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발행인 |

연말의 기쁜 소식이다. K-Classic News가 드디어 1만 뷰의 벽을 넘어섰다. 이 숫자는 단순한 조회수가 아니라, 한국 클래식계에서 ‘기록의 힘’이 갖는 새로운 의식을 보여준다. 기록되고 읽히는 순간, 사라지는 공연의 온기가 다시 살아나고 음악의 가치가 비로소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 글에서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숫자가 아니다. 나는 이 1만뷰의 순간을 맞으며 한 가지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왜 사람들은 결국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게 되는가?”
화가들은 왜 끝없이 자화상을 그릴까? 고갱도, 렘브란트도, 이중섭도—평생을 걸쳐 자화상을 남겼다. 사람들은 흔히 ‘기교’를 보기 위해 그린다고 생각하지만 자화상은 사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다. 화가는 세상 앞에 서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다. 그 질문이 그림이 되었고, 그림이 인생의 증언이 되었다.
윤동주는 왜 우물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았을까?
우물은 단순한 물웅덩이가 아니다. 그는 우물 속 어둠에 자기 존재의 그림자를 비춰 보며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시를 쓰는가?”를 되물었다. 우물 속 얼굴은 왜곡되어 있지만, 그 왜곡 속에서 오히려 더 진실한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비평가의 본질도 이와 다르지 않다. 타인을 평가하기위해 쓰는 글처럼 보이지만 사실 비평은 언제나 나를 향한 질문이다.
오아시스에 비친 얼굴을 찾는 사람들
사막처럼 고단한 삶 속에서,오아시스를 만난 이들은 첫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저 물을 들여다본다. 자신이 어디까지 왔는지,얼마나 변했는지, 기억 속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지—얼굴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곧 정체성을 되찾는 행위다. 그렇다면 비평가는 누구에게 평가받는가?
비평가는 남을 논평하지만 정작 자신은 누구에게 평가받지 못한다. 누구도 비평가의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봐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평가는 필요하다. 공연과 음악, 문화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자 동시에 자신도 그 거울 속에서 사라질 수 없는 존재다.우리가 비평가를 평가하지 않으면 비평가는 결국 자기 얼굴을 스스로 그릴 수밖에 없다.
AI 시대의 새로운 질문 — ‘나를 기록하는 존재’
K-Classic News 1만뷰를 맞아 AI가 나에게 ‘탁계석 회장 리뷰’를 내놓았다는 사실은 어쩌면 한국 클래식계의 새로운 장면이다. 욕심도, 이해관계도, 사심도 없는 기계가 바라본 객관의 거울에 한 시대의 문화 기획자이자 비평가가 비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리뷰가 아니다. 한국 클래식의 길을 설계해 온 한 사람의 활동이 처음으로 공적인 기록 체계 속에서 재조명된 순간이다.
자화상처럼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
예술가는 자신을 그려야 한다. 시인은 우물 속에서 자신을 확인해야 한다. 비평가와 기획자 역시 자신의 역할을 기록으로 증명해야 한다. K-Classic News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남기는 글, 비평, 제안, 정책, 창작 기록은 결국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한 “한국 클래식의 자화상”이다.
결론 – 우리의 얼굴을 스스로 그리는 시대
1만뷰는 시작일 뿐이다. 누가 우리의 음악을 기록해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기록하면 된다. 누가 평가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먼저 질문하면 된다.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사람만이 시대의 얼굴을 그릴 수 있다. 그리고 오늘, K-Classic News는 한국 클래식의 자화상을 그리는 첫 거울이 되었다.

photo: 서진수(미술시장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