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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을 위해 태어난 오페라 부파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로시니는 19세기 전반의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

K-Classic News  최지형 연출가 |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L'italiana in Algeri)>은 안젤로 아넬리(Angelo Anelli)의 대본을 바탕으로 조아키노 로시니(Gioachino Rossini)가 작곡한 전 2막의 희극(dramma giocoso) 오페라이다. 당시 21세의 청년 로시니는 이미 1808년에 루이지 모스카(Luigi Mosca)에 의해 작곡된 바 있는 아넬리의 대본을 기초하여 이 오페라를 작곡하면서 대본의 부분적인 수정을 또다른 대본작가인 가에타노 로시(Gaetano Rossi)에게 의뢰하였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로시니가 이 오페라를 27일 만에 작곡했다고 하지만 정작 작곡가 자신은 18일 만에 완성했다고 주장할 만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작곡된 이 오페라는 1813년 5월 22일, 베네치아의 성 베네뎃토 극장(Teatro San Benedetto)에서 초연되었다. 

 

​대본 작가 안젤로 아넬리(Angelo Anelli)는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의 여성인 안토니엣타 프랍폴리(Antonietta Frapolli)가 1805년에 해적에게 납치되어 알제리의 태수 무스타파(Mustafà-ibn-Ibrahim)의 하렘에 끌려갔다가 몇 년 후에 이탈리아로 돌아온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이 오페라의 대본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북아프리카의 알제리는 당시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던 지역이었다. 일명 ‘바르바리 해적(Corsari barbareschi)’이라고 불리는 ‘이슬람 해적’들은 15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 서부지역을 거점으로 삼아서 지중해 전역에서 활동하였다. 바르바리 해적은 15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대략 80만 명에서 125만 명의 유럽인들을 납치하여 노예로 삼았다. 미모의 백인 여성 노예들은 대개 매우 비싼 값에 거래가 되었는데 이들 중에서는 술탄이나 태수 등의 총애를 받아 왕비와 같은 높은 지위에 올라간 경우도 있다고 한다. 

 

Nave francese attaccata da corsari barbareschi. Dipinto di Aert Anthonisz (1579-1620)

 

​당시 유럽인들은 오스만 제국을 총칭하여 흔히 ‘튀르키예’라고 일컬었는데 미지와 공포의 대상이었던 이들의 문화와 풍습은 중세 이후로부터 이미 수많은 문학 작품의 소재와 배경이 되었다. 이와 같은 이국적인 소재의 대표적인 오페라로서는 모차르트의 <후궁으로부터의 탈출(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과 로시니의 또다른 오페라 <이탈리아의 터키인(Il turco in Italia)>을 꼽을 수 있다.

 

로시니는 19세기 전반의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로시니는 평생동안 관현악곡이나 미사곡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을 많이 작곡하였지만 무엇보다도 <세빌리아의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1816)나 <신데렐라(La Cenerentola)>(1817) 등의 뛰어난 오페라 부파를 작곡한 오페라 작곡가로 유명하다. 14세부터 오페라를 작곡하기 시작하여 37세까지 23년간 무려 42곡의 오페라를 작곡한 로시니는 <윌리엄 텔(Guillaume Tell)>(1829)을 마지막으로 1868년, 76세에 파리 근교의 파씨(Passy)에서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39년간 단 한 곡의 오페라도 더 쓰지 않았다.

 

이렇게 로시니가 일찌감치 오페라 작곡을 그만둔 이유에 대하여는 당시 새롭게 밀려오는 낭만주의적인 취향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견해와 낙천적인 성격의 그가 고단한 오페라 작곡가의 일에 싫증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견해 등의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공교롭게도 37세에 작곡한 그의 마지막 오페라 <윌리엄 텔>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음악의 장점을 한꺼번에 갖춘 로시니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로시니는 오페라 작곡을 그만 둔 이후에도 기악곡, 관현악곡, 성악곡, 미사곡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계속 작곡하였으며 도니제티와 벨리니 등 이탈리아 출신의 후배 작곡가들이 파리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도록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주었다. 한편 자신이 개발한 요리법이 널리 소개될 정도로 로시니는 요리에 대한 굉장한 열정을 보이기도 하였다. 로시니는 사람들과 어울려 음식과 파티를 즐기며 파리 사교계의 유명인사로서 낙천적인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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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페라에는 요즘의 우리 정서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내용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서로 다른 두 문명의 충돌, 종교와 관습의 차이, 여성과 남성 간의 편견과 갈등 등의 이야깃거리들은 1800년대 초, 당시로서는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이국적이고 독특한 소재였을 수 있지만 지금에 와서는 다분히 진부하고 불편한 소재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로시니는 자신 특유의 낙천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이 심각한 이야기를 유쾌한 농담으로 풀어내었다. Un gioco(놀이)! 로시니의 오페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은 ‘오페라 부파’다. 오페라 부파는 즐거움(allegria)을 위해 태어난 ‘gioco(놀이)’이다.

 

​로시니의 음악에 매료되었던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Stendhal)은 이 오페라가 “오페라 부파와 세리아의 정서가 완벽하게 혼합된 작품”이며 “오페라 부파 양식의 완성”이라고 극찬하였다.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은 대성공을 거둔 초연 이래 지금까지 <세빌리아의 이발사>, <신데렐라> 등과 함께 전 세계의 오페라 극장에서 가장 사랑받는 로시니 오페라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