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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언어가 되는 자리’ — 손영미 시집 『자클린의 눈물』을 읽다

한 개인의 고통을 넘어, 슬픔 이후에도 말할 수 있는 언어

K-Classic News  문 정 | 대중문화평론가·객원기자

 

 

손영미의 시집 『자클린의 눈물』은 슬픔을 감정의 표출이나 정서적 소비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는다. 이 시집에서 슬픔은 결과가 아니라 언어가 발생하는 조건이며, 시는 고통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고통이 말을 획득하는 순간을 기록하는 장치다. 슬픔은 해소되지 않으며, 대신 언어로 전환된다. 이 지점에서 『자클린의 눈물』은 치유의 서사가 아니라 발화의 시학에 가까워진다.

 

극작가이자 시인, 그리고 음악적 감각을 지닌 예술가라는 손영미의 이력은 그의 시적 구조에 분명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의 시는 장르적 혼종성을 띠되, 그것을 장식적 특성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음악은 비유로 차용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원리로 작동한다.

 

여백은 쉼표처럼 기능하고, 감정은 점층적으로 고조되며, 문장은 아리아처럼 상승과 정지를 반복한다.

 

이 리듬은 감정의 흐름을 통제하기보다는, 감정이 스스로의 호흡을 갖도록 허용한다.

 

특히 최근작 <2021년, 고려장〉은
손영미 시학이 도달한 깊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요양원이라는 공간, “이 선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라는 간호사의 문장, 돌아서는 순간 겹쳐지는 까마귀 떼의 이미지까지. 이 시에서 슬픔은 개인의 죄책감이나 윤리적 고뇌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돌봄과 이별이 제도화된 현대 사회의 구조적 폭력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확장된다. 여기서 ‘고려장’은 은유이자 사회적 질문이다.

 

떠남은 선택이 아니라 규칙이 되고, 슬픔은 사건이 아니라 구조 그 자체로 드러난다. 언어는 이 구조를 고발하기보다, 그 구조 속에서 발생한다.

 

또 다른 시 <편〉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독자의 정서에 접근한다. 어머니의 유품 속 수첩에 적힌 문장…
“딸아, 네 잘못이 아니다. 언제나 난 네 편이다.”

 

이 문장은 ‘편’이라는 단어를 단순한 관계의 지시어에서 존재론적 중심으로 끌어올린다. 편은 방향이며 기준이고, 끝내 사라지지 않는 사랑의 증거다. 손영미는 가장 사적인 기억 하나를 통해 ‘누군가의 편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삶을 지탱하는 마지막 구조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편의 냄새를 맡는다”는 표현은 추상어를 감각의 차원으로 이동시키며, 기억을 사유가 아닌 몸의 기록으로 환원한다.

 

『자클린의 눈물』에서 몸은 가장 오래된 기록자다. 상처, 숨, 떨리는 목소리는 기억의 저장 장치가 되고, 일상의 사물들은 감정을 장식하지 않으며 오히려 감정을 해부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이 시집의 언어는 고통을 미화하지 않고, 슬픔을 절망의 종착지로 고정하지 않는다.

 

대신 슬픔이 언어로 변환되는 과정 자체를 견인한다.

 

이 시집이 한국 현대시에서 의미를 갖는 이유는 분명하다. 손영미는 슬픔을 끝으로 두지 않는다. 그는 슬픔이 언어로 다시 태어나는 자리를 끝까지 밀고 간다. 『자클린의 눈물』은 한 개인의 고통을 넘어, 슬픔 이후에도 말할 수 있는 언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시집이다. 그것은 고백의 기록이자, 동시에 한국 현대시에 새로운 사유의 리듬을 제시하는 성과다.

 

 

작품 인용

 

〈2021년, 고려장〉 중에서
손영미

 

오늘 나는 고려장을 하고 돌아왔다

 

이건 고려장이 아니야, 되뇌었지만
마음속 무거운 돌은 어쩔 수 없다

 

요양원 창밖으로 자줏빛 노을이 배경으로 깔렸다
텅 빈 들판이 결핍을 부추겼고
더 깊게 우는 법을 전했다

환자는 더 이상 이 선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간호사가 배웅을 막았다

 

떨리는 손을 놓고 내가 먼저 돌아섰다
등 뒤에선 뜨거운 비가 하염없이 내렸다

 

〈편〉
손영미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내 편이 하나만 사라진 줄 알았는데
완벽한 고아가 되고 보니
사방에 내 편이 없다

딸아, 네 잘못이 아니다
언제나 난 네 편이다

사라지지 않는 중심은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