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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섭 한국현대시 100선] 풀 - 김수영

A Better Me
시를 읽으면 상처도 꽃이됩니다
욕망과 상처를 그리기

K-Classic News   평론가 원종섭  |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김수영 1968 <현대문학> 

 

 

 

 

 

 

 

 

 

 

김수영의 풀은 그렇게 푸르고 가녀리고 아름답습니다

 

 

 

 

문체는 정신의 표현입니다

 

 

 

 

평범함이 위대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시인이 지상에서 쓴 마지막  詩 입니다

 

 

 

1968년 5월29일, 그러니까 시인이 숨을 거두기 꼭 20일 전에 쓰인 이 시편은 김수영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현대문학> 8월호에 유고로 발표되었습니다.

 

 

 

 

‘풀’은 김수영 시의 극점이자 귀결점으로

우리 앞에 선명합니다

 

 

 

 

소리 내어 읽어보면 반복과 대구와 점층을 통해 특유의 리듬감을 성취하고 있습니다

 

 

 

 

풀과 바람, 그리고 여러 동사들의 반복과 대구와 점층은 이 작품을

단순하지만 여러 겹을 두른 한 편의 음악입니다

 

 

 

 리듬을 육체화하면서 풀은 눕고 일어서고 울고 웃고

 흐린 날에 풀이 눕고 울고 일어나고 울고 웃고 궁극에는 눕고

 

 

 

어떤 질서가 항구적으로 순환하는 듯한

느낌까지 거느립니디다

 

 

 

 

‘풀’과 ‘바람’의 관계를 생각해봅니다

 

 

 

바람을 억압의 힘으로 보고 풀을 억압에 저항하는 민초의 강인한 힘으로 간주하는, 말하자면 풀과 바람을 적대적 대립 관계로 상정하는 알레고리적 해석은 이제는 가끔 종적을 감추기도 합니다.

 

 

 

 

정작 시 안에서 풀과 바람은 어떻게 만나고

어떤 관계를 구축해갈까요

 

 

 

 

 

풀이지만  바람의 시이기도 합니다

 

 

곡풍방월 굽은 바람과 네모난 달이 뜬다 하여도

 

 

 

바람은 그의 시를 끝없이 관통하면서

세계를 개진해가는 근원적 힘입니다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풀 위에 그 바람이 있으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

 

 이제 풀은 바람의 흐름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의 스케일과 속도와 존재방식을 얻어가는 과정적 존재로서의 자율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제 나는 광야에 드러누워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이 시 풀은 ‘민중들의 끈질긴 생명력’이라는 주제로 귀납되는 수렴형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산문적 언어로 번안되지 않는

거대한 생명의 원리와 질서를 노래합니다

 

 

 

 그렇게 모든 사물은 대립 관계가 아니라

상응과 친화의 관계에서 서로를 존재하게 한다는 것을

우리의 시인 김수영은 암시하고 수납합니다

 

 

 

 

바람은 그러한 우주의 운동을 물질화한

가장 성스러운 기운의 기표일 것입니다

 

 

 

 

이 작품이 가진 특유의 내구성과 확장성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됩니다

 

 

 

 

 

아직도 이 작품은 다양한 해석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의미론적 다면체이자, 의미보다는 탈(脫)의미를 욕망하는 음악 자체로서 끊임없이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해갑니다

 

 

 

서투른 솜씨로 인해 발생하는조악한 난해성과는

다른 해석의 어려움은 바로 이러한 연유 때문에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민중의 생명력을 예찬하고 

 

 

 

민중은 '민초'라고도 합니다. '초草'가 바로 풀이지요. 풀이 민중을 상징하는 데 제격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풀은 화초처럼 거름을 주며 비옥한 땅에서 귀하게 키우는 것이 아니라거친 들판에서 자생적으로 번식합니다

 

 

 '풀'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요?

 

'풀'은 민중의 어떤 모습과 닮았나요?

 

 

척박한 삶의 환경에서 꾸민 데가 없이 수수하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것이 우선 비슷합니다

풀은 흔해하지만 모든 생명의 원천입니다. 원형은 미래를 개척할 무한의 재료입니다. 풀이 나지 않는 땅은 죽은 땅이 되지요. 인간이 이룩하는 모든 역사도 몇 사람의 위대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모진 삶을 견디고 사회를 만들어 가는 민중의 힘이라는 것을 생각할수록 이 시의 평범함이 위대함을 드러내는 가장 적절한 방법입니다

 

 

 

바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풀뿌리가 눕는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생각 넓히기

 

정희성은 「답청」에서 풀을 밟으면 밟을수록 푸르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풀은 시련을 겪을수록 오히려 강인해지는 민중의 속성과 닮았습니다.   무쇠를 불에 달구어 두드리면의 성질이 강해지는 것과도 같은 원리입니다. 최두석의 '성에꽃」에서 '엄동 혹한일수록 의지히 '성에꽃'이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의미일 것이며, 김남조의 생명에서 '세 개의 종몸으로 온다 / 벌거벗고 언 땅에 꽂혀 자라는 / 초록의 겨울 보리'의 모습도 '의 모습으로 우니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더냐바람아 먼지야 풀아 난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김수영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中

 

 

 

 

 

김수영

 

 

1921.  대한민국 시인.  서울에서 지주의 장남으로 태어나, 1968년 6월 16일 사망하였다. 김수영이 태어날 무렵부터 집안이 기울긴 했지만, 유년을 비교적 유복하게 보냈다. 김수영의 백부 김태흥에게 아들이 없었기에 집안의 장손이나 다름없었던지라 김수영은 온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랐다. 그는 유치원과 서당을 거쳐   고등학교 무렵에는 시인 오스카와일드의 작품들을 외워 읽을만큼 영어 실력이 유창했다고 한다.

 

 194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 창작을 시작하였다. 이후 연희전문학교 영문과 4학년에 편입하여 잠시 수학했으나 중퇴하였으며, 1946년 예술부락에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후 김경린, 박인환과 함께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다.

 


1950년대 문단에서 김수영은 ‘노랭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누구랄 것도 없이 가난하게 살던 당시의 문인들은 원고료를 받으면 집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동료들의 막걸리 값으로 풀어야 했다. 그것이 1950년대 한국 문단의 미풍양속이고 관습이었다. 따라서 원고료를 안주머니에 챙겨 꼬박꼬박 집에 갖다 주는 김수영의 행위는 이런 관례를 깨뜨려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시·시론·시평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후진성과 허위 의식을 비판하고 진정한 참여를 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성격의 글들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김수영의 자조적인 성향과 특유의 강렬한 시적 표현은 결과론적으로 독특한 시 세계를 형성하였고, 훗날 수능 단골이 되는 계기가 된다.

 


그토록 왕성한 활동을 벌이던 김수영은 문우들과 가졌던 술자리에서 귀가하던 중 가로등이 없는 어두운 길에서 시인을 발견하지 못한 버스에 치였다.   “어두운 시대의 위대한 증인을 잃었다”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사이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 김수영 「폭포」

 

 

 

 

1959년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간행했다. 유고 시선집인 『거대한 뿌리』(1974)와 산문 선집 『시여, 침을 뱉어라』(1975)가 있고, 시와 산문을 모은 전 2권의 『김수영 전집』(1981, 개정판 2003)이 간행되었다. 

Healing Poem  redfox0579@naver.com

 

 

 

 

 

 

 

 

 

 

 

 

 

이 변덕스러운 세상에

문학을 통해 우리는 경계를 넘었습니다

 

문체로 정신의 표정을 짓는 일은 타고난 재능에다가 피나는 노력이 뒷바침 되어야 가능하겠지요

 

 

 

우리는 살고자 하는 최후의 선택입니다

 

당신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뜻밖의 능력자 입니다

 

 

 

원종섭   Won  Jong -Sup

 詩 시인,  영미시전공 교육학 박사, 대중예술 비평가  

K-Classic News 문화예술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