심이 되어 무대에 오른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는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정통성과 축적에 대한 존중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빈 필하모닉이나 베를린 필하모닉이 러시아에 가서 러시아 작곡가의 작품을 정면으로 연주 레퍼토리로 삼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연주를 못해서가 아니라, 상대 문화에 대한 존중, 오리지널에 대한 예의 때문이다. 물론 앙코르에서는 가능하다. 그러나 중심 레퍼토리로 삼지는 않는다. 이것이 세계 음악계의 암묵적 합의이자 품격이다. 얼마 전 국립오페라단이 바그너를 무대에 올린 사례 역시 이같은 맥락 에서 다시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손으로만 무대에 올렸을 때, 과연 그것이 바그너가 될 수 있는가?” 이는 비난이 아니라 연주 윤리에 대한 질문이다.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 《보체크 Wozzeck》는 1925년 초연, 베를린 Staatsoper)에서 총 137회의 리허설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완성도를 향한 치열한 자세다. 우리의 공공 시스템 오케스트라나 오페라에서 이런게 가능하겠는가. 새로운 음악, 낯선 문법은 그만큼의 시간과 밀도를 요구한다. 연습은 기술을 넘어서 작품과 문화에 대한 예의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번 마스터피스에서 그래도 연주력의 심화가 관객의 반응으로 드러난 것은 중요한 수확이다. 관객은 이론을 몰라도 완성도의 차이에는 정직하게 반응한다.

방향이 속도보다 중요한 이유
정부는 한류 콘텐츠 300조 원 수출이라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문화 산업화를 선언했다. 그러나 뿌리에서부터 흔들린다면 한류의 지속성은 담보되기 어렵다. 방향이 잘못된 상태에서 속도만 높인다면 그 결과는 소진과 왜곡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가까운 중국만 보더라도 양악과 서양 음악의 경계를 허물고 통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스탠다드로 가기 위한 공통문법을 만드는 과정이다. 이제 우리 역시 공통문법의 표준화라는 과제 앞에 서 있다. 좋은 연주가 좋은 작품을 만들고, 좋은 작품은 연주자를 살아 있게 하며, 그 과정이 곧 시장을 만든다. 제도는 중립적일 수 없다 특히 공공예술단체 운영, 예술감독과 지휘자 임용 과정에서 국악과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 실제 연주·기획 실적을 내신화해야 한다. 현재처럼 클래식 공연의 95% 이상이 서양 레퍼토리에 경도된 구조에서는 K-Classic의 성장은 구조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공공예술단체 레퍼토리 쿼터제 도입, 단체장 및 예술감독 임용 기준의 재설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는 창작을 보호하기 위한 특혜가 아니라, 왜곡된 생태계를 바로잡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제도적,행정적, 입법적으로 이 문제를 깊이 있게 파고들어야 한다. [탁계석의 마스터피스] 씨리즈는 바로 이같은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논의를 축적해 시스템의 제도화로 나아가려고 한다.
K-Classic 글로벌 진출을 막고 있는 것은 작품의 수준이 아니라, 이해하지 않으면서 판단하는 구조, 그리고 전통에 까막눈인 상태로 설계된 제도다.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속도를 낼 것인가, 방향을 바로 잡을 것인가. 미적 체감이 우리보다 높은 유럽 시장에 우리 것이라고 나간 것이 설익은 것이라면 환영받지 못하거나 반품이 될 것이므로, K 상표 브랜드를 확실하게 하자는 것이다. 도처에 길가의 돌멩이 보다 더 흔해져 가는 K~K~ K~, 이것이 K는 아닌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