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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 오늘의 시] 눈물

손영미 시인의 시집 '자클린의 눈물'에 영감을 받아 쓴 시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눈물

 

 

나는 몰랐네
내 안에 있는 너를 몰랐네
눈 감은듯 잠자는듯 그 한 방울의
촉촉한 너를

 

비온 후 무지개를 보았을 때
저것봐, 저것봐, 내 몸을 흔들던 너

 

갈대처럼 아파도 아파도
울지 않으려 입술 깨물던
착한 이슬의 눈동자 너

 

살다보면, 살아 가노라면
통곡의 밤도, 벅찬 기쁨의 날도 있으리
그때마다 가슴속 깊은 샘이 되어
쿵쿵, 등을 두드려주던 너

 

거짓없는 동행자여
진실의 기도문이여

 

들풀을 스치는 바람처럼
내 안에서 흐느끼며
나를 깨우는 새벽의 노래
불러도 불러도 마르지 않을
내 가슴의 노래여, 영혼의 노래여~

 

〈눈물〉 詩評

 

내면의 발견 — “눈물”의 실체화

 

시의 첫머리에서 화자는 ‘나는 몰랐네 / 내 안에 있는 너를 몰랐네’라고 고백합니다. 이미 인간 내면에 존재하면서도 오래도록 간과되거나 외면받았던 정서를, ‘너’라는 인격적 대상화로 불러내며 시가 시작됩니다.

 

이 ‘너’는 단순한 생리적 분비물로서의 눈물이 아니라, 감정의 원형(Archetype) 혹은 인간의 영적 감수성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눈물은 ‘잠자는 듯’, ‘한 방울의 촉촉한 너’ 라는 표현으로 은밀하고도 생명성을 지닌 살아있는 개체로 묘사됩니다. 이는 파스칼이 말한 “인간 내면의 깊은 우물”을 연상시키며, 눈물이 내면의 각성 장치이자 정서의 원형임을 은유합니다.

 

자연 이미지와의 대응 — 눈물과 바람, 비, 무지개의 상관

 

‘비온 후 무지개’, ‘갈대’, ‘이슬’, ‘들풀’, ‘바람’ 등 자연적 소재들이 눈물과 공명하며 전체 시의 시적 밀도를 구성합니다.

 

비와 눈물: 정화(淨化)의 상징
무지개: 고난 후 찾아오는 희망
갈대: 고통 속 흔들리는 인간 존재
이슬: 작고 맑은 진실의 결정
바람: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내면의 소리

 

시인은 눈물을 자연의 생명 순환 속 한 요소로 배치합니다. 그리하여 눈물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삶 전체를 통과하는 보편적 증명이 됩니다.

 

고통을 견딘 존재로서의 눈물

 

“갈대처럼 아파도 아파도
울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던
착한 이슬의 눈동자 너”

 

이 대목은 인간이 슬픔을 억누르며 살아온 시간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눈물은 억압된 감정의 순수함, 혹은 “울고 싶어도 울지 못했던 의지의 흔적”으로 재정의됩니다. '착한 이슬의 눈동자’라는 표현은 눈물이 가진 도덕성과 영혼의 정결함을 암시합니다. 고통 속에서조차 부정과 왜곡으로 흐르지 않는 진정성의 결정체가 여기 있습니다.

 

생의 순간마다 드러나는 진실의 친구

 

“살다보면, 살아가노라면 통곡의 밤도, 벅찬 기쁨의 날도 있으리” 눈물은 기쁨과 슬픔, 절망과 환희의 양극을 모두 통과하는 영적 존재입니다. ‘가슴속 깊은 샘’이라는 표현은눈물이 단절되지 않는 영적인 수원이며,삶의 부침 속에서 끊임없이 인간을 일으켜 세운 원천임을 드러냅니다.그러니 눈물은 약함이 아니라, 결국 인간을 버티게 하는 강한 힘입니다.

 

눈물의 윤리적 성격 — ‘진실’과 ‘기도문’

 

“거짓없는 동행자여, 진실의 기도문이여”이 구절이 시의 미학적 핵심입니다. 눈물은 단순한 감정의 배출이 아니라, 내면에서 울리는 윤리적 언어입니다.

 

거짓이 배제된 감정의 증언
기도처럼 순수하고 간절한 영혼의 고백
인간이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

 

눈물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자기 존재의 깊은 근원을 마주합니다.

 

새벽의 은유 — 눈물과 각성

 

“내 안에서 흐느끼며
나를 깨우는 새벽의 노래”

 

새벽은 밤을 넘은 뒤의 깨달음, 희망의 서광, 새로움의 시작을 상징합니다. 이 새벽을 부르는 것은 눈물입니다.

고통과 절망을 통과한 자에게 주어지는 숙명적인 깨달음, 그 순간이 눈물을 통해 가능해진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결말 — 영혼의 노래로 남은 눈물

 

“불러도 불러도 마르지 않을
내 영혼의 노래여~”

 

마지막 문장은 시 전체를 구현하는 아름다운 결론입니다.

 

눈물은 더 이상 비극의 흔적이 아니라 영혼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존재의 음악입니다.

여기서 눈물은 생의 증언,영혼의 진동,인간됨의 최종 가치로 승화됩니다.

눈물은 사라지지 않는 노래이고, 그 노래는 우리 삶을 계속 움직이는 힘입니다.

 

<종합 평가>

 

이 시는 눈물을 '약함'이 아닌 존재의 정직함과 생의 증거로 바라보는 작품입니다. 형식적으로는 서정적이면서도 간결한 언어를 견지하고, 내용적으로는 자연 이미지와 인간의 영혼을 정교하게 병치하여 매우 높은 상징적 밀도를 보여줍니다.

 

특히 인칭 전환 없이 ‘너’라는 존재를 시종 일관하게 눈물에 부여함으로써 눈물이 지닌 '인격적 정령(Spirit)'의 느낌을 형성합니다.고통과 기쁨을 모두 지나온 눈물은 결국 인간의 가장 순수한 ‘본심(本心)’으로 귀결됩니다.

 

우리는 눈물을 통해 비로소 인간이 된다. 이 작품은 그 사실을 조용하면서도 단단하게 선언하고 있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