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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섭 평론] 2023 창작 오페라 홍윤애

A Better Me
사랑을 할거면 홍윤애처럼
제주의 사랑 이야기

 

K-Classic News 원종섭 평론가 |

 

 

 

2023  창작오페라  홍윤애 

 

 

                                         

                   

“사랑은 생명 이전이고, 죽음 그 너머이며, 

 천지창조의 시작이고, 지구의 해석자이다” –에밀리 디킨슨

 

 

“사랑을 할거면 홍윤애처럼, 

 의롭게 살거면 홍윤애처럼” -오페라중 마을어린이 

 

 

 

무엇이 세상을 구하는가?

 

 

 

 

 

헬레니즘 Hellenism 시대의 그리스 조각상 <밀로의 비너스 Venus de Milo (BC130-BC100)〉는 1820년 그리스의 밀로스 Milos 섬에서 발견되었고, 불후의 걸작으로서의 압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2023년 제주 의녀 홍윤애는 삼백년 동안 푸른 초장의 무덤에 누워 있다가 제주어 시 작가의 글로 이제 막 일어나 무대 위로 현몽한다.

 

 

 

 

창작 오페라 홍윤애가 지난 7월 21일 제주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되었다. 공연 테마는 숨비소리와 홍윤애의 사랑 이야기이다. 제주 시인 조엽 고훈식 원작에 한국음악협회 제주특별자치도지회장 오능희가 예술총감독을 맡았다. 1777년, 조선 정조 암살미수사건의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제주에 유배 온 조정철과 그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 순절한 제주의 여인 홍윤애를 소재로 강인한 여성상과 의로운 여인의 모습을 그렸다.

 

이번 오페라 홍윤애는 출연진들의 노래, 연기, 무대미술, 대본, 작곡, 무용, 조명, 음향, 의상, 분장 등에서 제주의 여름 바다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푸르고 시원한 메시지를 흠뻑 느낄 수 있었다. 첫 무대에 등장하는 동네 사람들의 합창단은 소박하고 평화로웠다. 제주 음협이 실시한 아트스트레칭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실제로 노래를 배운 동네사람들과 어린 아이들이 출연하여 진정성과 신선함을 더 했다.

 

 

 

 

공연예술의 포괄적 미적 의미는 미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복잡 다양한 형태로 그 신비로움과 가치를 드러낸다. 예술가가 아름다움을 포기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 상상력을 발휘하여 모험적인 시도를 해야 한다. 예술은 아름답지 않은 사소해 보이는 것으로도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 감동시킬 수 있다. 감동의 사전적 의미는 ‘크게 느껴 마음이 움직임’이다. 감동은 슬픔, 사랑, 희망, 생명력, 즐거움, 그리움, 공포, 죽음 등의 예상치 못하던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게 불쑥 다가올 수 있다. 

 

 

총감독 오능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여러 장르에서 회자가 되어 더욱 섬세하게 표현하고자 4개월여 동안 출연진들 모두가 혼신을 다하였다. 무대를 시대적인 배경으로 그리기보다 관객들이 연상할 수 있게 현실주의가 아닌 이상주의로 꾸려냈다.”고 소개했다.

 

 

 

 

때는 조선 후기 정조시대 평화롭게 살아가는 제주의 한 마을. 이 마을에 정조대왕 시해 미수 사건으로 선비 조정철이 유배를 온다. 홍윤애와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조정철의 정적인 남인 출신 김시구가 제주 목사로 부임하게 된다. 이로써 두 사람의 비극이 싹트게 되는 것이다. 결국 홍윤애는 사랑하는 조정철의 누명에 대해 부인하고 많은 곤장을 맞다가 자결하게 된다.  홍윤애는 오빠와 언니에게 조정철과 사이에서 갓 태어난 아이를 부탁하며 죽는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동네 사람들에게 한 아이가 홍윤애의 의로움과 훌륭함을 후대에 널리 알리는 노래를 들려준다. 한편 복권된 조정철이 제주 목사로 부임하게 되고 홍윤애의 무덤을 찾아 의녀 비석을 세우고 그녀를 그리워하다 지쳐 잠이 든다. 그의 꿈속에 홍윤애가 나타나 다시 한번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막을 내린다.

 

 

홍윤애의 무대는 제주의 이미지를 음악적으로 표현하기위해 서우젯 소리, 오돌또기와 같은 민요선율을 극의 요소로 활용했다. 제주의 지역적 정체성을 강조하기위해 노랫말에는 순수한 제주 토속어를 사용했으며, 제주어에 나타나는 독특한 억양과 리듬이 음악에 잘 드러나도록 했다. 작곡가 홍요섭의 노력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어두운 분위기에 지배되지 않고, 이야기 전개나 음악 진행에 변화를 주어 어두움과 밝음의 적절한 균형을 이룬다. 또한 제주민요의 요소들을 많이 차용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낭만주의 음악 양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오페라하면 길고 지루한, 어려운 음악이라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오페라가 될 수 있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작곡한 것이다. 문득 익숙한 선율이 흘러나오고, 외국어나 서울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제주어 만이 가진 매력에 귀를 기울여 감상해 보기를 시도했던 것이다. 

 

 

 

 

 

연출자 이범로는 “제주와 제주 사람은 아픈 근대사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엔 유배지로 혹은 풍파에 일렁이는 민초들의 아픔과 슬픔이 존재하는 살아있는 생명 그 자체이다. 흡사 춘향전과 같은 구도이지만 춘향전이 해피엔딩이라면 홍윤애의 실화는 세드엔딩이다. 그래서 더욱 더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야기이다."라고 말한다.

 

 

오페라 속에는 홍윤애의 심리와 상황을 느낄 수 있는 숨비소리가 오페라의 곳곳에서 그녀의 기쁨이나 아픔을 말해준다. 따뜻한 사랑의 장면에는 기쁘고 설레는 숨비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어부들의 고기잡는 소리와 어우러지는 숨비소리, 멀리서 불어오는 폭풍우처럼 다가오는 불안과 공포에는 날카로운 숨비소리가 드라마의 흐름을 가슴속 깊이 느끼게 해주는 장치가 되었다. 이것이 무대의 긴장감을 더욱 살려주었다. 

 

 

 

 

현대 공연예술의 궁극적 목표는 스토리를 가장 실감나게 ‘재현 representation’ 하는 일이다. 종합예술인 오페라가 그 역할을 하게 되면서 연출가들은 새로운 사고와 스토리를 통해 무대에 재현하는 이상의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페라가 대중에게 인기 있는 것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열려있는 스토리의 새로운 방향성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밝고 이해하기 쉬운 창법의 지속적인 탄생을 기대하는 일일 것이다. 

 

공연예술 연출가는 점차 고조된 자의식으로 재현을 넘어서서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관과 인생관을 작품에 확실하게 투영시킨다. 재현과는 거리가 먼 비밀스러운 판타지의 세계를 유감없이 펼쳐 보일 수도 있다. 그들은 무대에서 인간의 냉소적 본성에 대한 강렬하고 독창적인 증언을 하기도 한다. 스토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는 있다.

 

 

 

 

공연예술 작품의 평범함과 비범함은 주제 자체보다 의미를 부여하고 표출하는 예술가의 역량에 따라 완전히 다른 가치와 정체성을 나타내게 된다. 굳이 이상적인 세계를 표현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평범한 주제를 통해 순수함, 단순함, 소박함, 심오함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다.

 

열심하는 공연예술은 항상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섬세한 ‘본질 essence’과 ‘현존 présence’을 주려고 시도한다. 그러므로 오페라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와 스토리는 작품의 ‘외양apparence’과 닮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항상성의 추구는 예술의 궁극적 지향점 중의 하나로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대상의 본질과 고유성을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다. 항상성은 보편적인 미적 개념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공연 무대가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는 얼마나 작품에 강력한 생명력을 부여하느냐에 있다. 연출가와 배우들은 대상을 살아있는 것처럼 재현하려고 항상 고심한다. 전문적인 고난도의 무대원리를 잘 알고 구사할 줄 아는 연출가 일지라도 막상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은 논리적으로는 실로 해결하기 힘든 난제다.

 

자연이나 과거의 스토리를 재현한다는 것은 단지 뛰어난 기교로 외양을 그대로 잘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불완전하다. 겉모습만 아니라 그에 담긴 고유성, 정체성, 규칙, 상징, 영혼, 정신, 심리 등을 표출시킬 수 있어야만 진정한 공연예술 작품으로 탄생한다. 오히려 기교는 좀 서툴러도 생명력을 제대로 발산하면 특별한 무대작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걸작은 출중한 기교와 생명력의 조화로운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헤겔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1770-1831)은 “현실은 예술의 외양보다 더 왜곡된 외양이다.”라고 했다. 그는 인간의 감각보다 예술의 가치를 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하루살이보다도 더 변화무쌍한 인간의 찰나적 감각을 통해 얻는 정보보다 예술이 오히려 현실을 더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오페라 홍윤애는 눈에 보이는 형상의 표면적 아름다움을 초월하여 인간의 가장 비극적인 감성에 주목했기에 감동적이며 아름답다. 일반적으로 감상자는 좁은 의미의 미에 부합하지 않는 등장인물에 대해서는 외관뿐 아니라 감정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감상자가 자신의 시각 뇌에서 능동적이며 지적인 심미적 처리를 해야 무대 위 인물들의 열정적 호소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다. 총감독 오능희는 말한다 “제주의 다양한 콘텐츠가 종합예술인 오페라로 상설화되기를 기원합니다. 의녀 홍윤애 제주 최고의 사랑 이야기가 오페라로 탄생하다” 

 

 

 

 

 

 

 

 

 

 

 

 

당신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뜻밖의 능력자 입니다

 

 

 

원종섭   Won  Jong -Sup

시인/ 교육학 박사/ 한국예술비평가협회 제주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