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이사
탁계석
핸드폰에
충전 밥을 단단히 먹이고
너도 함께 가자
너마저 연락이 끊기면
세상은 금세
혼돈이 되니까
짐을 싸고
익숙한 공간을 떠나는데
멀리 바다 건너
대포 소리가 울려온다
예고 없이 벼락같이
길 떠나는 난민들
보따리 챙길 틈도 없이
모든 것을 버리고
줄달음친다
포탄 사이로
공포와 배고픔이 몰려오고
눈물비가 쏟아진다
준비된 이사도 있지만
준비 없이 떠나는 것들이
세상에는 더 많다
옮기고
또 옮기고
얼마를 더 옮겨야
우리는 당도하는가
마지막
저 세상으로 이사를 가면
어차피 모든 것을
놓아두고 갈 텐데
욕망의 바다 위에
작은 섬들이 떠 있다
끝없이 쌓아 올린
쓰레기 산 같은 욕망
그 깊이를
누가 헤아릴 수 있으랴
오늘 또 이사를 하면
새 동네의 까치가
나를 반겨줄까
살면서 몇 번이나
떠나고 옮겼는지
이제는 셀 수도 없다
떠나고
또 떠나고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사는 일은
잠시 머무는
바람의 주소
언젠가 마지막
짐을 내려놓는 날
우리는
가장 가벼운 몸으로
세상 밖으로
이사를 간다
시평
떠남의 문명, 존재의 마지막 이사
탁계석의 시 「이사」는 일상적인 ‘이사’라는 행위를 통해 현대 문명의 불안, 전쟁의 비극,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함께 성찰하는 철학적 시다. 이 작품에서 이사는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라 인간 삶 전체를 관통하는 존재의 이동으로 확장된다.
시의 첫 장면은 매우 현대적이다.
“핸드폰에 / 충전 밥을 단단히 먹이고 / 너도 함께 가자”
여기서 핸드폰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현대 인간의 생존 장치다. 연락이 끊기면 세상이 혼돈이 된다는 표현은 디지털 시대의 인간이 얼마나 관계와 연결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인은 이 작은 장면을 통해 현대 문명의 취약한 연결 구조를 드러낸다.
그러나 시는 곧 개인적 일상에서 역사적 비극으로 시선을 확장한다.
“멀리 바다 건너 / 대포 소리가 울려온다
예고 없이 벼락같이 / 길 떠나는 난민들”
이 순간 이사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전쟁 속 난민들의 이동은 생존을 위한 강제된 떠남이다. 준비된 이사와 준비 없는 이사의 대비는 인간 문명의 안정과 붕괴 사이의 경계를 보여준다. 시인은 난민들의 공포와 배고픔, 눈물비를 통해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안전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환기시킨다.
시의 중심부는 존재론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옮기고 / 또 옮기고
얼마를 더 옮겨야 / 우리는 당도하는가”
여기서 ‘당도’라는 단어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인간은 평생 이동하지만 정작 어디에 도착하는지 알지 못한다. 집을 옮기고, 직장을 옮기고, 삶의 자리를 바꾸며 살아가지만 최종 목적지는 늘 미지의 영역이다.
시의 후반부에서 시인은 인간 욕망의 구조를 드러낸다.
“욕망의 바다 위에 / 작은 섬들이 떠 있다
끝없이 쌓아 올린 / 쓰레기 산 같은 욕망”
이 이미지는 현대 문명의 과잉을 강하게 비판한다. 인간은 더 많이 갖기 위해 끊임없이 쌓아 올리지만, 결국 그것은 쓰레기 산처럼 남는다. 욕망은 섬처럼 고립된 채 바다 위에 떠 있고, 그 깊이는 누구도 헤아릴 수 없다. 이 대목에서 시는 문명 비판적 성찰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부분에서 시인은 다시 인간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간다.
“사는 일은 / 잠시 머무는 / 바람의 주소”
이 구절은 시 전체의 핵심 사유다. 인간의 삶은 영구한 거주가 아니라 잠시 머무는 바람 같은 체류일 뿐이다. 결국 마지막 순간,
“우리는 / 가장 가벼운 몸으로 / 세상 밖으로 / 이사를 간다”
라는 결말은 죽음을 마지막 이사로 바라보는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다. 평생 축적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장 가벼운 몸으로 떠나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욕망에서 벗어난다.
탁계석의 「이사」는 일상의 소재를 통해 전쟁, 문명, 욕망, 죽음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연결하는 시다. 이 시에서 이사는 단순한 삶의 사건이 아니라 존재의 여정이며, 인간이 끝내 도달해야 할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결국 이 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이사하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