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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의 정신건강 ESG ⑤] 합창 강국이 국민 정서 강국이다

100세 합창단 진정한 합창 정신과 철학을 구현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합창단 

 

홀로 외롭게 있는 것은 만병의 근원이다. 인간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감정은 고립과 단절이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며 계층 간 거리는 멀어지고, 세대 간 문화의 언어는 점점 단절되고 있다. 가족은 흩어지고, 공동체는 해체되며, 소통의 통로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같은 사회적 고립은 우울증, 자살, 중독, 무기력으로 이어지며 사회 전체의 정신 건강 지수를 위협한다.

 

음악은 인간을 다시 공동체로 묶는 가장 강력한 언어다. 그중에서도 합창은 개인을 넘어 집단이 하나의 호흡으로 연결되는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소통의 예술이다. 그래서 합창은 단합의 상징이자 사회 통합의 문화적 장치이며, 국가마다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정신 건강 인프라가 된다.

 

합창은 최고의 정신건강 인프라다

 

클래식 음악은 기악과 성악으로 나뉘지만, 합창은 그 어느 장르보다도 친화력과 소통력이 뛰어나다. 악기를 다루는 기술이나 개인 기량보다 ‘함께 호흡하는 경험’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합창은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한 훈련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동체 훈련이다. 과거 1980년대 한국 사회에는 직장마다 합창단이 있었고, 새마을운동과 함께 ‘합창 전성시대’라 불릴 만큼 생활 속 문화였다. 그러나 인구 감소와 공동체 해체로 합창 문화 역시 급격히 위축되었다. 이는 단순한 문화 쇠퇴가 아니라 사회적 건강의 퇴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울증, 청소년 자살, 게임·도박 중독 등은 스트레스 출구가 없는 사회의 병리 현상이다. 합창은 비용이 적게 드는 무산소 운동이자 최고의 정서 치유 프로그램이다. ESG 경영이 진정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면, 합창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핵심 영역이다.

 

합창으로 나라를 만든 에스토니아, 합창으로 나라를 지킨 독일

 

합창이 단순한 취미를 넘어 국가 정체성의 근간이 된 대표적인 나라가 에스토니아다. 에스토니아는 ‘노래 혁명(Singing Revolution)’을 통해 합창으로 독립을 이룬 나라다. 매년 열리는 민족 합창제에는 10만 명 이상이 모여 떼 합창을 하며, 이는 국가적 자긍심의 상징이 되었다. 독일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합창 강국이다. 독일 합창협회에 공식 등록된 수만 약 2만 5천 개가 넘으며

매주 2회 연습을 한다고 한다. 한국 전체 합창단 규모의 10배가 넘는 수치다.

 

이처럼 독일 사회에서 합창은 교육이자 복지이며, 지역 공동체의 핵심 문화 인프라다. 학교, 교회, 직장, 지역센터, 노인복지관까지 합창이 일상 속에 녹아 있다. 합창을 배우는 것은 음악 교육이 아니라 평생의 행복을 배우는 과정으로 인식된다. 

 

나라의 독립을 이룬 에스토니아합창 

 

일본의 평생 합창 시스템과 지역 커뮤니티 모델

 

일본 역시 합창 선진국이다. 일본에는 전국 규모의 합창연맹 체계가 잘 구축되어 있으며, 학교 합창, 직장 합창, 지역 합창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평생 합창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다. 특히 일본은 ‘지역 커뮤니티 합창’이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 시·정·촌 단위의 문화회관을 중심으로 시민 합창단이 운영되고, 기업 메세나가 이를 적극 후원한다. 노년층을 위한 실버 합창단, 직장인을 위한 야간 합창단, 아동·청소년 합창단이 생활권 단위로 촘촘히 조직되어 있다. 합창은 일본 사회에서 평생 교육이자 사회적 안전망의 역할을 한다. 고령화 사회 속에서도 노년층의 고립을 막고, 세대 간 교류를 촉진하는 문화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100세 합창단이 보여준 노년 문화의 미래

 

근자에 주목받고 있는 ‘100세 합창단’은 기존 합창계의 상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기존 합창단이 60세 전후로 은퇴하는 구조였다면, 100세 합창단은 나이 제한을 없애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그 결과 단원 수는 일반 합창단의 30~40명을 넘어 100명을 훌쩍 넘었고, 노년의 삶을 즐기며 봉사와 공연을 병행하는 새로운 문화 모델을 만들었다. 인생의 후반을 무대 위에서 노래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이는 정신건강 ESG의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노년의 고립을 막고, 삶의 활력을 회복시키며, 사회 참여를 지속시키는 가장 아름다운 복지 모델이기 때문이다.

 

시·군·구·읍·면·동 합창이 울려 퍼지는 K-컬처의 나라

 

이제 한국도 합창을 국가 전략 문화로 격상시켜야 한다. 전국 시·군·구, 읍·면·동에 이미 마련된 문화회관, 주민센터, 복지관, 학교 시설을 활용해 생활권 합창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한국합창총연합회가 중심이 되어 전국 합창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성공 모델을 표준화하여 확산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재외동포 합창단과 연계한 글로벌 K-합창 네트워크를 만들고, 세계 한인 합창 페스티벌을 정례화해야 한다.

 

서울국제합창페스티벌, 부산합창제, 대구합창축제, 광주합창제, 제주국제합창축제 등 전국 주요 합창 페스티벌을 K-컬처 대표 콘텐츠로 육성하고, 독일·일본·에스토니아와 등 과의 상호 교류 합창제를 확대해야 한다. 합창을 통한 문화 외교는 가장 평화롭고 강력한 국가 브랜드가 된다.

 

합창은 음악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합창은 예술이기 이전에 공동체다.

합창은 취미가 아니라 사회의 건강 지표다.

기초 합창을 습득하면 일생이 행복하다. 시군구읍면동마다 노래가 울려 퍼질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정서 강국이 된다. 합창 강국이 국민 정서 강국이다. 이것이 바로 정신건강 ESG의 출발점이다. 

 

한국합창총연합회의 40돌 한국합창심포지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