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오형석 기자 |음악은 두 귀로 들어야 완성되는 것일까.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40)을 만난 30일, 오히려 이 질문이 먼저 떠올랐다. 네 살 때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한쪽 귀로 세상을 듣고 음악을 배웠다. 그러나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그가 꺼낸 표현은 ‘장애’나 ‘극복’이 아니었다.
“숨겨진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한마디가 한수진이라는 연주자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문장처럼 들렸다.
한수진은 12세에 데뷔했고, 15세였던 2001년 비에니아프스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2위에 오르며 국제무대에 등장했다. 어린 나이에 이미 주목받은 바이올리니스트였지만,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음악의 길을 단순히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수식어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놓치는 것이 많다.
그에게 음악은 처음부터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예술에서 ‘다름’이 때로는 가장 강력한 창작의 출발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악보를 보고도 연주자의 기억과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수진의 경우 그 출발점은 더욱 근원적이다. 소리를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가 달랐다.
이번에 그가 영국의 명문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ECO)와 녹음한 비발디의 ‘사계’가 흥미로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계’는 클래식 음악 가운데서도 이미 수없이 연주되고 녹음된 작품이다. 핀커스 주커만과 나이젤 케네디 등 수많은 명연주자가 자신만의 ‘사계’를 남겼다. 한수진 역시 “역사적인 명반이 많아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지점에서 연주자의 존재 이유가 선명해진다.
이미 수없이 연주됐다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음표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같은 음표를 어떻게 다르게 들려줄 것인가의 문제다.
한수진은 그 답을 자신의 기억과 경험에서 찾았다.
그는 비발디의 ‘사계’와 함께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를 녹음했다. 18세기 이탈리아 바로크와 20세기 아르헨티나 탱고. 전원과 도시, 유럽과 남미, 자연의 계절과 도시의 시간이 한 음반 안에서 마주한다.
흔히 두 작품을 함께 연주하는 무대를 ‘팔계’라고 부른다.
한수진의 설명은 인상적이다.
“비발디가 자연과 계절을 상세하게 묘사한다면 피아졸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도시의 공기 속에 바다의 기운이 스며 있는 것 같다.”
그의 음악적 언어에는 시각적인 풍경보다 ‘공기’와 ‘기운’이 먼저 등장한다. 이것은 단순한 작품 해설이라기보다 소리를 받아들이는 한 연주자의 감각에 가깝다.
녹음은 런던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이뤄졌다. 비틀스가 음악사의 한 장을 써 내려간 바로 그 공간에서 ECO와 단 4일 동안, 지휘자 없이 협연했다.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지휘자의 해석을 따라가는 방식이 아니라 연주자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듣고 반응하며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녹음은 의미가 있다.
한수진에게는 어쩌면 익숙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한쪽 귀로 세상을 듣는다는 것은 결핍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소리를 구분하고 받아들이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 경험이 오랜 시간의 훈련과 만났을 때 하나의 음악적 언어가 된다.
나는 한수진의 이야기를 ‘장애를 극복한 음악가’라는 틀에 가두고 싶지 않다.
그런 이야기는 너무 익숙하고, 무엇보다 예술가의 본질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기 때문이다.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갖고 있느냐보다 무엇을 어떻게 보고, 듣고, 해석하느냐에 있다.
한수진은 10월 24일 통영국제음악당을 시작으로 25일 아트센터인천, 28일 대구콘서트홀, 3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ECO와 함께 관객을 만난다.
무대에서 연주될 ‘사계’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 ‘사계’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들어볼 필요가 있다.
비발디가 그려낸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사이에 한수진이 지나온 시간이 어떻게 겹쳐지는지, 그리고 한쪽 귀로 들어온 세계가 두 개의 ‘사계’를 어떻게 다르게 해석하는지를.
결국 음악은 많이 듣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어떻게 듣느냐가 음악을 바꾼다.
한수진의 ‘숨겨진 축복’은 바로 그 사실을 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