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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유경 리뷰] 쾰른-클레텐베르크 브루노 성당에서 부활절 오르간 음악회

최규미 오르간 연주

K-Classic News 노유경 평론가 기자 

[노유경 리뷰] 쾰른-클레텐베르크 브루노 성당에서 부활절 오르간 음악회

최규미 오르간 연주

 

2025년 5월 11일, 독일에서는 어머니의 날(Muttertag)이었다. 하늘은 그림처럼 맑았고, 거리는 가족 단위로 소풍을 나선 사람들로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쾰른 쉴츠-클레텐베르크에 위치한 가톨릭 성당 St. Bruno에서 열린 오르간 연주회는 고전부터 낭만에 이르는 유럽 오르간 음악의 흐름을 조망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이 연주회는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오르간 음악을 시대순으로 배치하여, 유럽 오르간 음악의 발전과 다양성을 조명하고자 했다. 각 곡은 해당 시대의 음악적 특징과 작곡가의 독창성을 반영하며, 청중에게 깊은 음악적 경험을 선사한다.

 

St. Bruno 성당은 쾰른 쉴츠-클레텐베르크 지역에 위치한 가톨릭 교회로, 1926년에 건축되었다. 이 성당은 쾰른 대주교였던 성 브루노(925–965)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으며,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고, 성 브루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오토 1세의 형제로, 쾰른의종교적 및 정치적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성당의 건축은 당시의 도시 주거 구조에 맞춰 설계되었으며, 외관은 주변 건물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독특한 종교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내부는 고요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제공하여, 음악 연주와 같은 문화 행사에 적합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시간과 영성을 넘나드는 네 개의 오르간 세계 — 최규미의 St. Bruno 연주회를 듣고

쾰른 쉴츠의 고요한 가톨릭 성당 St. Bruno. 하늘빛이 성당의 창을 관통하던 일요일 오후, 최규미는 16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오르간 음악 네 곡을 통해 하나의 시간적 여정을 그려냈다. Sweelinck에서 Bach에 이르는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시대 순 배열을 넘어, 각 작품의 영적 울림과 기법적 정수를 통찰력 있게 엮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시간을 잇는 숨결 – 브루노 성당에서 들은 오르간 음악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이른 오후의 맑은 햇살과는 대조적으로 오르간 소리는 깊고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네덜란드 르네상스 후기에 활동한 스벨링크의 〈Unter der Linden grüne〉로 시작된 연주는 곧 한 편의 느린 여행처럼 이어졌다. 이 선율변주곡은 민속 선율의 단순함을 출발점으로 삼되, 점차 대위법적 치밀함과 유희성이 겹겹이 얽히는 구조를 지닌 작품이다. 연주는 이 점을 섬세하게 살려내며, 각 변주의 전환을 무리 없이 이어가 그 시대 음악이 가진 '단정한 고전성'과 '조용한 장식성'을 담담히 드러냈다. 다만 몇몇 변주에서 장식음의 리듬이 살짝 흐려지며 선율의 윤곽이 모호해지는 순간도 있었으나, 전반적으로는 시대의 미감을 충실히 되살리는 해석이었다.

 

이어서 연주된 안토니 판 노르트의 〈Psalm 24〉는 종교개혁 이후 네덜란드 칼빈주의 전통 속에서 발전한 시편 오르간 음악의 한 예로, 단순한 멜로디 위에 정제된 대위법이 쌓이는 구조를 지닌다. 반복되는 시편 선율이 형성하는 기도적 흐름 속에서 느린 긴장감이 유지되었으며, 저음의 공명은 브루노 성당 특유의 잔향과 어우러져 공간을 하나의 울림체로 바꾸었다. 초반부는 약간 조심스럽게 시작된 감이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템포와 호흡이 점차 안정을 찾아가며 종교적 엄숙함을 잘 전달했다.

 

세 번째로 연주된 작품은 프랑스 작곡가 보엘리의 〈12 Pièces pour Orgue, Op. 18〉 중 다섯 곡이었다. 이 곡들은 고전주의의 형식미와 낭만주의의 감수성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작품들로, 정형성과 유연함 사이에서 음악적 색채를 풍성하게 펼쳐 보인다. 연주는 각 곡의 캐릭터를 비교적 분명하게 구분하며, 특히 Fantasie et Fugue에서는 형식 안에서의 자유와 긴장감이 인상 깊게 전달되었다. 다만 Andante con moto나 Allegretto처럼 빠르면서도 명료한 성격을 지닌 곡들에서는 음색의 대비가 좀 더 확연했더라면 경쾌함이 한층 살아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깔끔하고 안정감 있는 흐름으로 낭만 이전의 프랑스 오르간 음악이 지닌 고전적 미덕을 잘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곡은 바흐의 〈Fantasie und Fuge g-Moll, BWV 542〉. 복잡하게 얽힌 감정의 곡선과 대위법적 구성이 극대화된 이 작품은, 구조의 완성도와 표현의 격렬함이 동시에 요구되는 바로크 오르간 음악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자유로운 형식의 판타지아는 장식적이면서도 명상적인 선율 흐름 속에 예기치 않은 전환을 담고 있고, 이어지는 푸가는 대위법적 밀도가 높은 곡으로 연주자의 집중력과 지구력을 요구한다. 성당의 잔향은 저음을 더욱 깊고 넓게 퍼뜨렸으며, 연주는 이 공간성과 작곡가의 치밀한 설계를 함께 감싸 안으며 마무리되었다. 일부 디미누엔도 구간에서는 울림이 다소 묻히는 듯한 느낌이 있었으나, 전반적으로는 이 대곡의 구조적 긴장과 해방을 설득력 있게 이끌어낸 해석이었다.

 

네 곡은 각각 다른 시대와 지역에서 태어났지만, 모두 종교적 공간을 위한 음악이라는 공통의 뿌리를 갖고 있다. 형식은 다르되, ‘믿음’이라는 정서적 바탕은 한결같이 흐르며, 공간과 시간을 넘어 오늘의 청중에게 다가왔다. 특별한 계획 없이 들어선 성당에서 우연히 듣게 된 이 오르간 연주는, 한국인 연주자의 (최규미) 손끝을 통해 유럽 음악의 깊은 호흡을 다시 한 번 체험하는 뜻깊은 순간이었다.

 

글: 노유경 Dr. Yookyung Nho-von Blumröder, 음악학박사, 쾰른대학교 출강, 해금앙상블(K-Yul) 음악감독 겸 단장, 독일/서울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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