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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칼럼] 나의 샘, 나의 텃밭 만들기 콘서트

어느 길이 생존의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K-Classic News 탁계석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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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야 한다 

 

축구선수 아니 모든 선수는 운동장에서 뛸 때가 가장 존재감이다. 연주가도 그렇다. 국가대표나 프로팀은 항시 경기가 주어지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민간단체에 소속이 되거나 아니면 스스로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영 쉽지 않다. 대게의 공연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손해를 보기 때문에 기획을 꺼린다. 자기 독창회, 독주회를 도와 준 기획사는 많지만 개런티 준다며 부르는 경우는 얼마나 있던가?  거의 없을 것이다.  표가 팔리는 기준으로 연주가를 초청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개런티 초청만 기다리다간 사기(士氣)가 떨어지고 연주력도 하락한다. 버스킹으로 개척하는 경우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문화는 아직 아니지 않은가.

 

시간이 멈추지 않듯 연주가 역시 멈추면 기량이 떨어지고 만다. 그래서 ‘목마른 사람이 샘’ 판다는 속담처럼 자기가 개척해야 한다. 설 땅이 없다면 황무지를 개간해서 텃밭이라도 만들겠다는 각오의 정신이 필요하다.

 

유명세는 아니어도 노출도가 많아야 초청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군가 길을 내어주면 그 길에 감사하고 순응하면서 힘을 길러야 한다. 자기 위치를 재점검하고 저울에 무게를 달아 보는 객관성이 절대 필요하지 않겠는가. 

 

최선의 무대가 있을 뿐이다. 

 

기다리는 것보다 무조건 뛰는 게 백번 낫다. 운동성이 살아 있어야 자기를 유지하고 성장할 수 있다. 좋은 무대란 없다. 최선의 무대가 있을 뿐이다. 그런 정신으로 탄력적인 활동을 하다보면 우선 자신감이 붙고 기회도 는다.

 

배가 정박해 있으면 가장 안전하지만, 배의 목표가 아니다. 연주도 마냥 기다리기 보다는 뛰면서 초청과 셀프 연주를 병행해야 한다. 이런 유연성이 없이 연주가 없다면 자기를 죽이는 것이고 세월을 낭비하는 것이다. 평론가가 원고료 받고 글 쓰는 경우는 일년이 몇 건이나 될까? 그렇다고 글을 쓰지 않으면 존재감 마저 사라진다.

 

출항이다. 파도가 있으면 헤처 나가고, 이런게 노하우가 되어서 더 넓은 바다, 더 강한 경쟁력을 확보한다. 좀 깊이 생각해 보시라. 자존심의 돗대만 높으면 바람이 거세면 배가 뒤집어 진다. 온실에서 자란 화초가 아니라 야생화의 기질이어야 자기 뿌리를 내린다.

 

‘나의 샘 파기, 나의 텃밭 만들기 연주' 에 공감하는 이들을 위해 힘들게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만든 것이다. 최선이 아니라 최악의 순간 전에 비상탈출구다. ‘우물쭈물하다가 나 이럴 줄 알았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엄중한 코로나정국. 체면가리다 굶어 죽고, 죽을 힘 다해서 딴 콩쿠르 매달도 사라진다. 열린 마인드 , 자신이 문을 닫기도 하고 열기도 한다. 선택의 키(Key)는 당신 손에 있지 않은가? 

 

기존의 재연에서 창작 연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는 여근하 바이올리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