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평론가 |
박 홍 신부님의 장례식
입관(入棺) 날 아침에
떠나는 날
비가 오지 않게 하소서
세상과 작별하는 날
눈이 오지 않게 하소서
그대신 따뜻한 봄날
하롱하롱 꽃잎이나 떨어지게 하소서
그대신 곱디 고운 단풍이나 지게하소서
사람들이 울지 않게 하시고
이웃들이 잘살다 갔다는
덕담이나 하게 하소서
새들이 울어도 좋고
미루나무 까치 소리를
듣고 떠나는 아침
햇살이 막 천지에 고루 퍼졌으면 좋겠소
아닙니다
떠나는 날이 아침이든 저녁이든 밤이든
내가 기도한다고 되지 않을
신의 선택에 겸허하게 하소서
그보다는 언제 떠날지 모르는
출발선에서 항시 대기하는 자의 자세를 갖게 하소서
어제 한 친구가 떠났고
오늘도 밀물 썰물처럼 조석으로 바빠진
화장터의 체증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지 않게하소서
떠나기 전에 가 볼 곳과
만나야 할 사람과 갚아야 할 신세와 미처못한 사과와
아 ~! 그 보다는 먼저 가신 부모님께 감사를 잊지 않게 하소서
어머니가 지어주신 생업(生業)의 옷 벗고 이제 떠납니다
아버지가 가르치신 말씀 다 듣지 못함에 용서 빌며 떠납니다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보니
떠나는 날 비가 오던 눈이 오던 바람이 불던
이 말도 안되는 욕심부터 버리게 하소서
그저 살다간 흔적이라도 하나 남아
먼지가 되지 않게 하소서
그저 녹슨 표지판에 아침 이슬이 머물듯
뒤에 오는 사람들의 방향이 되고
쉼터가 되면 좋을 뭔가 하나 남기도록 기도하게 하소서
입관의 날, 그날 헨델의 팡파레
태평소와 함께 울리게 하소서
눈짓으로라도 인사하며 떠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