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원종섭 문학평론가 | 묵화 墨畵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전집', 나남출판, 2005 한국적 정서가 물씬 풍겨납니다 시인은 화폭을 꽉 채워 그리지도 않고 요란스럽게 채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용한 느낌도 들고 다 말하지 않은 여백도 느껴집니다 절제된 표현으로 여백의 미가 선명하게 살아납니다 구체적인 상황을 생략하고 소와 할머니만을 압축해서 표현했습니다 관찰자 시점입니다 앞 부분과 뒷 부분이 도치되기도 했구요 독자들은 여백 뒤에 숨은 내용을 생각하며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인은 격앙된 감정으로 말을 타고 달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정신의 성숙함은 서서히 굳어져 간 것이겠지요 소의 목덜미에 손을 얹는 할머니의 어떤 심정 제목 '묵화'는 먹의 짙고 엷음을 이용하여 그린 그림입니다 묵화는 절제된 그림이지요. 할머니와 소의 눈망울 애잔한 느낌의 공유로만 유대감이 표현될 뿐입니다 마음과 마음으로 뜻을 전한다는 이심전심(以心傳이고 심심상인(心相印)이지요. 소가 먹는 물은 맹물이 아니고 쌀뜨물일 것입니다 하루종일 함께 고단한 노동을 한 소에게 할머
K-Classic News 원종섭 詩 칼럼 |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1989 문학과지성사 기형도 「엄마 걱정」 엄마가 생각납니다 어머니 보다 엄마라는 호칭은 그 스스로 짠합니다 시인의 어머니와 가난했던 유년은 무서운 기억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공포보다 더 진한 감정은 그리움일 것입니다 그 공포는 아버지의 부재와도 관계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 공포보다 더 진한 감정은 그리움일 것입니다 유년 시절의 추억, 동경, 고독 무섭고 외로웠던 유년 시절에 대한 회상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런 무를 깎아 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K-Classic News 원종섭 詩 칼럼|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1975 김지하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 분도 시인은 죽었지만 그의 시는 살아서 구천을 날읍니다 민주를 향한 간절한 바람 열망의 절규 소명 긴박한 공포와 시대적 아픔 처절한 절규와 비장한 의지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지를 안다면 숙연해집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애타게 갈망했던 우리의
K-Classic News 원종섭 詩 칼럼니스트 |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시선집 담쟁이 2012 시인생각 시인이 전교조 교사로 해직된 후 살길이 막막했을 때였습니다 흙 한 톨도 없고 물 한 방울 도 나오지 않는 벽에 살면서도 담쟁이는 저렇게 푸르구나 자기만 살길을 찾겠다고 달려가지 않고, 100개의 이파리와 손에 손을 잡고 더디지만 한 발짝씩 나아가고 그렇게 다른 이파리들과 함께 연대하고 협력하며 벽을 오르고, 마침내 절망적인 환경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꾸고 연대감을 통한 시련의 극복입니다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내립니다.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낙옆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은참으로 짧습니다. -도종환 접시꽃
K-Classic News 원종섭 문화심리학 기자 | 사회에 흔들리는 선과 악 The good and evil swayed by society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탁월한 저서 중 하나인 『실천이성비판』에서 “선은 해야만 하는 일을 내가 손해를 입을지라도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 악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해야만 하는 일을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사회 안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 우리는 사회 안에서 살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무의식중 몸에 익혀간다. 그렇다 해도, 우리 안에는 '선한 것'과 '악한 것' 중 어느 것이든 행할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그럼 어째서, 똑같은 상황에 놓여졌을 때 나쁜 짓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일까? 또한, 왜 자신에게 하등의 이득도 없는데 다른 사람을 도우려고 하는 걸까? 우리 내면에 있는 선악의 판단 척도, 기준은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을까? 사회적 행동을 좌우하는 요인 타인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행동을 사회적 행동(Social Behavior)이라고 한다. 사회적 행동을 좌우하는 큰 요인 가운데 하나가 사회적 태도(
K-Classic News 원종섭 문화심리학 기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어 상대를 최고 연주자로 인간의 덫 Human Trap을 문화심리로 풀어라 문화 심리학 Cultural Psychology은 우리 일상생활에 뜻밖의 영향을 준다 자기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속마음에서 이루어지는 마음의 작용이 더 크게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는 문화심리가 조종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을 꼭두각시 인형처럼 조종하는 이 심리적인 법칙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통하여 생각해 본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란? 오케스트라 등에서 연주의 시작과 끝, 템포, 리듬을 통일할 뿐만 아니라, 다이나믹(Dynamic), 아고긱(Agogik), 프레이징(Phrasing)을 비롯한 음악적 표현에 필요한 모든 해석을 연주자에게 지시하여 작품을 재창조하는 음악가이다. 관현악이나 합창과 같은 집단적 연주에 대해 몸동작을 통해 통일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지휘자는 고도화된 음악 이론의 지식이 많아야 하며, 모든 악기의 특징과 연주 방식에 대해 두루두루 다 잘 알아야 한다. 영화의 감독과 유사한 포지션이다.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가진 만큼
K-Classic News 평론가 원종섭 |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김수영 1968 <현대문학> 김수영의 풀은 그렇게 푸르고 가녀리고 아름답습니다 문체는 정신의 표현입니다 평범함이 위대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시인이 지상에서 쓴 마지막 詩 입니다 1968년 5월29일, 그러니까 시인이 숨을 거두기 꼭 20일 전에 쓰인 이 시편은 김수영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현대문학> 8월호에 유고로 발표되었습니다. ‘풀’은 김수영 시의 극점이자 귀결점으로 우리 앞에 선명합니다 소리 내어 읽어보면 반복과 대구와 점층을 통해 특유의 리듬감을 성취하고 있습니다 풀과 바람, 그리고 여러 동사들의 반복과 대구와 점층은 이 작품을 단순하지만 여러 겹을 두른 한 편의 음악입니다 리듬을 육체화하면서 풀은 눕고 일어서고 울고 웃고 흐
K-Classic News 원종섭 詩 칼럼니스트 | 흐르는 강이 흐르듯이 살고 싶다 자신이 펼쳐 나가는 놀라움에 이끌려 흘러가는 'Fluent' © John O'Donobue. From “Conamara Blues”. New York, HarperCollins. redfox0579@naver.com 우리의 영혼은 우리의 운명의 지리를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네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품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겠지요 즐겁게 주고 감사함으로 받을 때 모든 사람이 복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그대는 바다의 한 방울이 아닙니다 그대의 한 방울의 바다 전체입니다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온 세상이 나의 것입니다 한치 앞도 모른다, 살아 봐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입니다 오늘 우리는 살고자 하는 최후의 선택입니다 존 오도나휴 John O'Donobue 1956~2008. 아일랜드 시인이며 가톨릭 성직자, 아일랜드의 노스 카운티 클레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존 오도나휴는 땅과 친밀한 성장기를 보냈다. 영문학, 철학, 신학을 공부했다. 자신의 조상인 고대 켈트인들이 지니고 있던 고유한 사상에 눈을 뜨고 풍경, 기억, 죽음,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파
K-Classic News 원종섭 평론가| 매혹하는 미술관 내 삶을 어루만져준 12인의 예술가 마리 로랑생, 판위량,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루이스 부르주아 감정으로 피어나 예술로 남은 낯설고도 매혹적인 12인의 예술가 그들의 삶과 작품들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갤러리스트가 반한 매혹의 세계 “손에 꽃 한 송이를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순간만큼은 그 꽃이 당신의 우주다” _조지아 오키프 누구에게나 사랑의 기초체력은 있다 하지만 작가 송정희의 글에서는 결이 다른 맛을 볼 수 있다 『매혹하는 미술관』을 쓴 송정희는 뒤늦게 미술에 매혹돼 제주에 갤러리를 열고 작가와 컬렉터를 연결하며 전시를 기획하는 갤러리스트다. 10년 동안 영자 신문 『제주위클리』를 발행해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데 힘쓰기도 했다. 제주 출신 미술가 변시지의 특별전 기획을 계기로 갤러리스트로 전향한 그가 ‘지역’과 ‘미술’ 사이에 작은 다리들을 잇는 과정은 어두운 주변을 더듬으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어렵고도 낯선 여정이었다. 『매혹하는 미술관』은 힘든 순간마다 지은이를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운 예술가 열두 명과 그들의 삶과 작품에 자신을 반추하며 앞으로 나아간 지은이의 이야
K-Classic News 원종섭 문화심리학자 | 혼돈을 사랑하라 세상이 가르쳐 준 모든 규칙을 잊으라. 너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고 너 자신의 언어를 정의하라. 너의 혼돈을 억압하는 대신 사랑해야 한다. 만약 너의 혼돈을 사랑한다면 이 세상은 해답을 주지 못할 것이다. 해답은 네 안에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될 것이다. 너의 가장자리를 두려워하지 말라. 누군가가 너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 그에게 말하라. '나의 혼돈을 사랑하라'고. 너의 혼돈에 질서를 주입하려고 하는 세상에 반역하라. 네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세상을 힘껏 두드려야 한다. 두려움은 단지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에 불과할 뿐, 네가 해답에 다가갈수록 우주는 너와 놀이를 하며 너로 하여금 질문을 잊게 할 것이다. 너 자신이 되라. 남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면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너의 다름을 사랑하라. 너를 다르게 만드는 것 사람들이 너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 사람들이 너에게 바뀌기를 원하는 것 너를 유일한 존재로 만드는 정복당할 것이니, 그것을 사랑하라.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소설 『푸른 세계 중에서 아름답습니다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Love your chaos “Love your 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