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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 칼럼] 피아노 소(小)합주곡의 탄생, 가히 발명적이다

피아노 중심의 선순환 생태계 구축으로 새 시장 창출 해낼 것

K-Classic News 탁계석 평론가  |

 

6월 2일 한국 작곡가의 피아노 작품 연주회 (예술의전당 인촌홀 )

 

생소하지만 길이 되어야  모두가 산다  

 

과학에서만 발명이 있는 게 아니다. 기존 장르의 담장을 허물고 새 장르의 텃밭을 만들어 내는 것 역시 음악적 발명이다. 남이 만들어 놓은 길만 가는 것은 머지않아 한계점에 도달한다. 기술력이 올라가 보편화되면 변별력이 사라진다.  경쟁력에서 자신의 설 자리를 찾기가 그만큼 힘들어진다. 콩쿠르 역시 일반화되면 가치가 하락한다. 

 

기업들이 상품이 잘 나가는 상황에서도 더 많은 신상품 개발과 R&D 투자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장의 러시는 포화에 이르고 소비자는 더 새로운 것을 원한다. 소비 패턴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세계의 높은 콩쿠르 봉우리를 모두 석권했으니 기술이 최고조에 달한 것이다. 당분간 더 지속되겠지만 이쯤에서 '기술'을 넘어 새 영역의 도전이거나 '새 상품'을 만들어 출시해야 한다. 

 

베토벤이 피아노의 교과서인 것은 백번 맞다. 그런데 수많은 피아니스트가 교과서를 외울 뿐 교과서를 벗어난 응용 문제를 만들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 많은 피아니스트의 0. 1% 라도 작곡 피아니스트를 했다면 우리 피아노계의 지형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몇 해 전 러시아에서 공부하는 한국계 학생을 보니 바이올린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우리는 피아노를 하다가 다른 쪽을 하면 이방인으로 본다. 피아니스트가 지휘를 하는 것도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만큼 획일적 사고와 안목 부족이 빛어 낸  기형적인 마인드다. 모든 음악의 바탕화면에 피아노가 깔려 있어야 하는데 기능 분화가 심한데 비해  공통 음악의 기초가 너무 부실하다.  그래서  따로 따로만 있다.  이같은 솔리스트 만능주의,  솔리스트 우월주의가 극복되지 않는 한 우리의 다음 단계는 없다. 

 

더늦기 전에  '솔로 피아니스트' 개념을 정리를 하고,  해법을 찾아나서야 한다.  장혜원 한국피이노학회 이사장에 의해 발명된 소(小)) 합주곡은 이같은 솔로 피아노의 정체성을 묻고 있다. 피아노의 환경과 생태계를 새롭게 설정하려는 패러다임 전환의 혁신 상품인 것이다. 

 

한마디로 어려서부터 앙상블을 익숙하게 하자는 뜻이다. 바이엘 .체르니의 낡은 학습 교제에서 벗어나 우리 동요, 민요 등으로 문화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통 오케스트라 협연이 과연 일생에 몇 번이나 있겠는가. 때문에 작게는 현악4중주 편성에서 시작해 다양한 편성의 피아노 협주곡의 앙상블이 나온다면 일반 청중의 인식도 달라질 것이다. 

 

협주곡 양식의 틀에 한국을 넣어 멋진 작품을 탄생시켜야 하는 때 

 

이를 통해 (1)솔로 피아노에서 벗어나 앙상블과 친해지기 (2) 음악적, 인간적 소통 능력 키우기 (3) 작품 개발과 창작 활성화 (4) 악보, 교제 출판  (5) 잠자는 피아노 깨워 조율 사업 진흥  (6) 창작 컨셉 만들기와 프로듀싱 개념 도입 (7) 소공간  활성화 (8) 피아노 학회 지부의 소통력 강화 (9) 음악 장르간의 긴밀성 확보 등, 시너지 효과가 증폭된다. 

 

마치 예술의전당에서 시작된 포토 존이 이제는 전국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표준화이듯  피아노 소 합주곡은 새로운 피아노 운동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장혜원 이사장은 '그랜드 피아노 콘서트를 한지 벌써 20년이 되었다. 동남아 등 상당수의 나라에서 성공한 프로젝트로 평가 받고 있다. 이젠 이것에서 또 벗어나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피아노 운동을 하게 되어 정말 기쁘고 청중의 호응에서 큰 힘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이 땅의 피아니스트.  피아노가 왜 생활화 되지 못하고 섬나라 피아노 왕국의 공주나 왕자가 되어 쓸쓸하고 고독한 젊음을 보내야만 하는가!  누가, 구원의 밧줄을?   마술 피리를 불어 줄까?  아니다. 나를 구하는 것은 나 밖에 없다. 그것은 나의 견고한 아집의 성을  철절히 부셔서 거듭 태어나는 수 밖에 없다. 

 

아직도 ‘피아니스트’는 좋고 ‘반주’는 아래 등급인가! 이런 인식 도표가 존재하는 한 솔로도 죽고 앙상블도 죽고 그래서 우리의 그 화려한 00 니스트(nist) 병이 모든 것을 죽인다. 니스트를 버려야 산다. 솔로의 우월감과 공주병을 치유하고 겸허하게 '음악'에서 만나야 한다. 소합주곡은  남을 배려하고,  남과 함께 가고,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인생 살아 보면 경쟁보다 더 중요한 덕목들이 많다는 것을 체험하게 한다. 그래서 공존의 지평이 열린다면 그 길로 가야하지 않겠는가. 

 

베를린이나 빈에서 베토벤 소나타를 눈감고 32곡을 친다고 해서 청중이 얼마나 올까? 우리의 솔로(solo) 주의는 병든 솔리스트 주의다. 허약하고 왜곡된 혹독한 솔로주의다. 그 관행을 깨트리지 못하는 대학이 그렇고, 공연장의 대관 심사가 그렇고. 학력, 학벌, 프로필, 콩쿠르 과다가 빚어낸 참사다. 이런 때일 수록 음악의 본질에 충실해야 하고,  예술의 자유를 제한하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벗겨내야 한다. 

 

 

오징어 게임같은 피아노 생존 게임이 펼쳐져야 한다 

 

정의는 없다. 지독하게 불공정한 게임이 있을 뿐이다. 우리의 순수 피아노가 살려면 변화를 수용해야 하고 그것은 모두에 해당한다. 소합주곡의 출항이 그래서 희망의 바다로 나갈 것이라 믿는다. 베토벤이 교향곡에 합창을 넣은 것이나 피아노에 합창을 붙여 코랄판타지를 만든 것 역시 시대를 놀라게 한 혁명이다. 베토벤의 정신에서 불굴의 의지 못지 않게 창조 정신을 꺼집어 내어 발화시키는 것, 그래서 한국적인 베토벤이 나와야 한다.

 

이것이 K클래식의 방향이자 좌표이다. 그리해서 글로벌 시장에 내 놓을 수 있는 우리의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 협주곡? 첼로 협주곡을 출시하자. 기업 상품들이 대박을 치고 있는데, 우리 영화도, 게임도 대박을 치고 있는데, 케이팝, bts가 빌보트 차트를 우리의 메뉴판으로 도배를 하고 있는데. 우리 서양 클래식은 답습만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이번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가 고종 황제의 명을 받아 만든 애국가 120주년을 맞아 콘체르트 하우스(7월 1일)에서 독일 합창단이 베를린과 할레 헨델 극장(7월 2일)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여기에 임준희 작곡가의 혼불 '대금 협주곡'이 초연되어 독일 청중의 신선한 반응과 큰 반향을 끌어 냈다. 필자가 이곳을  다녀오면서 더욱 우리 K클래식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머지 않아 소(小)합주곡에서 본격적인 오케스트라에  의한 다양한 악기의 협주곡이 탄생할 것이다. 그래서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란 귀절이 손에 감긴다. 

 

            베를린 콘체르트 하우스 임준희 작곡 혼불- 대금 협주곡 (대금: 이아람)

 

변화의 열차를 타는 사람들 

 

변화의 타이밍을 잘 포착해  즉각 수용하는 사람. 변화를 늦게 받아 들이는 사람과 아예 귀를 막는 사람,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비판과 편견을 퍼트리는 사람,  인간형은 여럿이지만 도도한 역사의 흐름은 개인의 것을 넘어서 있다. 누가 옳은지는 모른다.  자폐와 정상을 가리기가 힘들다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런 드라마도 나오는 세상인 만큼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선택은 자유이고 그것이 당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