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Erdos Han 칼럼] 일상으로 귀환하는 그늘, 9·11이 남긴 질문들

K-Classic News Erdos Han 작가|

 

 

2001년 9월 11일, 푸른 가을하늘을 가르며 세계무역센터 건물로 돌진하던 비행기의 충격적인 잔상은 인류의 기억 속에 씻을 수 없는 흉터를 남겼다. 그날 이후 세계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단 몇 시간 만에 무너져 내린 거대한 마천루는 단순히 거대한 건축물의 붕괴가 아니었다.

 

그것은 서구 현대를 떠받치던 ‘안전과 풍요에 대한 신화’가 한순간에 산산조각 난 순간이었다.
9·11 테러 이후 지난 세월 동안 세계는 ‘안보’와 ‘국가안보’라는 이름 아래 급격하게 재편되었다. 공항의 삼엄한 검색대, 국경의 높은 장벽, 수많은 개인정보 모니터링은 점차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불안은 제도화되었고, 타자에 대한 경계는 타당한 자위권으로 포장되었다. 거대한 정의를 부르짖으며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은 더 큰 폭력과 또 다른 난민, 끊이지 않는 보복의 악순환을 낳았다. 평화를 얻기 위해 시작한 길 위에서 세계는 더 깊은 불확실성의 늪으로 빠져들었던 셈이다.

 

하지만 9·11을 단지 거시적인 정치와 전쟁의 역사로만 기록할 수는 없다. 진짜 유산은 그날의 파편 속에 남겨진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이를 아침 출근길에 떠나보낸 가족들의 황망함, 먼지를 뒤집어쓴 채 타인을 구하기 위해 잿더미 속으로 뛰어들었던 소방관과 시민들의 숭고함, 그리고 지켜보던 세계인이 느낀 깊은 연민과 무력감. 상처는 거대한 담론보다 아주 개인적이고 미세한 결을 따라 깊게 새겨졌다.

 

오늘날 우리가 9·11을 다시 떠올려야 하는 이유는 과거에 대한 추모를 넘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되돌아보기 위함이다. 증오를 증오로 갚으려 했던 수많은 시도들이 과연 인류를 더 안전하게 만들었는가? 타자를 향한 혐오와 배척이 과연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주었는가?

 

9·11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강력한 교훈은, 우리가 사는 세계가 한 줄기 실처럼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지구 반대편의 갈등과 결핍, 절망을 외면한 채 나만의 안전지대를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정한 안전은 철통같은 장벽이나 막강한 무력이 아니라,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공감과 공존의 노력에서 출발한다.

 

비극의 기억은 아프다. 그러나 그 아픔을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는 상처를 넘어서는 지혜를 얻는다. 9·11이라는 숫자가 새겨진 그날의 그늘을 뒤로하고, 이제는 혐오가 아닌 연대로, 배척이 아닌 이해로 나아가는 길을 물어야 할 때다. 잿더미 속에서 피어난 연민의 가치를 잊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스러져간 수많은 영혼들을 향한 가장 깊은 추모이자 미래를 향한 약속일 것이다.

 

Artist ERDOS 한경수