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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선정작 11편 공개

한국경쟁 극영화 8편, 다큐멘터리 2편, 실험 다큐멘터리 1편, 총 11편

퀴어, SF적 요소 등 다양해진 주제, 전주국제영화제 거친 감독들의 신작, 해외 영화제 출품작 등

K-Classic News 오형석  기자 |

전주국제영화제(공동집행위원장 민성욱·정준호)가 한국경쟁 부문 선정작 11편을 공개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올해 한국경쟁 부문에 111편이 출품되었으며, 이 가운데 심사를 거쳐 극영화 8편, 다큐멘터리 2편, 실험 다큐멘터리 1편, 총 11편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전주국제영화제의 한국경쟁 부문은 연출자의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을 선보이는 섹션으로, 국내 신인 창작자들의 등용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간 이재은, 임지선 감독의 <성적표의 김민영>, 정지혜 감독의 <정순> 등이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의 심사를 맡은 문석 프로그래머는 “각기 다른 색채의 영화들이 많이 출품되어 특정 경향을 논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퀴어가 자연스러운 대세로 떠올랐고, 영화 또는 예술 제작 과정을 다룬 장·단편이 많아졌다. 그리고 SF적 상상력을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주국제영화제를 거쳤던 감독들의 신작과 이번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첫 장편을 내놓는 감독들도 있어 반가운 마음이 크다”고 덧붙였다.

 

심혜정 감독의 <너를 줍다>는 쓰레기를 통해 다른 사람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주인공과 옆집 남자의 만남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맺는 관계의 이면을 바라보는 작품이다. 신동민 감독의 다큐멘터리 <당신으로부터>는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의 경계를 넘나드는 3부작으로 구성된 독특한 작품으로, 감독 본인과 그의 친모인 김혜정 씨가 직접 출연한다.

한제이 감독의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우.천.사)>는 청춘 퀴어 드라마로, 1999년의 고등학교 태권도부를 배경으로 우정과 사랑, 만성화된 폭력과 성폭력 등을 다룬다. 10년 만의 신작으로 돌아온 윤수익 감독의 <폭설>은 고등학생인 두 소녀가 강릉과 서울을 오가며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다.

 

전주영 감독의 <미확인>은 1993년 정체를 알 수 없는 UFO가 지구 위 각 도시 상공에 나타났다는 가상의 사실을 전제로 한 영화다. 손구용 감독의 <밤 산책>은 어떤 동네의 밤 풍경을 담아내는데, 어두운 화면은 손으로 그린 그림의 캔버스가 되기도 하고 조선시대 문인들의 시를 적는 배경이 되기도 하는 독특한 형식의 다큐멘터리이다.

객관적 진실과 주관적 진술, 혹은 실재와 허구의 간극과 모순이 드러나는 유형준 감독의 <우리와 상관없이>는 여배우가 뇌졸중으로 자신이 출연한 영화 시사회에 참석할 수 없게 되어 주변 지인들이 찾아와 시사회 결과를 알려주는 내용이다.

 

여성 소리꾼 정의진의 이야기를 다룬 유수연 감독의 <수궁> 또한 눈길을 끈다. 소리꾼 정의진은 어전광대 정창업의 증손녀이자 인간문화재 정광수 명창의 딸로, 그 자신 또한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2호 「수궁가」 예능 보유자다. 박마리솔 감독의 <어쩌다 활동가>는 이주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헌신하는 감독 자신의 어머니를 다루는 작품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장편을 내놓은 두 감독의 작품도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곽은미 감독의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탈북민 여성의 삶을 연대기 순으로 묘사한다. 박중하 감독의 <잔챙이>는 상업영화 오디션에서 떨어진 배우와, 그를 탈락시킨 영화감독의 이야기를 다룬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오는 4월 27일(목)부터 5월 6일(토)까지 열흘간 전주 영화의거리 일대에서 개최된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선정의 변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출품된 작품은 111편으로 지난해보다 10편 남짓 줄었다. 수치만 바라봤을 때 들었던 실망감은 영화들의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 덕분에 금세 사라졌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다양한 주제를 담은 각기 다른 색채의 영화들이 많이 출품돼 특정한 경향을 논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정도다. 굳이 말하자면 퀴어가 자연스러운 대세로 떠올랐고, 영화 또는 예술 제작 과정을 다룬 영화들이 장편뿐 아니라 단편에서도 상당히 많아졌다. 또한 문학 분야의 영향 탓인지, SF적 상상력을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올해 한국경쟁 부문을 11편 선정한 것도, 코리안시네마 부문 장편을 16편이나 선정한 것도 이처럼 상향 평준화된 질적 수준을 반영한 것이다. 작품 선정에 어떤 해보다 힘이 들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아쉽게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지 못한 작품들에 송구하다는 말씀을 전한다. 전주에서 선정되지 못했어도 다른 기회를 통해 부각될 작품이 적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올해 출품작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반가움’이다.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영화를 보여줬던 여러 감독들이 신작을 가져왔다. 20회 영화제에 <욕창>을 들고 왔던 심혜정 감독의 <너를 줍다>, 21회 영화제에서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를 선보였던 신동민 감독의 <당신으로부터>, 역시 21회에 <담쟁이>를 보여줬던 한제이 감독의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우.천.사)>, 그리고 10년 전인 14회 영화제에서 <그로기 썸머>를 소개한 윤수익 감독의 <폭설> 등이 그것이다.

전작 <욕창>을 통해 가부장적 가족 관계, 돌봄 노동, 노인 문제 등을 깊이 있게 조명했던 심혜정 감독은 신작 <너를 줍다>를 통해서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깊은 구석을 파고든다. 쓰레기를 통해 다른 사람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주인공과 놀랍게 깔끔히 쓰레기를 처리하는 옆집 남자의 만남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맺고 있는 관계의 이면을 바라본다.

끈적하면서도 징글징글한 가족이라는 세계를 드러냈던 데뷔작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의 신동민 감독은 <당신으로부터>에서 가족이라는 주제를 연장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각인시킨다. 전작에서처럼 감독의 어머니인 김혜정 씨가 출연할 뿐 아니라 감독 자신이 그 아들을 연기해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번에도 엇물리는 3부작 구성을 선보인다.

정통 퀴어 멜로드라마라 할 수 있는 <담쟁이>로 전주에서 화제를 모았던 한제이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우.천.사)>는 청춘 퀴어 드라마라고 부를 수 있다. 1999년 한 고등학교 태권도부를 배경으로 우정과 사랑, 그리고 만성화된 폭력과 성폭력을 겪으며 아파하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박수연, 이유미 등 배우들의 싱그러운 연기가 인상적이다.

청춘의 성장담을 역동적으로 담았던 <그로기 썸머> 이후 윤수익 감독이 내놓은 10년 만의 신작 <폭설>은 어른이 되어가는 두 소녀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다. 고등학생인 두 친구는 강릉과 서울을 오가면서 다양한 감정을 나누며 사랑하게 된다. 분절된 시간과 공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지속되는 두 소녀의 감정을 오롯하게 담아낸다. 풋풋한 시절 한소희 배우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다.

이 네 감독 외에도 코리안시네마 부문에서 신작을 선보이는 고봉수, 노영석, 정형석, 홍지영 감독까지 생각하면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일종의 ‘홈 커밍 데이'인 셈이다. 오랜만에 돌아온 감독님들에게 반가움의 인사를 드린다.

해외 영화제를 통해 먼저 선보인 실험성 짙은 영화들도 눈길을 끈다. 올해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하버 부문, 지난해 싱가포르국제영화제 언더커런트 부문 등에서 상영된 전주영 감독의 <미확인>은 1993년 정체를 알 수 없는 UFO가 지구 위 각 도시 상공에 나타났다는 가상의 사실을 전제로 하는 영화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이후로 29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보이는데, 언젠가부터 외계인들이 지구인을 가장해 등장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풍자와 유머, 그리고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영화다.

<미확인>과 함께 2023년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하버 부문에서 상영된 손구용 감독의 <밤 산책>은 독특한 형식의 다큐멘터리이자 실험영화다. 영화는 어떤 동네의 밤 풍경을 담아내는데, 그 어두운 화면은 손으로 그린 그림의 캔버스가 되기도 하고 조선시대 문인들의 시를 적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전작인 <오후 풍경>의 밤 버전처럼 보이기도 하고 간밤의 꿈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영화다.

유형준 감독의 <우리와 상관없이>는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서 상영됐다. 주인공인 중년의 여배우가 갑작스러운 뇌졸중에 걸리면서 자신이 출연한 영화 시사회에 참석할 수 없게 되자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이 잇달아 찾아와 시사회 결과를 들려주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어긋나고 엇갈린다. 이 안에서 객관적 진실과 주관적 진술, 혹은 실재와 허구 사이의 간극과 모순이 드러난다.

다큐멘터리 작품 또한 주목할 만하다. 올해 한국경쟁 부문에서는 앞서 언급한 <밤 산책> 외에도 두 편의 다큐멘터리가 더 상영된다. 유수연 감독의 <수궁>은 어전광대 정창업의 증손녀이자 첫 판소리 인간문화재 정광수의 딸인 여성 소리꾼 정의진의 이야기를 담는다. 사라져가는 동편제의 전통 속에서 「수궁가」를 지키기 위해 전수자를 찾고 있는 그의 힘겨운 노력이 긴장감 있게 묘사된다. 한 여성 예술가의 고뇌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

박마리솔 감독의 <어쩌다 활동가>는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를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는 주부로 생활하다 어느날부터 활동가로 살게 된 엄마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가장 가깝지만 속내를 정확히 알기 어려운 엄마의 삶을 카메라로 이해하게 되는 감독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주에서 첫 장편을 내놓는 두 감독의 영화도 돋보인다. 곽은미 감독의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한 탈북민 여성의 삶을 연대기순으로 묘사한다. 여성은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취득해 관광 가이드가 되며 일종의 코리안 드림을 꿈꾸기도 하고, 연락이 닿지 않는 동생을 찾아나서기도 한다. 이 영화는 외적 환경 변화와 타인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여성의 혼란스러운 표정에 주목한다. 한편, 한국영화아카데미 특별전 ‘KAFA 40주년 특별전’에서는 곽은미 감독의 영화아카데미 졸업영화인 단편 <열정의 끝>도 선보일 예정이다.

박중하 감독의 <잔챙이>는 낚시터를 배경으로 하는 독특한 분위기의 영화다. 상업영화 오디션에서 떨어진 배우가 유튜브 방송을 위해 낚시터를 찾았다가 자신을 떨어뜨린 영화의 감독과 다른 배우를 우연히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서로가 서로를 낚거나 낚이고자 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흥미롭게 묘사한다. 올해의 경우 단편이나 장편 모두 고르게 영화 또는 예술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관한 작품이 많이 출품됐는데 <잔챙이> 또한 그 중 한 편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작품을 보내준 모든 감독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 상영 기회를 갖게 된 분들에게는 축하 인사를 드리고, 운 나쁘게 기회를 얻지 못한 분들께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프로그래머 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