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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유경 리뷰] 마드리드에서 피어난 한국 오페라의 정수, 임준희의 『천생연분』

K-Classic News 노유경 평론가 기자 

[노유경 리뷰]

마드리드에서 피어난 한국 오페라의 정수, 임준희의 『천생연분』

  • 2025년 5월 18일 19:30
  • 테아트로 모누멘탈, 마드리드, 스페인
  • 작곡: 임준희
  • 국립오페라단 단장 겸 예술감독: 최상호, 지휘: 차웅, 합창지휘: 임재식 (스페인 밀레니엄 합창단, 스페인 밀레니엄 오케스트라
  • 서향 (Sop.오예은), 몽완 (Ten.유신희), 이쁜이 (Sop.김효주), 서동 (Bar.정제학), 맹진사 (Bass.윤희섭), 맹부인 (M.Sop.김세린), 김판서 (Bar.김원), 이방 (Ten.강도호)

 

 

국립오페라단은 한국의 오페라 문화를 이끌며,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 실천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미학적 지평을 열어온 대표적인 대한민국 단체다. 단장 겸 예술감독 최상호는 국립오페라단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한국 오페라의 세계화를 주도해온 인물이다. 그가 지휘한 무대는 늘 시대와 호흡하면서도 한국적 정체성을 놓치지 않는 해석으로, 국내외에서 두터운 신뢰를 얻고 있다. 2024년 유럽 무대에서 주목을 받은 이영조의 『처용』에 이어, 2025년에는 국립오페라단이 작곡가 임준희의 『천생연분』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에 진출했다. 특히 이번 공연은 한국과 스페인의 수교 75주년을 기념하는 외교문화행사의 일환으로, 그 외연을 예술로 확장시킨 사건이라 평가할 수 있다. 공연은 스페인 국영방송 RTVE 오케스트라의 전용 극장이자 명망 있는 공연장인 테아트로 모누멘탈에서 개최되었고, 국립오페라단이 올해 유일하게 해외에서 선보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천생연분』은 오영진의 1943년 희곡 『맹진사댁 경사』를 원작으로 하며, 이상우의 대본을 바탕으로 2006년 3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극장에서 국립오페라단에 의해 초연된 이후, 싱가포르, 홍콩, 도쿄 등지에서 공연되었다. 그 과정에서 대본과 음악은 수차례의 개작과 다듬음을 거치며 마치 원석을 다이아몬드로 세공하듯 정교하게 발전해왔다. 젊은세대의 자유의지를 강조하고 신분을 넘어서는 사랑과 도전 정신을 전면에 내세운 이 작품은, 특히 2014년 수정본에 이르러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다채롭게 담아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총 3막 8장40곡으로 구성된 이 버전에서는 해학적인 측면이 한층 부각되었고,이번 마드리드 공연은 일곱 번째 해외 투어 무대로 기록되며, 한국적 서사를 현대 오페라 언어로 번안해낸 이 작품의 지속적 생명력을 입증했다.

 

2025년 5월 18일 저녁, 마드리드 테아트로 모누멘탈은 공연 시작 전부터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객석은 일찌감치 만석이 되었다. 이날 공연에는 작곡가 임준희가 직접 참석해 무대예술팀 하동욱 팀장과 함께 무대의 미학적 완성도를 확인했고, 지휘자 차웅의 절제된 리더십 아래 밀레니엄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이끌었다. 밀레니엄 합창단은 1999년 임재식 단장에 의해 창단된 성악 앙상블에서 출발해, 현재는 스페인 전역의 유능한 성악가들로 구성된 전문 합창단으로 성장하였다. 이들은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여러 차례 무대에 오른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무대에서도 안정적이면서도 힘있는 음악을 선보였다.

 

 

공연에는 임수석 주스페인 대한민국 대사 내외와 신재광 주스페인 한국문화원원장을 포함해 문화 외교를 담당하는 양국의 고위 공무원들과 현지 문화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였다. 『천생연분』이 단지 무대 예술로서의 의미를 넘어서, 양국 간 외교적 상징성과 문화적파트너십을 공고히 하는 행사였음을 방증한다. 이는 곧 오페라라는 장르가 예술과 외교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공공성을 창출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천생연분』은 한국 내에서도 이미 수차례 공연되며 호평을 받은 바 있으며, 전통적 소재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음악적 구성과 서사의 깊이로 인해 문화적 상징성과 예술적 완성도를 동시에 획득한 작품이다. 특히 이번 마드리드 공연은, 서사의 민속성과 음악의 현대성이 어우러진 이 작품이 한국을 넘어 국제사회에 어떤 예술적 화두를 던질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자리였다. 이 무대는 한국 현대 오페라가 국제적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음을 강하게 각인시켰다.

 

특히 과거 여섯 차례의 해외 공연에서는 한국 전통악기와 서양 악기가 어우러진 편성이 유지되었고, 이는 단지 음향적 조화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한국적 정서의 중심에서 전통악기는 서사와 감정의 축을 이루었고, 그 존재만으로도 이 작품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증언했다. 그러나 이번 마드리드 공연에서는 전통악기를 과감히 배제하고, 오롯이 서양 악기로만 편곡된 새로운 악보가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그 변화의 의미는 각별하다. 유일하게 꽹과리 하나만이 타악기 군 속에서 한국적 여운을 암시적으로 남겼고, 그 미세한 흔들림이 오히려 더욱 절묘한 정서를 자아냈다. 이것은 단순한 악기 구성의 변화가 아니다. 『천생연분』은 이제, 세계 어디서든 연주될 준비가 된 오페라가 되었다. 특정한 문화권에만 국한되지 않고, 보편의 무대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악보 자체를 다듬고 개방한 시도였다. 어느 교향악단의 위촉이든, 이 버전으로 연주가 가능하리라는 예감은 단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오페라가 세계를 향해 내민 손이며, 그 손끝에 담긴 기다림이기도 하다.

 

 

마드리드에서의 공연은 오페라 전체의 서사와 인물 구성을 유지하면서도, 등장인물의 생동감과 극적 재미를 강조해 오페레타적 성격을 띠었고, 콘체르탄테 형식의 세미스테이지드 오페라로 연주되었다. 이는 예산과 무대 제작 여건상 음악 중심의 형식을 택한 현실적인 선택이었으나, 단순한 타협이 아닌 역전의 발상으로, 오히려 작품의 본질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예술적 선택이었다. 콘체르탄테라 함은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중심이 되는것이 당연하지만, 이번 공연 후 인물들의 의상과 연기의 인상이 워낙 강렬해 그 흐름이 반전되었다. 이는 비주얼과 음악의 이중 구조가 서로를 자극하며 이루어낸 긴장감이었다.그러나 오케스트라와 합창의 밀도와 에너지는 오히려 전면에 더욱 강하게 드러났다. 차웅 지휘자는 외국인 연주자들을 섬세하고도 단호하게 통솔하며, 마치 교향시처럼 사람과자연, 인간과 운명의 관계를 그려내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그의 지휘 아래 이 오페라는 단순한 음악극을 넘어, 청각으로 듣는 문학이자 회화가 되었다.

 

스페인 출신으로 구성된 밀레니엄 합창단이 한국어 가사를 정확하게 발음하고, 한국인의 정서를 표현해 내는 능력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눈을 감으면 한국 성악가로 착각할 만큼의 발성과 억양은 단순한 언어 학습을 넘어, 곡의 맥락과 정서를 몸에 익힌 결과였다. 이러한 성취는 단연코 임재식 단장의 오랜 연습 지도와 예술적 통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곡은 몽환적인 글로켄슈필의 투명한 소리와 함께 경쾌한 박자 위를 미끄러지며, 관객은 곧 유쾌하고도 기이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어리어차’의 가사 처럼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프롤로그와 대비를 이루는 합창의 도입부는 서곡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맹진사(윤희섭)의 노련한 표정 연기와 전 이방(강도호)의 익살맞은 등장, 그리고 서향(오예은)이 자신의 이상을 꿈꾸는 아리아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 아리아는 미분음의 정서와 현악의 투티가 절묘하게 섞여 있으며, 이어 등장하는 이쁜이(김효주)와의 대화에서는 “시집 가고 싶어!” 두 소녀가 신분을 넘어서 마치 여고생처럼 미래를 이야기한다. 이쁜이는 생기발랄한 움직임과 청아한 목소리로 이 장면에 빛을 더했고, 서향 역할의 오예은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섬세한 내면을 맑은 음색으로 그려냈다.

 

이색적인 화성과 선율은 마치 아라비아의 타크심(taqsim)이나 마깜(Maqam)을 연상시키며, 무대를 이국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물들인다. 그 정서가 절정에 다다르는 순간, 청나라 유학을 다녀온 인물인 몽환이(유신희) 등장하고, 그의 등장과 함께 울려 퍼지는 우드블록의 리듬은 공기를 압도하며 장면 전화의 강렬할 전조를 이룬다. 몽환 역의 유신희는 신비롭고 유려한 발성으로 캐릭터의 독특한 결을 완성했다. 이어지는 맹진사 부인의(김세린) 아리아는 한국 민요의 타령조를 절묘하게 변주하며 모성의 감정과 유머를 자연스럽게 조화시켜, 시대를 초월한 어머니의 형상을 무대에 구현했다. 아들을 향한 끝없는 애정과 관심으로 내내 몽환 곁을 맴도는 부인의 모습은 외국 관객들에게 다소 과장되거나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상 그것은 여전히 현재 한국사회 곳곳에서 목격되는 생생한 현실이다. 모성은 이 작품 안에서도 현재진행형의 감정이다. 이방(강도호)과 맹진사(윤희섭)의 대화가 끝난 직후 울려 퍼지는 맹진사의 그 유명한 "초시 초시" 노래는 그 순간을 기다린 관객들의 기대를 채워주었고, 1막을 마치는 합창은 바그너 『로엔그린』의 팡파레처럼 장엄하면서도 격정적으로 작품의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김판서 역의 김원은 품위 있는 음색으로 극의 권위를 살렸고, 서동(정제학)은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극에 안정감을 부여했다. 1막을 마무리하는 대합창은 바그너의 『로엔그린』에서 들려오는 제 3막 서곡의 팡파레처럼, 장중하면서도 벅차오르는 에너지로 극의 정점을 끌어올렸다. 김판서 역의 김원은 단정하고 깊이 있는 음색으로 극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표현했고, 서동 역의 정제학은 과장없이 절제된 감정선을 유지하며, 전체 극의 균형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주는 인물로 기능했다.

 

제2막에서 특히 인상적인 순간은, 오케스트라의 사운드가 점층적으로 쌓이며 마치 음이 한 계단씩 상승하는 듯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실제로는 전통적인 상승 음형은 아니지만, 청각적 인상은 점진적으로 고조되는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관객의 내면을 끌어올린다. 어느새 트럼펫의 음색은 태평소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울림으로 변모하고, 그것은 마치 단오날 씨름판에서 흥을 돋우는 악사의 연주처럼 다가온다. 이번 공연은 콘체르탄테 형식으로 진행되어 무대 위 무용이나 실제 장면은 생략되었지만, 음악은 그 빈자리를 기묘하게 채웠다. 형형색색의 옷자락이 휘날리고, 그네 뛰는 소녀들의 몸짓이 공중에 그려지는 듯한 환영이 음악의 기운 속에서 펼쳐졌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밀도 높게 구축한 이 청각적 세계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서 관객 각자의 상상력 속에서 장면을 복원하게 했다.   

 

 

이미 여섯 차례에 걸쳐 세계 각국에서 연주된 바 있는 한국 오페라 『천생연분』은, 이른바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으며, 이번 공연에서도 역시 듣는 이가 어느 순간 "영상회상"의 선율을 중얼거리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마치 숨은그림을 찾듯 드러나는 그 선율은 무대의 자연스러운 페이드인(F.I.) 역할을 하며 관객을 작품의 중심으로 부드럽게 끌어들인다. 작곡가 임준희는 혼례를 키워드로 음악을 구상하던 중 영산회상의 타령 선율을 차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전통음악 속에서 인지도가 높고, 단아한 이 멜로디는 민낯으로 등장하거나 은유적으로 변주되며 코믹한 장면 속에서도 웃음을 흘리지 않도록 유지하는 심상과, 명상적 분위기의 조율을 통해 동양적 시간성을 구현한다.

 

『천생연분』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두 커플이 전통적 혼례의 구조를 비껴가며 서로의 마음을 택하는 결정에 담긴 ‘자유의지’의 의미다. 서구적 맥락에서 자유의지는 억압에 맞서는 개별 주체의 해방 선언으로 이해되지만, 이 작품에서의 자유의지는 조선 시대 정서와 사회 구조 안에서 질서를 전복하기보다는 비껴가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당시 조선 사회는 유교적 윤리 질서 속에서 부모의 결정이 자식의 삶을 규정하고, 신분 역시 삶의 방향을 제한하는 강력한 틀로 작용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두 인물이 보여주는 선택은 단순히 부모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가 아니라, 관계와 구조 안에서 스스로의 삶을 조용히 재배치하는 주체적 움직임이다. 이것은 마치 정면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곁으로 한 발 비켜서며 새로운 길을 여는 동양적 자유의지의 구현이며, '거역'이 아니라 '주체적인 순응'이라는 절묘한 긴장 위에 놓인 자유다. 『천생연분』의 자유의지는 서양 철학, 특히 칸트가 말한 ‘자율적 이성에 기반한 도덕적 자유의지’와는 결을 달리한다. 칸트의 자유는 인간이 이성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본능과 외부 조건을 초월하여 스스로 도덕 법칙을 선택하는 능력에 기반하지만, 『천생연분』에서 드러나는 자유의지는 이성적 자율보다는 정서적 공감과 관계의 조율 속에서 드러나는 실천적 선택에 가깝다. 이 자유는 개인이 완전히 독립된 존재로서 사회적 맥락에서 벗어나기보다, 공동체와 전통을 인정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방향을 틀 수 있는 여백의 자유이며, 그 속에는 동양적 조화와 맥락성에 기초한 삶의 태도가 깃들어 있다. 이 지점을 두고 최상호 예술감독은 외국 관객들이 한국의 정서와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더라도, 왜 두 커플이 바뀌는지를 그 깊이까지는 명확히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그만큼 이 장면은 단순한 커플 교환이 아니라, 전통 질서 안에서 개인의 감정과 욕망이 조화롭게 스며드는, 한국적 자유의지의 절묘한 형상화이자 문화적 성찰의 순간이다.

 

무엇보다도 이 오페라에서 더불어 흥미로운 지점은, 두 커플이 보여주는 서사의 결이 분명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몽환(유신희)과 이쁜이(김효주)는 지역 공동체와 가족의 축복 속에서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는 반면, 서향(오예은)과 서동(정제학)은 익숙했던 삶의 자리에서 스스로를 분리시키고 낯선 미래로 발을 내딛는다. 이 커플의 듀엣은 단순한 사랑의 이중창이 아니고, 마치 사회의 부조리와 억압에 맞서 나란히 걷는 동지의 노래처럼 들려온다. 서향과 서동은 연인이기 전에 연대의 상징이며, 감정 이상의 결속으로 시대의 틈을 건너는 인물들 같다. 흔히 한국인의 정서에서 “천생연분”은 하늘이 정해준 짝, 즉 운명의 배필을 뜻하지만, (영어번역) ‘소울메이트’라는 개념은 그보다 더 깊은 층위—정서와 존재의 결이 닿아 있는 동반자—를 의미한다. 한국적 문맥에서는 이 둘을 다르게 받아들이지만, 『천생연분』 속에서 서향(오예은)과 서동(정제학)은 바로 이 두 개념의 경계를 허문다.

 

 

『천생연분』이 가진 또 하나의 묵직한 주제는 바로 ‘정체성’이다. 인간의 본성은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되고 싶어 하거나, 자신을 정중하게 감추고 싶은 순간을 품는다. 이는 유럽에서 유행했던 가면무도회(Masquerade)의 문화와도 통할 것이다. 오늘날의 익명성, SNS 프로필 꾸미기 역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천생연분』에서 펼쳐지는 신분 바꾸기와 정체의 혼동은 서양 오페라에서도 반복되어 온 오래된 테마다. 예컨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서 하인이 주인을 골탕 먹이며 권력 관계를 뒤집는 유쾌한 반전이 펼쳐지고, 『코지 판 투테』에서는 두 남자가 서로의 연인을 유혹하기 위해 자신을 모르는 외국인으로 위장한다. 이 신분 바꾸기는 『천생연분』과는 방식이 다르지만, 사랑을 시험하고 정체성을 유예하는 전략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두 모토가 연상된다. 그리고 바그너의 『로엔그린』에서는 자기 정체를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맺어지는 결혼이 신화적 운명과 연결되며, 엘자는 사랑과 의심 사이에서 갈등하고 결국 심리적·정체성적 신분 바꾸기를 경험하게 된다.

 

스페인 오페라 전통 속에서도 이러한 주제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마누엘 데 파야(Manuel de Falla)는 스페인 전통과 민속의 정수를 음악에 담아낸 국민 작곡가로, 그의 대표작 『단명한 삶(La vida breve)』은 집시 여성과 귀족 청년의 사랑이라는 계급 갈등을 배경으로, 정체성과 운명, 그리고 외면당한 사랑의 비극을 강렬하게 그려낸다. 이 작품은 1913년 니스에서 초연되었으며, 플라멩코 리듬과 자파테아도 같은 민속적 요소를 클래식 양식 안에 녹여낸 음악적 결합으로 스페인 국민주의 음악의 정수를 대표한다.

 

『천생연분』과 『단명한 삶』을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은 대조가 인상적이다. 『단명한 삶』은 안달루시아 집시 사회를 배경으로, 귀족 청년과의 관계 속에서 사회적 편견과 명예의식에 짓눌리는 여성의 비극을 그린다. 반면 『천생연분』은 조선 후기의 유교적 가족제도를 무대로 삼아, 전통을 비껴나 유쾌한 반전과 해학으로 신분의 경계를 넘는다. 파야는 정체성의 갈등을 사회의 부조리와 비극으로 그려내지만, 임준희는 정체성을 숨기고 뒤섞는 유희를 통해 공동체를 다시 엮는다. 한편 정체성 표현에 있어서도 두 작품은 확연히 다르다. 『단명한 삶』은 사랑 앞에서 무력해지는 개인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들고, 『천생연분』은 개인이 만들어가는 선택의 자유를 유쾌하고도 풍자적으로 펼쳐 보인다. 파야가 플라멩코와 자파테아도 같은 안달루시아 민속 양식을 음악적으로 녹여냈다면, 임준희는 영산회상 타령조나 괭과리의 리듬을 현대적인 음악어법 속에 절묘하게 배치하여 한국적 정서를 입체화시킨다. 두 작곡가 모두 전통을 정면에서 모방하지 않되, 그 전통이 품고 있는 정신과 감각을 각기 다른 문화적 언어로 해석해냈다는 점에서, 이 두 작품은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고전적 질문을 던지는 예술로 자리매김한다. 『천생연분』이 해학과 역전의 미학으로 사회적 구조를 비트는 반면, 『단명한 삶』은 집요한 리얼리즘과 비극적 결말을 통해 전통 사회의 모순을 드러낸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공동체 내부의 질서와 개인의 정체성이 충돌하는 순간을 조명하며, 민속적 정서와 음악의 리듬을 통해 서사와 정서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통하는 부분이 있다. 두 작품은 음악적 언어도, 문화적 정서도 다르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통 사회 속 개인의 위치와 감정을 조명하며 음악으로 정체성을 말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깊은 공명선을 이룬다.

 


 

『천생연분』을 마드리드 무대에서 본 관객들의 반응은, 단순히 “성공적이었다”는 표현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열광이라는 말조차 부족할 만큼의 에너지, 말 그대로 “대박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토록 강한 공명을 불러일으킨 것일까? 단지 음악이 아름다워서였을까? 완성도 높은 연주와 지휘, 짜임새 있는 구성은 물론 훌륭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정서적 반응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래서 스페인 오페라의 대표작 중 하나인 마누엘 데 파야의 『단명한 삶』과 비교하게 되었다. 겉보기에는 전혀 다른 시대, 배경, 문화, 언어를 가진 두 작품이지만, 어쩌면 그 차이 속에 숨어 있는 정체성의 흔들림, 공동체의 질서와 개인의 욕망이 충돌하는 순간들, 그리고 그것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방식에서 닮은 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비교는 우연한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왜 스페인 관객들이 이토록 『천생연분』에 몰입했는가? 문화가 다르고, 시대가 달라도, 인간의 본성과 삶의 갈등이 닿는 자리는 결국 하나의 선율로 연결될 수 있다.

 

결국 이 공연은, 웃음과 사유를 병치했던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의 예술 세계와도 깊은 친연성을 갖는다. 고야는 웃음의 이면에 감춰진 공포와 사회적 부조리를 끌어냈던 화가였고, 『천생연분』은 정반대로 부조리의 표면에서 웃음으로 넘어가는 희극적 전복을 통해 인간사의 온기를 담아냈다. 그런 점에서 이 공연은 단지 한국의 오페라가 스페인에 수출된 것이 아니라, 마드리드라는 도시와 문화, 역사와 감정의 결이 엮인 절묘한 예술적 협업이었다. 웃음 뒤에 삶을 담고, 삶 뒤에 예술을 품은 이 밤은, 고야가 꿈꾸던 또 다른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밤, 무대 위에서 한국어로 노래되는 오페라가 스페인어 자막과 함께 스페인 관객의 심장에 깊이 파고들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국제교류의 차원을 넘어선다. 한국의 전통과 현대가 결합된 이 복합적 예술이 외국 연주자들의 손끝과 발음, 감정과 숨결 속에서 되살아날 수 있었던 순간—그것은 감격 그 자체였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악보 위의 점 하나, 선율 한 마디로 세계가 연결된다는 것을 이 공연은 입증했다. 『천생연분』은 단지 한국인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이야기로 스페인의 무대 위에 피어올랐고, 관객들은 그 언어가 낯설지 않았다고, 그 감정이 자기 것이었다고 전 관객의 기립 박수로 응답했다. 관객들은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를 그렸으며, 누군가는"브라보!"를 넘어서 "그라시아스, 코레아!"를 외쳤다. 그 순간 극장은 더 이상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었다. 천장이 열리는 듯한 해방감, 국적을 잊은 감정의 폭발, 예술이 이룬 완전한 공감의 현장. 『천생연분』은 그 밤, 한국 오페라의 이름으로 마드리드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글: 노유경 Dr. Yookyung Nho-von Blumröder 

음악학박사, 쾰른대학교 출강, 해금앙상블(K-Yul) 음악감독 겸 단장, 독일/서울 거주, 

Ynhovon1@uni-koeln.de ,인스타그램: Hangulmanse, kyul-germany

*초고는 국립오페라단 공식 홈페이지에 처음 게재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